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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루를 안아주는 앞치마

# 18

by 오진미

아침마다 부엌에 들어설 때면 매번 하는 의식이 있다. 새 앞치마를 서랍에서 꺼내어 끈을 묶는 일. 하루의 시작을 알려주는 동시에 마음속에선 새 마음을 갖게 한다. 잠에서 덜 깬 정신을 일으켜 세우고 뽀송뽀송한 면에서만 느껴지는 상쾌함이 기분 좋게 한다.


앞치마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건 워킹맘 시절을 작별하고 전업주부로 지내면서부터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는 음식을 만드는 일에 그리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고 대충 먹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집에서 지내는 일이 많아지면서 앞치마와 가까워졌다.


음식을 할 때 이것은 필수적이었다. 옷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동시에 먹거리를 만드는 일에 대한 예의처럼 느껴졌다. 가끔 앞치마를 하지 않고 주방에 설 때면 어색하다. 중요한 무엇을 빼놓은 것처럼 불편해지면서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앞치마를 꺼낸다.


앞치마는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옷보다도 나와 오랜 시간을 보낸다. 슬프거나 괴로운 마음을, 때로는 들떠서 요리하는 내 모습을 고스란히 느끼고 함께 살아간다. 너무 부엌일이 귀찮을 때도 이것을 묶고 나면 이상하리만치 일에 집중하게 된다.


때로는 앞치마에 무슨 마법이라고 깃들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다. 곰곰이 돌이켜 보면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없음을 알게 된 십여 년의 세월을 함께 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매일 묶고 풀고를 반복하며 멀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음을,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내 일을 하는 게 삶이라는 것도 조금 알아간다.

“난 앞치마가 너무 불편해서 못하겠더라고. 좀 하다 보면 답답한 느낌이 드는 거야.”

동네 친구는 내가 앞치마를 두른 모습을 볼 때마다 한마디 한다. 난 참 편해서 좋은데 이리도 상반되게 여기는 것 무엇 때문일까. 그건 아마도 음식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라 여겨진다. 난 무엇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 도마 위에 여러 가지를 올려놓고 썰고 생각나는 대로 가능한 내 맘대로 요리가 재미있다. 세상 어떤 것이 이처럼 내 의지대로 이뤄질 수 있는 건 찾기 어려울 듯하다. 앞치마가 그 과정에서 내게 편리함과 안정감을 주니 더 찾을 수밖에 없다.


내 친구 앞치마는 나를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속속들이 꿰뚫으면서도 때로는 모른 척하고 나를 포근히 감싸준다. 깨끗한 앞치마를 몸에 두르는 순간 나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이에게서 전해지는 따스함과 편안함을 경험한다. 괜찮다고 나를 다독여준다. 허리에 끈을 꽉 동여매는 순간에는 가끔 허우적거리는 마음의 갈피를 꽉 붙들어 준다.


내 앞치마에는 한 가지 지켜야 할 게 있다. 매일 아침이면 새로운 것을 꺼내어 챙긴다는 것. 전날에 썼던 것을 쓰면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꼭 새것을 고집한다. 그래야 내 하루를 잘 열어줄 것 같은 일종의 믿음 같은 것이다.


어느 날은 초록색 나뭇잎 무늬가 있는 앞치마를 다림질했다. 언제부터 해야지 하다 미뤄두었는데 쭈글거림이 심해 꼭 필요한 일이었다. 아주 잠깐 열을 가해주었을 뿐인데 빳빳해진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것을 두르니 마음마저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집안일을 끝내고 걸어두었는데 해진 모습이 들어온다. 천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것을 썼나 싶은 게 마음이 묘하다.


처음부터 앞치마에 애착이 생겼던 건 아니다. 매일 나와 함께 하면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소중한 물건이 되었다. 이것에 대해 글을 쓰게 되는 것도 그런 그동안의 감정이 쌓인 결과일지 모르겠다. 시간을 함께 한다는 건 몰랐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더불어 인연의 끈을 더욱 단단히 고정해준다. 이 봄이 가기 전에 화사한 앞치마 하나를 사야겠다. 봄꽃들이 지고 난 자리에 나를 설레게 해 줄 무엇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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