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밥을 잊고 있었다. 먹는 일을 아우르는 밥이 아니다. 흰쌀이 주인공인 밥 이야기다. 난 매일 밥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밥솥이 비어갈 즈음이다. 평균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나 돌아오는 시간이다. 아침에 밥을 하고 다음날 점심을 넘긴 저녁 무렵이다.
밥 준비를 하면서 밥을 생각하지 못했다. 쌀을 씻고 솥에 안치면 끝이다. 이것이 없으면 밥을 먹는 일이 어려워지는 데도 무심했다. 너무 익숙해서 의식에서 멀어져 갔다. 몸은 자동적으로 쌀 독으로 움직였지만 거기까지였다.
반찬은 무엇을 먹을지 매 끼니 고민한다.
“먹을 게 없어 오늘은 뭘 먹지?”
일 년 365일 주부들의 나누는 매일의 인사 같은 것. 그렇다고 밥을 어떻게 할까 하고 말하는 이를 본 적은 없다.
“밥이 제일 쉽지. 밥만 하라면 매일 할 수도 있을 거야.”
종종 누군가와 밥 이야기를 할 때면 따라붙는 말이다.
밥이 없다면 다른 진미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한국인의 밥상에 기본은 밥이다. 그러니 밥의 입장에선 서러울 만도 하다.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 듯 밥은 언제나 당연해서 시선에서 멀어졌다.
밥은 순수다. 밥은 더할 게 없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리 간단하게 태어난 건 아니다. 농부의 땀방울이 숨어 있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에서 보살핀 수고로움이 쌀을 만들었으니 밥의 절반 이상은 농부의 몫인지 모르겠다.
지난겨울부터 밥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마음고생을 하다 보니 밥이 곧 몸이라고 여겨졌다. 윤기 흐르는 흰 밥보다는 무엇을 올리는 일에 열심이었다. 보리와 율무, 귀리, 조와 수수, 현미, 콩까지 더해지니 서너 가지를 훨씬 넘는다. 밥 한 그릇에 여러 잡곡을 집요하리만치 챙기는 건 내 불안과 걱정덩어리들을 모조리 넣어 평안만을 바라는 간절함이었는지 모르겠다.
오롯이 밥만으로도 충분한 한 끼를 생각했다. 지난 금요일 아침 고구마와 표고버섯을 넣어 밥을 짓기로 했다. 적당한 크기로 썰어 밥에 올려주어 물만 조절하면 된다. 시간을 들여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한 그릇을 기다리는 게 전부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기대에 부풀어 오르는 순간이다.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건 어찌할 수 없는 삶 앞에서 잠깐이라도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일과 같다. 내가 그러했다.
전기밥솥보다는 딸랑이 압력밥솥을 사랑한다. 어느 날 지인의 집에서 먹었던 맛있는 밥을 잊을 수 없었다. 그 밥의 비밀이 솥에서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그것으로 얼른 바꿨다. 그동안의 경험에서 익은 예감으로 적절히 시간을 나누어 불 조절을 해야 하는 아날로그식 밥하기의 시작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니 신호가 온다. 솥에서 열심히 끓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고구마가 익었을 때의 맑은 노란 속살과 흰쌀과 잡곡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궁금해졌다. 평소보다 물을 적게 넣으면 실패할 일이 없다. 한 김이 빠지고 나서 들여다본 밥은 성공이었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기쁨이다.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여느 때와 다른 그 밥에만 눈길이 간다. 한 숟가락 떠서 먹어보니 어제의 밥과는 확연히 달랐다. 달콤한 고구마가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주면서 잡곡들이 통통 튀어 살아난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먹는 일이 이어진다. 음미하며 먹으니 밥 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반찬을 많이 먹으려고 부산을 떨 일도 없다. 밥에 집중하게 되는 고요한 밥상이었다.
지난해 가을 친한 언니가 전해준 쌀 한 봉지가 생각났다. 가을이 깊어갈 무렵이었다. 친정오빠가 농사지은 것이라며 찹쌀과 멥쌀 한 봉지씩을 들고 왔다.
“밥 한번 해 먹어 보라고. 얼마 전 수확한 거니까.”
가슴이 찡해 오는 순간이다. 멀리 바다 건너 제주도에 사는 엄마가 비행기를 타고 딸을 만나기 위해 한가득 챙겨 온 기분이다. 눈물이 살짝 비친다.
그날 선물 받은 햅쌀로 저녁밥을 했다. 그야말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밥이었다. 흰밥이 이리도 맛있을까 감탄할 정도다. 숟가락을 뜨는 일이 정성스러워야 할 것 같았다. 밥 자체로 고귀하다. 나를 생각해주는 언니의 마음이 밥처럼 따듯했다.
밥을 먹지만 밥을 잊고 산다.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은 언제나 주변으로 밀려난다. 가끔 반찬을 준비하고 밥을 먹으려는 데 빈 밥통을 발견할 때가 있다. 허탈하면서도 당황스럽다. 당연히 밥이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기억이 착오를 일으키는 순간이다. 밥을 부랴부랴 하거나 즉석밥을 찾는다. 그때야 알게 된다. 왜 밥상이라고 하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