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밥을 차려내는 일은 내 감정의 널뛰기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때로는 아주 간단하게 그야말로 김치와 밥 국뿐인 상을 차리다가도 어느 날은 무슨 잔칫상이라도 된 듯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이것저것을 준비해 놓는다.
글이 써지지 않고 머리가 텅 빈 느낌이다. 갑자기 갈피를 못 잡고 헤맨다. 아이가 학교 가고 난 뒤 침대에 누워 뒤척이다 30분을 못 버티고 다시 일어나 앉았다. 무엇을 해야 할 것만 같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책을 몇 페이지 읽어 보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마음이 급해진다. 내일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큰일 날 듯 조바심 난 수험생이다. 쿠션과 이불 커버를 다 벗겨내어 세탁기에 놓고 돌렸다. 화분을 정리하고 목마른 녀석들에게 샤워도 시켰다.
부엌 주변을 오랜만에 열심히 닦았다. 30분 정도를 열심히 몸을 움직였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묵혀놓았던 일을 주저 없이 하게 만든다. 며칠 거른 운동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파트 안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온기가 사방에 무겁게 내려앉고 있다. 바람이 분다고 해서 혼자 서늘하다 여겼나 보다. 동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하다 보니 몸이 제자리를 찾는다.
냉장고를 열고 저녁밥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매일 먹는 밥이 지겹지 않도록 변화를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며칠 전 사놓은 연어가 보인다. 연어를 굽고 채소를 곁들이기로 했다. 그리 많은 일이 필요 없는 요리다. 적당한 두께로 연어를 썰고 올리브유와 소금을 뿌려 놓는다. 조금 있다가 그것을 앞뒤로 노릇하게 팬에 구워내고 파프리카와 마늘도 구웠다. 소스는 양파를 다져놓고 올리브유와 소금, 식초, 매실액, 마요네즈와 버무린다. 아삭하고 새콤달콤한 맛이 고기와 잘 어울린다.
얼마 전부터 해가 제법 길어졌다. 6시를 넘긴 시간인데도 밖은 살짝 어둠이 내리고 있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즈음에 연어를 굽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니 문이 열리더니 아이가 들어온다.
“엄마 오늘 저녁은 뭐야?”
“응 연어 스테이크 어서 손 씻고 와, 밥 먹자.”
조촐한 식탁이 차려졌다. 집에서 매일 먹는 멸치와 진미채, 열무김치, 브로콜리 데친 것을 올렸다. 각자 접시에 먹을 양만큼만 연어를 올리고 구운 채소를 함께 어우러지게 했다. 색깔이 제법 예쁘다. 빨강 노랑이 종일 마음을 잡지 못한 나를 눈뜨게 한다.
언제나 후다닥 끝나는 식사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몇 번이나 말을 건네는지 모르겠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애들에게는 이리도 크게 와 닿았나 싶다. 내가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즐겁게 감동하며 먹는 모습을 보니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어디에도 두지 못했던 내가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박수를 그리워했나? 혼자 만들어가는 내 세상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으로부터의 칭찬과 격려를 기대했었나 보다. 글을 쓰며 나를 세우고 싶었다. 지인들에게도 글을 쓰는 건 내 하루의 중심을 잡는 일이라고 얘기하곤 했다. 언제나 아침이면 나를 깨우는 자명종처럼 노트북 앞에 앉게 했는데 그것이 잘 안 되는 며칠이었다.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리듬을 바로 잡는 건 생각보다 힘들다. 쓸 거리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편의 한마디가 내게 큰 충격이었나 보다.
“당신 글은 일상, 음식, 아이들 세 가지로 압축되잖아.”
사실이다. 틀리지 않은 말인데 왜 그 말이 가슴을 아프게 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쓰는 글에 대한 가치 평가로 들려왔던 것 같다. 한 마디에 흔들리는 걸 보니 내 마음이 그리도 약해졌던 모양이다.
쓰는 일이 어려움을 매일매일 느낀다. 그러다 보면 왜 쓰려하는지에 대해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쓰고 싶다. 그러다 익숙해서 습관처럼 그냥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그러다 보면 끝을 맺게 된다.
매일 하는 요리도 그러하다. 어떤 특별한 마음으로 도마를 들어 자리를 잡고 칼을 들어 야채를 썰고 다지는 게 아니다. 식사 때가 되어가니 무엇이라도 먹어야 하고 가끔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색다른 것을 올린다. 때로는 그냥 집밥의 표본처럼 굳어진 것들로 대충 먹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큰 탈 없이 지난다.
지난주에 먹었던 전복 삼계탕과 감자 수프도 이와 연장 선상이다. 하루하루가 지루하지 않도록 마음을 쓰는 일이 만든 결과다. 머리에 생각하는 여러 가지가 구체적으로 내게 잘 다가왔으면 좋겠다. 무얼 쓰고 싶은지, 내 마음이 어떤지 그 끝을 탐구해 보고 싶다. 너무 무게를 잡고 있나 싶다. 연어 스테이크 한 상이 비워졌다. 이국의 맛이 우울했던 마음을 잠시나마 붙잡아 둔다. 쓰고 싶은데 무얼 써야 할지 마음이 잘 서지 않는 날이었다. 밥을 하며 하루를 정리한다. 밥하는 것만큼 글쓰기가 편안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