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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 4색 우리 집 김치 이야기

# 22

by 오진미


김치 맛에 빠졌다. 먹어도 먹어도 그 오묘한 조화가 입안에서 나를 유혹한다. 지난겨울 정신없던 토요일 아침부터 두 시간 반 만에 후딱 만든 김장김치다. 서서히 신맛이 나면서도 달콤하고 고춧가루의 찐득한 느낌이 자꾸 손이 가게 한다. 김장김치는 일 년 양식이라는 말이 과하지 않다. 맨입에 먹어도 맛있다. 무슨 디저트 카페에서 초콜릿 케이크를 살짝 베어 먹듯 찐한 평화가 몰려온다.


# 언니표 부추

우리 집에는 이외에도 세 종류의 김치가 있다. 쪽파, 부추, 열무다. 농사지은 것을 기꺼이 나누는 이들의 넉넉한 마음이 함께 하기에 특별하다. 부추부터 얘기해야겠다. 완도 바닷바람을 맞고 자랐다. 월급쟁이에서 시골 농사꾼으로 변신한 위층 언니 부부가 일군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현관문을 쿵쿵쿵 두드리는 소리다. 문을 열어 보니 언니가 바쁜 걸음에 파란 비닐에 담기 부추를 주고 정신없이 간다.

“굵지 않은 건 당근 얇게 채 썰고 김치 담가 먹어라. 알았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종종 밭에서 나는 무언가를 던져주고 가는 언니다. 자꾸 받다 보니 익숙해지는지 “언니 고마워요.”하고 냉장고 야채 박스에 넣어두었다. 바로 해 먹어야 맛있다는 말을 잊고 싶었다. 귀찮음에 하루를 묵힌 다음 날이다. 봄날의 아침은 뭔가 신선하고 새로워야 할 것 같다. 김장김치를 생각하다가 부추가 생각났다.


김장 때 남은 양념을 꺼내고 부추를 얼른 씻어 채에 받혔다. 넓은 양푼에 물 빠진 부추를 넣고 양념과 멸치 액젓, 당근, 깨소금, 매실액을 넣고 비볐다. 그야말로 총알 탄 부추김치다. 접시에 수북이 올렸다. 부추의 싸하고 아삭하게 씹히는 맛, 달큰한 초록의 향이 올라온다.


#엄마표 쪽파

“쪽파가 언제 그리 컸는지 모르게 너무 자라 버렸다. 먹겠다고 하면 뽑아서 보내줄게.”

엄마의 전화다. 무엇이든 보내준다면 거부하지 않는다. 두고 먹으면 살림에 보탬이 될 것 같은 마음이다. 다음날 택배가 도착했다. 그야말로 쪽파 산이다. 쪽파 뿌리에 묻은 흙에서 우리 집 냄새가 난다. 코로나로 못 간지 일 년이 다되어 간다. 혼자 향기에 빠져 한참이나 몇 번을 코에 갖다 대었다. 따뜻한 온기가 흐른다. 덩달아 기분도 살아난다.

양이 너무 많아 어찌하기가 어려웠다. 거세어 이웃에게 주기도 그러했다. 우선 신문지에 돌돌 말아 비닐에 싼 다음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났다. 냉장고가 놓인 베란다를 지날 때마다 자꾸 마음이 쓰이는 게 꼭 죄지은 사람 같다. 얼른 쪽파를 손질해야 하는 걸 알면서도 외면했다. 꼭 해야 하는 숙제가 되었다.


그러다 나흘째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듣는 중에 거실에 신문지를 가득 깔고 시작했다. 뿌리는 양파 알처럼 알에 배어 단단하다 못해 튼튼하다. 한 시간 정도를 씨름하니 끝이 보인다. 마음이 후련하면서 뿌듯하다. 우선 씻고 무얼 할지 궁리하기로 했다. 흐르는 물에 샤워를 시키고 빨간색 채반에 차곡차곡 쌓았다. 일부는 잘 썰어 파전과 양념 용도로 냉동하고 나머지는 김치다. 파를 썰다 보니 눈에 매운지 눈물이 살짝 비친다. 세 봉지 정도를 가득 담아 냉동실로 직행했다.

“나 정말 김치 박사 아냐. 남들은 김치라고 하면 친정엄마가 해 주거나 사서 먹는데 이리도 뚝딱해내니 말이야.”

듣는 이 하나 없지만, 김치통을 채운 흐뭇함에 혼잣말을 했다. 나를 위한 칭찬세례가 몇 초간 이어졌다.


# 텃밭 표 열무김치

“이거 주말에 아빠 텃밭에서 열무 뽑은 거로 엄마랑 조금 담갔어요. 맛이나 보라고요.”

동네 친구가 김치 한 통을 쇼핑백에 담고 왔다. 예전에도 몇 번 받아먹어 본 김치다. 자연의 맛이 살아있는 그야말로 엄마 손맛이다. 처음 그 김치를 받고 얼마 동안 혼자 멍해 있었다. 엄마가 그리워지면서 김치가 최고의 반찬이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점심을 앞둔 시간이었기에 갑자기 배가 고파지면서 그 맛이 궁금해졌다. 밥과 김치만으로도 충분한 밥상을 차렸다. 너무 크지도 어리지도 않은 딱 좋은 열무에 젓갈과 마늘 향이 잘 어우러졌다. 자박자박한 김칫국물도 시원하다.


세 사람의 마음이 우리 집 봄맛을 책임지는 요즘이다. 언제나 따스한 한 마디를 잊지 않는 든든한 이웃들이다. 엄마는 언제나 자식 걱정 마를 날이 없다. 무엇이라도 생기면 택배로 직행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촌에 산다고 뭐가 생기는 게 아니야. 몸을 움직여서 씨를 뿌려야 파든 나물이든 생겨나는 거지.”

엄마의 쪽파도 그러했다. 시골이니까 당연한 게 아니었다. 땅을 귀하게 여기는 농사꾼의 쉼 없는 노력이 결실이었다. 그러니 버리는 것 없이 잘 먹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며 내가 할 일이다. 부추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평생을 책상 앞에서 지내다 땅과 친해지는 건 간단하지 않다. 아무리 인터넷에 농사 정보가 넘쳐나지만, 경험이 따라오기엔 부족함이 많다.

“난 그 농사 싫어. 아침부터 나가면 허리 펼 겨를 없이 땅에 코 박고 사는 것 같아. 몸은 더 안 좋아지고 그래서 매일 우리 먹을 것만 조금 하자고 말해. 너무 힘들어서.”

남편과 친구 삼아 농사일하는 이웃 언니는 매번 농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를 알려준다. 시간만 나면 병원 신세를 지는 걸 알기에 더없이 소중한 것들이다.


열무김치 또한 어떠하랴. 매일 밭으로 출근하는 친구 친정아버지의 땀방울이 만들어 낸 결과다. 땅을 어찌나 아끼는지 씨앗들에 피해가 간다고 가족들이 밭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말린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다. 열무 씨를 뿌리고 뽑고 다듬어서 씻고 절인 다음, 양념을 준비하고 김치가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친다. 하나라도 거를 수 없는 반드시 이어져야 하는 것들이다. 그 일이 절대 간단치 않음을 잘 알기에 찡해 온다. 수식어를 달지 않는 그의 묵직한 진심이 전해졌다.

요즘 김치 만드는 밀 키트가 유행이라고 한다. 중국산 김치에 대한 불안감은 직접 만들어 먹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으로 미치는 모양이다. 주부가 되고부터 그러니 십여 년 전부터 김치와 가까웠다. 계절이 바뀔 때면 망설임 없이 싱싱한 채소들은 김치로 변신했고 식탁에 올랐다. 나만이 환호하는 반찬이지만 괜찮다. 밥이 어색하지 않듯 어느 순간부터 김치는 당연히 해야 하는, 나를 위한, 내 만족을 위한 일이 되었다. 김치가 냉장고를 꽉 채웠다. 4인 4색의 이야기를 갖고 당분간 우리 식탁을 심심치 않게 할 녀석들이다. 내가 김치를 먹는 건 단지 반찬이 아니다. 나를 돌봐주는 그들이 내게 보내는 조용한 응원을 오감으로 알게 되는 감동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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