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핸드메이드 돈가스의 비밀

# 23

by 오진미


매일 먹는 밥의 메뉴는 누구를 중심에 둘 것인가에 달렸다. 중학교에 들어가 처음 맞닥뜨린 중간고사 준비에 예민해진 큰아이가 떠올랐다. 냉장고를 뒤지며 무얼 만들까 고민하다 등심 덩어리가 보였다. 돈가스다.


몇 달만이다. 그동안은 잊고 있었다. 방학과 온라인 수업으로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가까이 두고 먹던 것들은 오히려 멀어져 갔다. 내 귀찮음도 한몫했다. 집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돈가스 전문점을 몇 번 찾았다. 그러고 보니 안 먹은 게 아니라 집에서 만드는 일에 인색해 있었다.


가게를 지날 때면 냄새에 이끌려 포장하고 와서 보면 생각했던 맛이 아니다. 고기도 꽤 두툼하고 바삭하게 잘 튀겨졌는데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는 맛있다고 열심히 먹지만 내가 생각하는 돈가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한두 조각을 먹고 나면 부담스러워졌다.

갓 은행에 입사한 언니는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 데려갔다. 시골에 살던 난 그때 돈가스와 처음 만났다. 서양식 식사예절을 머리에 새기며 수프를 시작으로 한 접시에 양배추 샐러드가 한편에 작은 산을 이루고 큼지막하게 나온 그것은 노르스름하면서도 갈색인 빵가루가 싸라기눈이 쌓인 것처럼 신기했다. 수저 대신 포크와 나이프라는 낯선 도구가 있기에 긴장되어 언니를 천천히 따라 했다. 맛을 음미하기 이전에 조심스럽고 불편했다.


기대가 큰 탓이었을까 맛은 그냥 그랬다. 몸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어떻게 먹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지하에 자리 잡은 그곳에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한껏 멋을 낸 어른들이 얘기하며 식사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어색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일본식이니 왕돈가스니 참 다양한 종류를 먹어 보았다. 익숙해지니 된장찌개처럼 편안한 게 되었다. 이제는 양식이라 불리던 이국의 무게를 벗어던진 지 오래되었다.


아이들에게 돈가스는 일종의 깜짝 선물 같다. 학교 급식에서도 돈가스가 나오는 날은 아침부터 아이 표정이 밝아진다. 학교 가는 이유가 점심 먹는 게 전부인 것처럼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만든 것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엄마 잘 먹을게요.” 식탁에 접시가 오르자마자 우렁찬 인사다. 순식간에 그 많던 것이 사라진다. 바라만 보아도 뿌듯해지는 숨 쉬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난 내가 만든 돈가스가 제일 좋다. 자화자찬하려니 망설여지지만 어쩔 수 없는 솔직한 마음이다. 마트에서 사 온 돼지고기를 적당한 두께로 썬다. 너무 도톰한 것보다는 얇지 않은 중간 정도를 선호한다. 소금과 후추를 뿌린 다음 잠시 두고 밀가루와 빵가루 달걀 물을 준비한다. 우선 달걀 물이 잘 묻도록 고기에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히고 달걀과 빵가루 순서로 이어지는 변신의 시간이다. 빵가루에 찬물을 살짝 뿌려주면 건조한 가루에 습기가 스며들어 고기에 잘 붙는다.


그다음은 튀기기다. 정확히 말하면 구워주는 과정이다. 집에서 기름 온도를 적당히 맞추기도 어렵거니와 쓰고 남은 기름 처리도 문제이기에 선호하는 방법이다. 에어프라이어 이전에는 압력 팬에 뚜껑을 닫고 은은한 불에 구웠다. 요즘은 180도에서 상태를 봐가며 10여 분을 기다린다. 더할 것도 없는 간단한 순서다. 이것조차 멀리하고 싶어 냉동식품이나 굽기 직전 상태로 만들어진 것을 사 오기도 하지만 언제나 후회의 반복이었다.


돈가스에 대한 애정은 내 일에 대한 각별함에서 출발하는 듯하다. 돈가스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 특별할 것 없다고 하면서도 몇 가지의 단계를 거쳐야 하기에 번거롭다. 정리해야 할 그릇들도 쌓여 몸이 쉼 없이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도 내 눈으로 확인하면서 천천히 완성해 가기에 믿을 수 있다. 손이 고생한 만큼 접시에 쌓여가는 돈가스를 보며 찬사를 보낸다. 애쓴 나를 응원하는 위로이며 고마움이다. 타인에게서 평가와 박수를 기다리기는 일은 외롭고 힘들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내가 스스로 헤아려 줘야 할 몫이다. 묵힌 장맛처럼 돈가스에 담긴 내 진심을 사랑하는 이유다.


돈가스가 다 구워졌다.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기에 접시에 먹기 좋게 가위로 썰었다. 먼저 맛보는 영광 역시 요리사인 나부터다. 바사삭하는 튀긴 음식에서 나오는 음악은 없다. 고소하고 깔끔하다. 모자라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중간이다. ‘아 이 맛이야. 그동안 왜 이 맛이 이리도 좋은 걸 몰랐을까?’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고유의 집밥 향기였다.


돈가스 꽃이 핀 저녁이었다. 아이들의 얼굴에도 함박 미소가 피어오른다. 돈가스를 만드는 동안 손을 몇 번이나 씻었는지 모르겠다. 고기와 다른 재료들을 오가야 하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잠깐이었지만 비누를 많이 사용한 탓에 손은 더 거칠어졌다. 식탁의 주인공, 내가 진정으로 마음에 두는 돈가스의 비밀은 나의 작은 손이었다. 오랜만에 양손에 핸드크림을 듬뿍 발라주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4인 4색 우리 집 김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