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

by 오진미

이틀째 걷기와 거리를 두고 있다. 목 주변 느낌이 이상하게 불편하더니 인후염이다. 때마침 날씨는 봄날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싸늘해졌다. 몸이 편치 않으니 밖으로 나가는 일이 망설여졌다. 걷기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운동이다. 별다른 준비가 필요 없고 바로 밖으로 나가면 가능하기에 간단해서 편하다. 그동안 내가 걸었던 곳들의 풍경들이 스쳤다.

처음 생각이 가지를 뻗어나간 곳은 병원이다. 지난겨울 3일 정도 병원에서 보호자 생활을 했다. 남편이 수술한 까닭에 간호하며 병상을 지켰다. 첫날 침대를 안내받고 주변을 둘러보다 열심히 병동 주변을 걷는 사람들이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고 있거나 그들의 보호자로 함께 머무는 이들이었다. 수액 주머니를 달거나 때로는 부축한 상태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침대에 누워서 몸을 챙길 만도 한데 그들이 그런 모습을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한두 시간 보내다 보니 그 마음이 전해져 왔다.


내일을 위한 오늘의 노력이었다. 병원에 가는 이유가 아픈 곳을 치료하기 위함이지만 그곳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다음은 환자의 몫으로 돌아온다. 병이란 게 몸 어느 한 곳이 원활하지 않아서 일어나기에 해결 법은 막힘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최소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걷기였다. 그러니 틈만 나면 움직였다. 하루라도 빨리 그곳을 벗어나기 위한 적극적인 표현이었다.


나 역시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간 한 시간 반 동안 넋을 놓아버린 사람처럼 걸었다. 같은 곳을 수십 번 이상 반복했다. 좋은 결과이기를 기도하며 걷고 또 걸었다. 그것은 순간 가지를 뻗는 불안과 초조를 잠재우는 방법이었다. 성당에 안 간지 오래됐지만 묵주 팔찌를 손에 꽉 쥔 채 그렇게 돌다 보니 시간은 흘렀고 회복실에서 병실로 오는 남편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찌나 걸었는지 몇 시간에 지나니 다리가 뻐근하고 후들거렸다.

하룻밤을 병원에서 지내고 새벽이 올 무렵이었다. 모두가 잠들 것 같은 그 시간에도 누군가는 걷고 있었다. 그리 나이가 많지도 않은 이였는데 환자복을 입은 채 몇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얼굴은 진지하면서도 수심이 가득했다.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쉼 없이 나아갔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아픔이 뒷모습에 어려 쓸쓸해 보였다. 오가는 이 찾기 힘든 고요한 바깥 풍경을 살피다 문득 좀 전에 마주쳤던 환자가 생각났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잠들기가 힘들었으리라 미뤄 짐작할 따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몇 주 동안 집에서 쉬는 남편과 매일 함께 걸었다.

“여보 걷는 사람들 많지, 저 사람들 왜 저리 열심히 할까. 아마 살기 위해 걷는 걸 거야.”

어찌 보면 냉혹하고 섬뜩한 말을 남편에게 건넸다. 어느 순간부터 온 힘을 다해 걷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저마다 걷는 이유가 있겠지만 건강이 최우선이라고 여겨졌다. 그 깊은 속내를 따라가 보면 곧 삶의 문제와 연결되었다. 운동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남편에 대한 충격 요법이기도 했고, 걷기에 대한 내 솔직한 마음이었다,


20여 년 전 여름이 한창일 때 한강변에서 열심히 뛰고 걸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나가보면 항상 할머니 할아버지가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아주 천천히 걸어가거나 그곳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안부를 물으며 강둑을 걸었다. 처음에는 부지런함에 놀랬고 그다음부터는 삶을 정리해 가는 무대에 오른 그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언제나 소리 없이 받아주는 강물에 기대며 그곳에서 걸으며 가슴 열고 하늘과 주변을 바라볼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매일 가는 동네 공원에도 곧 쓰러질 것 같이 힘들어 보이는 어르신들이 아주 조금씩 발을 내딛는다. 심지어는 도우미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멈추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모습이 살아가는 동안 조금이라도 잘 지내보기 위한 몸부림으로 읽혔다. 삶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열망이었다. 그 옆을 스쳐지날 즈음이면 나 역시 조용해지고 발걸음도 조심스럽다.


걷다 보면 수면 위에 떠 올라 주변을 맴돌던 많은 생각들이 잠시 동안 사라진다. 땅에 발을 딛고 걸어가는 순간에 집중하게 된다. 숨이 가빠지고 땀이 나고, 안 쓰던 몸이 활발해지니 그만하고 싶은 마음과 갈등한다. 그 위기의 순간을 지나면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면서 잔잔해진다.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들을 맞닥뜨릴 때 난 걷는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가고 받아들이는 여유가 생기는 듯하다. 내일부터는 날이 따듯해진다고 하니 다시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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