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가 왔다. 어제 주문한 스탠드를 문 앞에 놓고 갔다는 안내다. 문을 빼꼼히 열어 투명 테이프로 단단히 포장된 것을 칼로 뜯기 시작했다. 직접 조립해야 하는 제품이기에 설명서에 나와 있는 부품들이 다 들어 있는지 살펴본 다음 천천히 맞춰 나갔다. 드디어 하얀색 긴 목을 가진 스탠드 완성이다. 얼마 전부터 마음에 두던 그것이 내 것이 되었다.
며칠 전에는 새벽에 글을 쓰다 광고로 올라와 있는 브랜드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무슨 마음인지 옷들을 이리저리 살피다 운동할 때 입을 바지가 생각났다. 강력 추천하는 가벼운 스타일의 것을 골랐다. 삼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기능성까지 갖추고 있어 괜찮았다. 하루가 시작되기도 전 쇼핑하고 나니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마음이 살짝 들뜨기 시작했다.
지난달에도 온라인에서 청바지와 니트티를 주문했다. 직접 가서 사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거니와 마음이 가는 옷이 생겼기 때문이다. 모델이 입은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림에 불과하다. 이틀이 지나니 발송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현관 앞에 비닐봉지가 무심한 채로 놓여있다.
얼른 집으로 들어와 강력 접착제로 밀봉된 부분을 조심스레 뜯고 입어보았다. 보는 이 하나 없으니 거실을 거닐고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느낌을 살핀다. 생각했던 것보다 충분히 만족스럽다. 춤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구멍을 찾을 만큼 어색하고 자신 없어하는 내가 갑자기 몸이라도 흔들어댈 태세다.
나를 즐거움으로 이끄는 건 소소한 쇼핑들이다. 필요하다는 게 주된 이유지만 엄밀히 따지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때로는 우연히 본 것들이 눈에 아른거릴 때 장만하게 된다. 주문 완료와 배송을 알리는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리고 집 앞에서 맞닥뜨렸을 때 가슴이 요동친다.
주문 완료는 일종의 달리기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날이면 네다섯 명이 한 줄에 늘어선 다음 선생님의 총소리에 맞춰 온 힘을 다해 뛰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보이는 건 저 멀리 희미한 결승선뿐이다. 이런 심리를 잘 이용하는 게 홈쇼핑이다. 수백 명 혹은 몇천 명이 주문했다는 안내 멘트를 쇼호스트가 흥분된 목소리로 날린다. 그때부터 휴대전화를 들고 마음이 바빠진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누가 내 것을 앗아가 버릴 것 같은 초조함이다. 주문을 하고 나면 달리기에서 1등으로 들어온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다. 성공했다는 안도감과 기대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이제부터는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이다. 빠르면 새벽에 늦어도 2~3일을 넘기지 않는 게 요즘의 온라인 배송이다. 이상하게도 물건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대상이 옷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오랜만에 모임이 있어서 옷 하나 주문했어. 내일모레 입고 가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오겠지.”
동네 언니도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며 몹시도 기다리는 눈치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특별한 날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새 옷을 입고 나갔을 때 마주칠 사람들의 시선을 머릿속으로 스케치한다. 당연히 잘 어울릴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재미있고 즐거운 상상이다.
밖에서 일을 보고 집으로 들어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택배가 눈에 들어온다. 내가 그리 민첩한가 놀랄 만큼 상자를 재빠르게 손에 쥐고 집안으로 들어선다.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다. 옷을 입어보니 화면 속 모델 느낌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괜찮다면 합격이다. 누구에게라도 연락해서 동네 카페로 나가고 싶다.
“네가 돈을 안 써서 그래. 한 달에 십만 원이라도 꼬박꼬박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사봐.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몇 년 전 우울해하는 나를 위해 학교 선배가 건넨 말이다. 내게 투자하지 않는 일상이 원인이란다. 전업주부가 되면서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절약’을 생활 곳곳에 새겨놓듯 살아갈 즈음이다. 실용성과 필요성 두 박자가 맞아야 지갑을 열던 때였다.
“언니 왜 그리 궁상을 떨어. 좀 쓰면서 살아.”
동생은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그리 보였는지 기회만 되면 얘기했다.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현재를 예쁘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미루지 않기로 했다.
물건을 사는 건 또 다른 나의 표현이면서 통제되지 않는 욕구다. 옷, 주방용품, 아이에게 줄 선물 등 쇼핑 목록에 오른 것들은 어떤 시점에서 내 마음이 가는 일이었다. 나를 돌보는 일이 책을 읽거나 생각하기 등 선명히 다가오지 않는 것들로 채워갈 때는 막연하고 때로는 답답하다. 그에 비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마련하는 건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이며 내 앞에 놓여있기에 강력한 효과를 지닌다.
돈을 쓰는 일은 즐겁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쓰는 만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기에 불안하기도 하다. 앞으로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장밋빛 만을 쫒아가며 오늘의 나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분간 몇 가지의 쇼핑을 더 할 듯하다. 화분을 놓을 라탄 바구니가 눈에 아른거린다. 아낌없이 쓰자. 그리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기에 빈 소리라도 늘어놓고 싶다. 며칠 동안의 기다림, 그 행복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