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미학

by 오진미


비가 온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메모를 하다 고등학교 시절 작문 선생님의 얘기가 생각났다.

“비의 미학 알아요? 우리가 비를 맞으면 기분이 어때? 축축하고 눅눅하고 별로잖아. 근데 말이야. 이 비를 옷이 다 젖도록 흠뻑 맞는 거지. 그럼 어떨까? 그땐 불편함보다는 상쾌함이 있어 빗물이 온몸을 뚫고 가는 기분이지. 그게 비의 미학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하며 감탄했다. 선생님다운 특별한 관점, 어린 내가 바라보기 힘든 지점을 콕 집어서 알려주는 게 멋있었다. 그 후로 어른이 된 후에도 비를 떠올리면 선생님의 그 말이 종종 메아리쳤다.

내 마음이 움직인 건 딱 수업이 끝날 때까지였다. 며칠이 지나 예상에 없던 비를 맞닥뜨리자 그건 한낱 낭만에 지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생각에 공감하기 힘들어졌다. 일종의 반항심 같은 거였을까? 어찌 보면 다 젖고 돌아간 집에서 편하게 씻고 옷을 빨거나 잘 말릴 방법이 있는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 여겼다. 학교 책상에 앉아 선생님의 얘기를 곱씹을수록 한가하거나 사치로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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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생이던 난 비를 잘 맞고 다녔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이었고 예보 기능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다. 아침 하늘을 보고 날씨를 점쳤다. 흐린 날은 우산을 챙기는 일에 마음을 썼지만 깜박하거나 갑작스러운 소나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햇빛을 보는 날 보다 비가 많은 섬의 변화무쌍한 날씨도 여기에 한몫했다.


수업을 받다가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드리우고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들썩인다. 불안해진다. 집에 돌아갈 걱정부터 시작해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짐작한다. 당장 한 벌 뿐인 교복을 말려서 다음날 학교에 입고 가야 하기에 다급함에 절박함이 더해졌다.


여름 보충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가려는데 맑은 하늘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내렸다. 비를 피해 열심히 달려가 보지만 내 뜀박질 속도보다 항아리에 물 붓듯 쏟아지는 비를 감당할 수가 없다. 건널목 앞에 서니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고 옷에 몸이 찰싹 붙었다. 어떤 무엇을 가져다 밀착시키려 해도 할 수 없는 천연 풀, 빗물이 옷과 친구가 되어 내 살갗을 간질인다.


이런 내게 비의 미학이라니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가서 옷을 빨아 탈수하면 금세 마르지만 세탁기 하나 없는 자취생의 비애였다. 빨래를 하고 마른 수건으로 젓 먹던 힘까지 내어 물기를 없애는 일에 집중했다. 물이 떠다닌다고 생각될 만큼 주위가 습했다. 선풍기를 동원해 말리다가 마지막 단계는 드라이를 사용하면 적당히 입을 수 있는 정도에 이르렀다. 열 일 제쳐놓고 빨리 끝내야 하는 큰 과제였다.


어느 여름날 가족들과 사려니 숲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숲에서 느껴보는 편안함과 향기에 이끌려 꽤 오래 걸었고 준비해 간 찹쌀떡과 삶은 계란을 먹으며 즐겁게 보냈다. 여름휴가라는 타이틀이 주는 설렘이 가득할 때였고, 엄마와 함께 수다를 떠는 일은 휴식이 전해준 선물 같았다.


정리하려고 나설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게 아닌가. 하늘을 다 덮어버릴 만큼 키 큰 나무가 가득한 깊은 숲에서 비는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노래를 불렀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빗줄기가 심상치 않다. 주차장까지 빠른 걸음으로 온 정신을 집중해서 걸었고 신호등 바로 앞에 하얀 우리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불에서 초록 불로 바뀌는 시간이 그리 긴 줄 그때야 알았다.


“엄마! 이상해. 비가 얼굴을 때려.”

아이의 말이 무섭게 후다닥 까만 현무암을 뚫고 바가지라도 만들 만큼의 위력을 가진 비가 쏟아졌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물줄기라면 조금 과장을 더 해 믿을 정도다. 비는 순간 온몸을 적시며 샤워를 시켜주었다. 처음에는 어디로든 피하려 했으나 그럴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엄마! 이거 완전 폭풍우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온몸으로 비를 만나기로 했다. 아이들은 재밌다며 폴짝폴짝 뛰었고 1~2분이 지나자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멈췄다.


젖은 몸으로 차에 올랐다. 꿉꿉하면서도 몸 어디에선가 물 떨어지는 느낌이 이상하게도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은 무용담을 들려주듯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누구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집에 가서 대충 씻은 다음 바다로 나가기로 했기에 전혀 문제 될 게 없었다. 이후에도 그날은 뇌리에 콕 박혀있는 여름날의 추억이 되었다. 폭포수를 온몸으로 느꼈던 그 비의 정서를 잊지 못한다.


비의 미학이 다시 떠오른다. 자취하던 여고생 시절의 비는 생활인으로서 반기기 어려운 불청객이었다. 여름날 숲에서 만났던 비야말로 아름다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옛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돌이켜 보면 비의 미학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 거리를 두려고 할수록 힘들어지기에 비를 맞듯 오롯이 받아들이는 게 낫다는 의미 아닐까?


우산이나 비옷이 있다면 굳이 비를 맞을 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방법이 없지 않은가. 비를 어쩌겠어하고 그치기를 바랐다. 기다렸던 여름날 억수같이 퍼붓는 비에는 집이라는 해결의 공간이 있었고, 난 어른이었다. 그 비에는 뜨거운 햇살에 대한 보상처럼 시원함이 있었다.


모든 일에서 미리 거부하거나 불안과 걱정을 둘 필요도 없다. 누구의 말처럼 아무리 애써도 될 만큼 된다는 생각을 가지면 피하려고 마음 졸이다 소중한 시절을 흘려보내는 일도 없을 것이다. 내가 지켜야 할, 나를 위한 한마디다.


비가 내리고 나면 세상이 깨끗하다 못해 맑다. 사람이 아무리 주위를 정리하고 살펴도 강한 빗줄기만 못할 때가 많다. 내리는 비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나무는, 숲은, 산은 강은 온전히 받아들인다. 빗물을 저장하고 땅에 스며드는 순간 싹을 틔우고, 쌓인 먼지를 청소하고, 물고기들에게 좋은 영양분을 제공하며 제 살길을 마련한다.


폭풍우가 지나면 꺾인 가지와 떨어진 나뭇잎들, 주변을 나뒹구는 페트병과 여러 가지를 보며 할퀴고 간 상처의 흔적을 마주한다. 어찌할까 고민하던 어려움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연스럽게 정리되기도 한다. 직면하는 순간 받아들이게 되는 용기가 생기는 까닭이다. 비는 아주 조금 내릴 것이라고 한다. 비의 미학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흠뻑 젖어 보는 것, 어떤 일이든 마주하는 사람들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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