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냄새가 나지 않았다. 열 한 시를 조금 넘긴 이때 즈음이면 주변을 휘돌아 가고 있을 고소한 향기가 없다. 건널목을 건너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무슨 일인지 빵집 앞에서 확인하기 위해서다. 흑미빵이 나오는 시간인데 문은 굳게 닫히고 안은 깜깜하다. 가끔 개인 사정으로 하루 쉰다는 짧은 쪽지가 있곤 했는데 그것마저 찾기 어렵다.
주위를 몇 분 맴돌았다. 그러다 팔절지 종이에 손으로 쓴 안내문이 들어왔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가게를 폐업합니다.’ 짧은 두 줄이었다. 당황스러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오가며 가끔 빵을 사는 가계였는데 생각보다 내가 마음을 흠뻑 주고 있었나 보다.
동네빵집이었다. 이름 그대로 동네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고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닦은 제빵사가 운영했다. 치즈와 과일, 소시지와 여러 가지 달콤하고 자극적인 빵들이 대세인 빵집과는 달리 이곳은 간단했다. 통밀빵과 견과류가 들어간 식사 빵이 중심이었다. 건강한 맛 그대로였고 화려하지 않고 소박했다.
그윽한 빵 냄새에 이끌려 몇 번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내가 좋아했던 건 흑미빵. 흑미에 견과류와 고소함을 최고치로 올려주는 치즈 덩어리가 어울려 보라색이 살짝 감도는 그것이 아른거린다. 한 번 맛본 이들은 오랜 단골이 되었다. 오후 두 세시를 넘긴 시간에 가면 몇 개의 빵이 남지 않을 정도로 인기였다.
남편이 빵을 만들고 아내가 계산대를 담당했다. 말이 별로 없을 것 같은 아저씨는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빵을 반죽하고 구웠다. 아줌마는 매일 화가 난 듯이 퉁명스럽다. 처음 빵을 사러 갔던 지인 몇몇은 어색하고 이해되지 않는다며 불편해했다. 그것도 잠시 빵이 그리워 가게 되는 사람들에겐 친절하지 않다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빵 맛이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
빵집과의 이별이 당황스럽다. 며칠 전 갔을 때도 가게가 사라진다는 눈치가 전혀 없었다. 운영이 힘들었는지 개인 사정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그냥 흘리지 못하고 오랫동안 담아두는 나를 보며 그동안 이리도 크게 마음을 두었는지 놀랐다.
내가 좋아하는 빵들이 가지런히 진열장에 놓여있고 그곳에서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내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벽돌을 내부 벽에 붙여 놓았고 은은한 조명은 캔버스에 그린 서양 어느 화가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브레첼과 바게트, 무거운 돌같이 느껴지는 단단한 빵을 입구에 꽃을 꽂듯 정성스럽게 두었다.
4년 전부터 그곳을 알았다. 시간으로 치면 그리 많지도 적지도 않은 시간을 함께했다. 그리운 고향의 냄새를 맡듯 그곳을 지날 때 느껴지는 따뜻한 빵 굽는 냄새가 나를 달래주었다. 빵을 먹지 않아도 잔잔한 편안함이 찾아오면서 설렘이 일어났다.
이별은 어떤 형태든 유쾌하지 않다. 준비된 헤어짐이라 하더라도 슬프고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가게를 접고 가야 하는 마음이 오죽했을까. 그동안 그곳을 아껴준 사람들에게 간단한 인사로 마무리했다면 내 마음이 괜찮았을까? 지극히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 욕심인지도 모를 일이다. 매일 무엇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게 현대사회의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적응이 어렵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꽃봉’이라는 동네 카페가 눈에 들어오는데 여느 때보다 반갑다. 빵집으로 향했던 마음을 이곳에 두고 싶었을까? 가끔 커피가 간절해질 때 찾는다. 이름 때문에 자꾸 쳐다보게 되고 특별하지 않지만 마음 가는 곳이다. 꽃봉, 아직 피지 않아서 신비롭다. 모양과 향기가 궁금하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름처럼 주위 사람들과 오랫동안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빵집과 이별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공원을 돌다가 함께 운동하는 동네 친구에게도 얘기하면서 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듣는 그는 시큰둥했지만 나는 시간이 갈수록 생각의 덩어리가 커진다. 이 마음을 모아 그곳을 아는 이들을 만나면 한바탕 얘기를 늘어놓았다. 공감해 주는 이들에게서 위로받았다.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간절해지고 슬퍼지는 법이다. 이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 본다. 벌써 그곳이 헐리고 다른 무엇을 위한 공사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