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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9. 2021

열무야 열무야

# 26


열무다. 얼갈이배추를 두고 고민하다 열무 한 봉지를 바구니에 담았다. 초록과 연두가 어울려 만들어낸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깔이 고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초록의 대파와, 주황의 당근, 진한 보라색의 콜라비 이 모든 색이 신기할 따름이다.      


장바구니에 담기 전에 찬찬히 살펴보면 몰랐던 것들을 하나둘 알게 된다. 로컬푸드 매장에서 아침마다 새롭게 진열된 것들에서 계절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느끼며 소리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자연의 색 앞에서 아주 잠깐의 쉼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이상을 가는 이곳에서는 초록이 앞도 적이다. 상추와 미나리, 깻잎, 파, 취나물, 머위에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것까지 그 수는 더 많다. 유독 열무에 마음이 가는 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되었다. 그 시절을 불러내는 열쇠다.     


과수원 농사를 지으면서도 틈만 나면 엄마는 땅을 괭이로 일궈 밭을 가꿨다. 일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밥상에 오를 오이며 가지, 호박, 나물들이 주 종목이 되었다. 땅이 풀리고 따스한 기온이 돌기 시작할 봄날이면 엄마는 열무 씨를 뿌렸다. 비가 많은 섬의 흙은 다른 어느 곳 보다 빨리 싹을 틔웠다. 며칠이 지나면 뾰족뾰족 어린싹이 돋기 시작한다. 학교 가는 일에 바쁘다 일요일에 가서 보면 가면 어느새 내 손바닥만큼 자랐다. 여린 줄기와 잎들이 하늘거리는 게 싱그럽다.     

 

봄 햇살이 강해지기 시작하면 열무는 하루가 다르게 컸고 엄마는 한 광주리 뽑아와 같이 다듬자고 했다. 귀찮았다. 엄마와 열무가 있는 주변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어릴 때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열무김치를 알아가는 시작이었다. 한 계절이 지나도록 오랫동안 열무는 나물과 국으로 봄날의 밥상을 도왔다.     

장바구니에 담겨 집에 온 열무는 키가 크고 단단하다. 비닐하우스에서 자랐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비바람과 더워졌다 추워지다를 반복하는 만만찮은 까칠한 봄 날씨를 신경 쓰지 않아서 괜찮았나 보다. 티 하나 없이 곧게 자랐다. 줄기는 몸에 좋은 비료와 영양제를 많이 먹은 탓인지 단단하다. 밭에서 자란 여리고 벌레 먹어 잎이 숭숭 구멍 뚫린 정겨움은 발견하지 못하니 아쉽다.     


다가오는 어느 날에는 채마전을 가꾸어 나온 할머니의 노점에서 그런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딘지 부족하고 고개를 숙여있는 그것에 마음이 간다. 꼭꼭 싸여 세상과는 담을 쌓고 살며 사방에서 공격해 오는 것들로부터 보호받고 자란 열무는 낯설다.     


열무는 봄과 가을, 사람들이 사랑하는 그 계절에 최고의 시간을 보낸다. 햇빛을 보고 크는 녀석들이지만 너무 강한 빛은 녹아버리거나 잦은 비에도 오래 견디기 어렵다. 차가운 바람이 막 시작될 무렵 가을에는 봄보다는 좀 더 단단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엄마의 손을 거친 열무는 봄부터 여름까지 끝없이 이어졌다. 김치통이 비어갈 무렵이면 설거지를 마친 늦은 저녁이나 아침 일찍 불을 때서 밥을 하는 동안 김치를 담아냈다. 고춧가루가 많으면 맛이 없다던 엄마는 붉은빛이 돌 정도만 고춧가루를 넣고 마늘과 멸치액젓, 깨소금과 달콤한 설탕을 조금 넣고 김치를 만들었다.     

 

풋풋한 냄새가 싫었다. 시장에서 사고 와서 담근 하얀 속살의 배추김치가 고급스러워 보였다. 열무김치의 소박함은 고단한 시골살이, 넉넉지 않은 우리 집 살림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기분이었다.  매번 도시락 반찬 한편을 담당했던 열무김치는 외면하고 싶었다.    

 

이제는 그리운 맛이 되었다. 아무리 흉내 내려해도 엄마의 열무김치를 따라갈 수가 없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냉장고가 없던 시절 잔뜩 쉰 김치다. 잘 익었음을 알려주는 유산균의 보글거림과 특유의 냄새는 엄마의 향기였다. 

     

지금은 만나기 힘들어졌다. 가끔 머릿속으로 그때로 들어가고 싶지만 어느 지점에서 멈춰 버린다. 열무김치는 더운 여름날 과수원 삼나무 그늘 아래에서 먹던 점심의 단골 반찬이었다. 그건 힘든 농사를 견뎌야 했던 부모님의 삶과 닮았다. 꾸밈없었고 한결같았고 부지런했다.  

    

“열무야 열무야.”

그 이름을 자꾸 부르고 싶다. 옆집 친구 이름 같다. 열무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건 성장과정 어디쯤에서 함께 숨 쉬었기 때문인 듯하다. 열무를 보고 얼굴을 찡그리던 아이는 이제 열무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두부와 함께 버무린 열무 나물을 먹으며 그때로 돌아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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