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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5. 2021

시간이 선물한 수육 한 접시

# 28

  

밥을 먹는 일은 순간이고 밥하기는 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크게 다가오는 날이 있다. 밥은 그날의 날씨와 기분, 주변의 분위기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는 집합체. 밥은 식사를 위해 식탁에 오르는 모든 먹거리를 아우르는 익숙한 단어다. 익숙하다 보니 당연하다 여기게 되어 생각의 울타리에서 벗어난다. 


밥에 대해 조금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매일 오르는 김치 조차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게 아니다. 봄날의 설렘이 추억이 되면 열무가 제철이다. 김장김치가 지루해지는 시간이 오면 초록의 열무김치를 담는 것도 익숙해짐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르겠다.  

   

주부가 삼시세끼를 차려내는 일은 그래서  경이롭다. 특별한 반찬을 올려야만 하는 게 아니다. 때로는 귀찮을 수 있고 전화기를 들어 무슨 음식을 시켜 먹는 것으로 한 끼를 때울 수도 있지만 불 앞에 서는 매일의 시간이 소중하다.     


매일 밥을 준비하며 이런 생각이 구체적으로 다가온 건 수육을 밥상에 올린 어제저녁이었다. 며칠 전부터 돌풍을 동반한 비가 내린다는 뉴스가 끊이질 않았다. 오후로 갈수록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다. 아이와 점심을 먹다 저녁 메뉴를 얘기했다.    

 “저녁에 뭐 먹을래?”

“응 엄마 글쎄?”

“오랜만에 수육 먹을까? 비도 온다는데.”

집에서 가장 진지하게 하는 이야기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대한 것. 정신없이 동생과 장난치던 아이도 이 순간에는 달려와 머리를 맞댄다. 먹는 일이 하루 중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기에 가능한 원하는 것을 위한 적극성이 발휘되는 때다.    

 

내가 말해놓고서도 아차 싶었다. 고기를 사러 가야 하는 중요한 일을 생각지 않았다. 설령 알고 있다고 한들 가기 싫다는 생각을 습관처럼 꼭꼭 눌러 놓았을 터지만. 내가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몸이 무겁고 발목과 무릎 관절 상태가 별로다. 무릎이 시큰거리는 날이면 내일이면 비가 올 거라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지금 내 몸이 그러했다. 누워 있어도 잠도 오지 않고 내내 불편하다.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 가서 고기와 간단한 장을 보고 왔다. 집에서 그리 말을 듣지 않던 몸이 나와서 걷고 있으니 살아나는 기분이다. 바람이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흔들고 지난다. 예고된 것처럼 오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몸은 다시 지치다고 힘들다고 아우성이지만 저녁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수육을 만드는 일은 시간을 보내는 여유만 있으면 된다. 냄비에 물을 붓고 인스턴트커피와 된장을 풀고, 정육점에서 준 월계수 잎 세 개를 둥둥 띄웠다. 물이 적당히 끓기 시작할 무렵이면 여기에 적당한 크기로 도막 낸 돼지고기를 넣었다. 이제부터 40여 분, 기다림을 즐겨야 할 때다.


음악을 듣고 뉴스를 검색하며 책을 읽었다. 냄비에서 살짝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고기가 익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갑자기 한방 수육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몸살 기운이거나 컨디션이 별로 일 때를 대비해 준비한 쌍화탕이 떠올랐다. 한 병을 냄비에 부으니 색이 진해지면서 한약 냄새가 살짝살짝 피어오른다.  

    

젓가락 하나를 들고 고기에 콕, 잘 들어가는지 확인해 보니 생각했던 대로다. 집게를 들고 고개를 건져내고 도마 위에서 한 김 나가도록 식혔다. 칼을 들고 적당한 크기로 써는데 어느 때보다 잘 됐음이 감지된다. 잡내가 없고 깔끔한 향만으로도 알 수 있다. 접시에 담아내었다. 시간과 더불어 익어간 김장김치와 곁들이면 다른 게 필요 없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막내와 중간고사를 끝낸 큰아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다. 그제야 내 일이 끝을 달려간다. 아이들과  퇴근한 남편의 저녁까지 끝낸 8시를 넘어서야 밥하는 일이 막을 내렸다. 부엌 정리를 하고 집안 정리를 대충 하는데 눈이 절로 감긴다.      


아침에 일어나서 먹는 일에서는 게으르지 않은 나를 돌아보았다. 일상에서 내가 이리도 꾸준한 게 있을까 싶다. 밥하는 일은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가며 길을 만들어 가는 나만의 작은 기록이며 무대였다. 


밥상을 채워가는 일은 집에서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너무 과한 칭찬 같아 부끄럽지만 그동안 십여 년을 그리했으니 충분하다며 나를 토닥여본다. 세 명의 관객, 가족들이 실컷 기뻐했고 나 역시 만족스러운 그것이면 되었다 싶다. 비가 그치고 해님이 모습을 드러낸 아침이다. 밥하러 가야겠다. 나만의 작업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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