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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7. 2021

토마토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 29


동글동글 붉은빛이 곱다. 어찌 먹을까 싶다가도 한입에 한 방울 쏙 잘도 들어가니 재밌다. 입이 심심할 무렵이면 언제나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들어온다. 


방울토마토를 새롭게 알아가는 중이다. 토마토를 담은 유리통이 비어갈 무렵이면 마트에 가야 하는 시간이다. 토마토에 관심도 없었고 좋아하지도 않는 내가 이리도 변하는 게 신기했다. 초록 꼭지 부분을 잡고 한두 개를 먹다가 생각했다.      


시간에 따라 입맛이 변한다는 걸 실감한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이나 동물원에 놀러 갔을 때 점심을 먹다 주위를 둘러보면 많은 이들이 방울토마토를 챙겨 왔다.  뭘 그리도 열심히 저것을 싸서 올까 하는 마음이면서도 무심했다.      


토마토에 관한 생각은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병설 유치원에 다니던 일곱 살 때였다. 그때만 해도 간식은 부모님이 순번을 정해서 챙겨 주었는데 요구르트와 초코파이, 삶은 계란과 요구르트가 짝을 이루는 인기품목이었다.   

   

어느 날 친구 엄마가 토마토를 하나씩 간식으로 나눠주는 게 아닌가. 여름이 다가올 무렵으로 토마토가 제철이었다. 그때 토마토는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무언지 모를 어색한 맛에 크기도 크니 부담은 커져만 갔다. 선생님이 집에 가져가서 먹어도 된다는 말에 다행이라 여겼다.     


어린 내게 토마토는 낯설었다. 달콤하지도 않으면서 어색한 맛이 금세 속이 불편할 정도였다. 잘랐을 때 단면도 이상했다. 흐물거리는 씨와 조금은 단단한 과육이 징그럽다 생각할 만큼 거부감이 컸다. 엄마는 몸에 좋은 거라면서 먹으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망설여졌다.     


대안은 설탕이었다. 토마토를 슬라이스 해서 흰 설탕을 살살 뿌렸다. 물이 많은 것이기에 순간에 스며들었고 달달함에 용기를 내어 먹을 수 있었다. 20대 성인이 된 후에도 토마토는 그저 보고 지나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마음을 둔 것은 이 년 전부터다. 아침마다 토마토, 브로콜리 당근, 사과를 넣고 주스를 만들어 먹으면서는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몸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오묘한 맛에 끌린다. 은은하게 아주 살짝 스쳐 가는 단맛과 데친 후 부드러움이 배가 된 토마토는 여러 재료와 잘 어울렸다.     


토마토의 빛깔에 반한다. 덜 익은 토마토를 두면 익기도 하지만 나무에서 잘 익은 강렬한 빛을 따라오기 힘들다. 보는 이로 하여금 토마토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유다.     

 

방울토마토는 토마토의 친구. 일반 토마토에 비해 작은 크기는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방울토마토를 먹을 때마다 풀향기 같은 것이 살짝 스치며 과자나 빵에 길들여진 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 주는 기분이다. 뭔가를 먹고 싶은 욕구가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 토마토 하나를 집으면 진정된다.     

며칠 전에는 밥 생각이 없어서 아침을 토마토와 치즈로 해결했다. 토마토를 적당한 두께로 썰고 사이사이에 생치즈를 곁들인 다음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섞은 소스를 뿌리면 끝인 카프레제. 다른 식구들이 밥을 먹는 사이에 그리 먹으니 신났다. 혼자 특별해지는 기분이었다. 쫀득한 치즈와 토마토의 새콤달콤함이 어울려 아침을 맑게 만들어 주었다.     


“크면 다 먹게 돼 있어. 어른이 되면 다 먹으니까 걱정 말아라.”

아이의 편식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아이를 다 키운 옆집 언니가 정답처럼 하는 말이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절반은 맞다고 여긴다. 토마토라 하면 그리도 손사래를 치던 나를 보면 알게 된다.   

   

시간이 약이 되어 준 것일까.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것을 쫓다 세월 앞에서 무던해지는 법을 알게 되는 것처럼 먹는 일도 변했다. 몸을 생각하고 부담이 없는 것,  땅에서 난 것들이 소중하다.      


토마토를 생각하는 내 마음도 이 어디쯤 머문다. 생활 속에서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개수가 점점 줄어든다. 없어도 괜찮다는 여유까지 더해졌다. 

“다 나이가 먹는다는 증거지. 조금만 더 있어봐라. 더 그럴 테니.”

이웃 언니는 이런 변화에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는 듯 미소 지으며 말했다.      


먹는 일과 살아가는 것이 궤를 같이한다. 밥상은 물론 손이 가는 음식에서도 변화가 생기니 마음도 몸도 가벼워진다. 무엇을 채워 넣으려는데 집중하다 보면 지치고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힘에 부치지 않고 적당하게 균형을 유지하는 게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듯하다. 달콤한 토마토 하나를 와삭하고 입에 넣는 순간에 즙이 흘러나오니 시원하고 유쾌해진다. 오늘도 통 가득 토마토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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