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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9. 2021

참치 전 1, 2부

# 30

혼자 먹으면 좋겠다. 김치와 상추 쌈장이면 끝날 일이다. 밥그릇과 큰 접시에 원하는 만큼만 조금씩 덜어서 수저만 있으면 식사 준비는 끝난다. 간단히 먹는 일이 좋게 보면 소박함으로 다른 뜻으로는 게으르거나 대충 먹는 것으로 해석된다. 요즘 드는 생각은 최소로 먹는 것. 꼭 필요한 것만 챙기니 남기는 것도 넘치는 것도 없다. 내가 환영하는 밥상이다.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주말이다. 토요일 오후에서 저녁으로 시계가 흘러간다.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를 그려보지만, 선뜻 떠오르지도 않는다. 집에 있는 것으로 간단하지만 그래도 인상 깊은 반찬 하나는 만들어야 할 텐데 서성이다 참치 통조림을 집어 들었다.   

  

최근에는 식탁에 올린 적이 없으니 괜찮겠다 싶다. 음식이라는 게 맛있거나 그렇지 않거나로 결말이 정해져 있다. 물론 그럭저럭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먹을만한 정도인 중도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일하다 보면 잘될 때도 있고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는 것처럼 그러려니 하면 될 일인데 신경이 쓰인다. 나와 가족들의 휴일이 뒤바뀌는 날. 이틀간의 분투기가 절반을 넘긴다.      

참치캔을 따서 참치를 큰 볼에 부었다. 깻잎과 부추 양파를 잘게 다지고 소금을 아주 조금 넣은 다음 달걀을 깨트려서 골고루 저어준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한 숟가락씩 떠서 잘 펴준다. 겉면에 드리운 물기가 날아가서 단단해질 무렵 뒤집으면 번거롭지 않은 전 부치기가 완성된다. 한 접시 가득 만들었다.   

   

부추의 향긋한 초록 향이 고루 배면서 참치의 느끼함은 양파와 깻잎이 잡아준다. 전이 노릇하게 익을수록 담백한 맛이 깊어간다. 여기에 상추와 양파, 파프리카가 함께한 샐러드를 만들었다. 사계절 언제나 사랑받는 우리 집 매실 간장소스에 식초와 참기름을 살짝 넣어서 먹기 직전 뿌려내면 된다.      


얼갈이 된장국에 참치 전과 상추 샐러드로 저녁을 마감했다. 내 입맛이 변하듯 아이들도 커가는 것인지 오늘따라 전이 맛있다고 한 마디씩 한다. 그동안 야채가 들어간 것들에 거리를 두었는데 웬일인지 싶지만 좋은 변화다.      


잠들기 전에 막내가 말한다.

“엄마 내일도 참치 전 해주면 안 돼?”

“그래. 뭐 어려울 것 없지. 아침에도 먹자.”

이미 내일 아침 메뉴가 정해졌다.  

   

다음날까지 먹겠다고 한 적이 별로 없다. 1박 2일에 걸쳐 찾는 게 되었으니 인상 깊은 반찬이었나 보다. 아침에도 재료만 조금 달라졌을 뿐 참치 전을 다시 만들었다. 깻잎 대신 새송이버섯을 새로 등장시켰다. 부추와 양파는 볼에 가득 담았다. 전의 주인공이 참치가 아닌 야채들로 뒤바뀔 정도다.     

 

일요일 아침도 전이 있어 그럭저럭 괜찮게 지났다. 주위 사람들은 전 만드는 과정이 기름 냄새가 집에 퍼지고 번거롭다며 즐기지 않는다. 난 이들과는 정반대다. 기름을 써야 하는 게 조금 신경은 쓰이지만 특별한 찬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있는 것들을 모아 전을 만든다. 대부분은 집에 있는 야채가 주인공이다. 밀가루와 계란 옷을 입는 순간 새로운 것으로 태어난다. 봄에는 쑥과 달래, 냉이, 방풍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나물들이 단골이다. 봄맛을 즐기는 방법으로 실망하는 일이 없으니 조금의 수고로움은 괜찮다.     


전은 밥 먹는 일이 지겨워질 즈음 분위기를 전화시키는 강력한 키를 가졌다. 냄새로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 주는 탓에 먹기 전부터 설레게 한다. 그러니 다른 것들이 필요 없다.   

참치캔을 처음 알게 된 옛날이 떠오른다. 벌써 삼십 년이 다 되어간다. 설 무렵 친척이 들고 온 선물세트에서 노란색 둥근 그것을 처음 만났다. 생선이지만 가시도 없고 옅은 갈색인 도톰한 살점에 기름이 적당히 섞여 있는 참치의 맛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중고생 시절에는 다양한 맛의 미니 참치캔을 도시락 반찬으로 유행했다. 고추, 야채 등 서너 가지 이상의 버전이 나왔다. 국물 흘릴 염려도 없고 간편했기에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신기하기도 특별하게도 여겨졌던 그것이 세월에 따라 달리 보인다.    

 

참치캔과 이제는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정도로 거리를 둔다. 시장이 반찬이듯 가끔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 더 반갑고 정성을 다하게 되는 법이다. 참치 전도 그러했다. 얼마간 만나지 못한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만 가는 시간이다. 그저 얼굴을 보는 것 그 이상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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