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워서 슬픈 오월

by 오진미


더운 바람이다. 5월이 중반을 향해 달려간다.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가족, 사랑, 선물 이런 단어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마음 한편이 아파오는데 모른 척하는 중이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저녁에 동네 화원에 들렀던 친구는 꽃을 사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줄 몰랐다며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늘어놓았다.


얘기를 듣다가 가슴에 뭔가 걸린 것처럼 불편했다. 혼자 있는 엄마 얼굴이 그려진다. 이틀 전에 엄마랑 한 시간 동안 전화기를 붙들고 있었다. 엄마는 과수원에서 일하다 갑자기 잠이 쏟아지는 바람에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큰 나무 사이에서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는 몸과 더불어 혼자 있는 외로움과 삶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버지와 이별하기 전까지 부부는 언제나 오래도록 사는 거라 여겼다. 자신 앞에 닥치기 전까지는 남의 일이라 여기며 무심해진다. 그러다 맞닥뜨리고 나서는 다른 마음이다. 인생이란 예상치 못한,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이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의 덩어리 같다.


아버지는 봄이 오던 3월에 몸이 심각하게 안 좋다는 사실을 알았고 11월에 돌아가셨다. 올해로 12년, 시간은 화살처럼 빨리 흘러갔지만 아버지와의 추억은 더 단단해졌다. 오월은 가족을 떠올리는 날이 많은 탓인지 그리움이 슬픔으로 변한다.

엄마를 가슴속 깊이 이해하고 바라보는 시간이 이즈음이다. 시골 종갓집 둘째 딸로 태어난 엄마는 약해 보이지만 강했다. 어린 시절부터 외할아버지가 병치레가 잦은 탓에 집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열심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어려움을 이겨내는 강단 있는 마음의 뿌리를 천천히 내렸는지 모르겠다.


옆 동네에 사는 아버지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 하나로 가꿔온 삶이었다. 아이들과 밥 먹고 살아야 한다는 굳은 다짐으로 열심히 살았고 별걱정 없다고 잠시 숨 돌릴 즈음 아버지가 병을 얻었다. 엄마는 그때도 크게 마음을 보이지 않으셨다. 그저 눈앞에 해야 할 일을 손 놓지 않고 이어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엄마의 마음이 오죽했을까 싶다. 겉으로 드러내 놓지 않은 슬픔의 깊이를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난 아버지를 보내며 누구나 걱정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내었다. 지극히 감정에 충실한 모습이었지만 엄마는 이상할 정도로 담담했다.


이별에 익숙함이란 없다. 시간에 묻어서 지내고 있을 뿐이었다. 함께 할 수 없는 절절한 마음을 고이 접어두고 옛 시간을 꺼내어 본다. 지금처럼 초여름으로 천천히 가던 날이었다. 병원에서 입원 중이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점심시간에 부지런히 움직였다.


병원에 도착한 건 12시를 조금 넘길 무렵이었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부모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복을 입은 아버지는 침대에 달린 식탁을 펴놓고 엄마와 마주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며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함께 살아온 오랜 세월만큼이나 서로를 위하는 부부의 정이 밖에서도 느껴졌다.


부모님은 항상 과수원 일로 바빴다. 아버지는 예민한 성격이었고 과하게 몸을 쓴 게 이유였는지 자주 아팠다. 아버지는 비가 오거나 조그만 시간이 나면 병원에 다녔고 엄마는 그런 남편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사계절 내내 밥상에 올렸다. 언제나 집에는 적당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러던 부모님이 병원 입원실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듯 편안해 보였다. 병원 밥을 두고 마주 앉은 그 모습은 내 기억 속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남았다. 살짝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투명 사각 문에 얼굴을 대고 한참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오래도록 그 시간을 이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천천히 나도 모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아버지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반긴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회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아버지 저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얼른 가라. 이번 주말에는 집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아버지의 침착한 목소리가 말로 풀어내지 못할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봄과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깊어져 겨울이 찾아올 무렵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오월이 오면 그때 병원에서의 점심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덩굴장미가 피고,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바람에서도 아카시아꽃인지 무언지 모를 향기에 살짝 빠져들다가도 살짝 가슴이 아려온다.


엄마와 온 가족 얘기를 다 꺼내놓은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실컷 얘기하니 잠이 깼다며 엄마 목소리가 밝다. 다시 아버지를 떠올린다. 엄마와 밥상을 마주 볼 시간이 조금만 더 주어졌으면 어떠했을까. 아름답지만 슬픈 오월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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