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온다. 운동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언덕에 이르니 빨간색이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뱀딸기다. 어릴 적 시골길에서 어디서나 마주쳤던 그것을 보니 옛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어른들은 밭으로 나가고 동네가 텅텅 비었다. 혼자 남겨진 아이들은 햇빛이 제법 뜨거워질 무렵이면 심심해서 하나둘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주변의 산과 숲과 냇가가 놀이터라고 하지만 가끔은 지겹다. 새로운 걸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중산간 마을이었던 우리 동네는 한 시간을 족히 걸어야 풀밭이 나왔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운동장이나 리 사무소 앞 질경이와 토끼풀이 가득했던 공간이 유일한 놀이터였다.
학교는 익숙해서 그리 흥미롭지 못했고 놀이기구 하나 없는 그곳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난 서너 살 위 동네 언니들과 어울렸는데 계절마다 꼭 해야 하는 것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더위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산딸기를 따러 다녔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산딸기가 많은 곳에 대해 소문이 돌았다. 동네 누구의 밭에 가면 산딸기가 무더기로 있다는 것.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었다. 언니 서너 명과 함께 오후에 길을 나섰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지나 어느 과수원에 이르렀다.
“얘들아 저기 보이지. 빨갛게 보이는 거. 우리 지금부터 따먹는 거야.”
6학년이던 사촌 언니의 진두지휘 아래 그곳으로 뛰어갔다. 정신없이 따먹고 있는데 어디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 목소린데. 누구지?”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손이 빨라지는데 천둥 같은 소리다.
“야 너희들 당장 밭에서 나가지 못해. 이렇게 다니면서 밭을 망쳐놓는 거지. 너희들 누구야?”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잠시 숨죽였다. 익숙한 목소리다. 이웃에 사는 동네 아줌마네 밭이었다.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열심히 뛰었다. 경사가 급한 언덕을 내려오는데 절로 가속도가 붙어서 미끄럼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다.
얼마를 달렸을까. 모두가 깊은숨을 내쉬었다.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혹시 아줌마가 우리가 누군지 알았으면 어떡하지?”
“괜찮을 거야. 우리 얼굴도 못 봤잖아.”
언니들 얘기에 불안이 엄습해왔다. 그날 저녁에도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뒤척이다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별일 없이 지났지만 다음날까지 내내 휘감던 긴장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 먹었던 산딸기를 다시 맛보고 싶다. 고향 제주에서는 ‘탈’이라고 불렀는데 맑은 붉은빛이 예뻤다. 산딸기는 과수원 한 귀퉁이 볕이 잘 들고 바람이 잘 넘나드는 곳에 자리를 잡아 여름을 알아갈 무렵 매력적인 간식거리가 되었다.
지금처럼 군것질할 게 흔치 않았던 시절, 산딸기는 아이들에게 인기였다. 산딸기 서리는 가슴을 졸이면서도 누가 주인인지도 모르는 과수원에 살짝 숨어 들어가 행했던 아이들의 도전기였다. 눈에 들어오는 게 빨간 산딸기뿐이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그것에 모든 정신을 빼앗겨 다른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 손으로 살짝 따서 입에 넣을 때는 성취감과 즐거움, 성공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던 날이었다.
산딸기를 따러 갔던 그 날은 세상을 모르던 아이들의 신나고 통쾌한 외출이었다. 밭을 둘러싸고 있는 돌담이 그리 높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서로서로 손을 잡고 가능한 몸에 힘을 빼고 밭으로 들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산딸기를 찾았다. 모두가 하나 되어 열심히 먹으며 심심한 시간을 날려 버렸다.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통통했던 산딸기는 부드럽고 달콤한 그 이상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행복한 맛이었다.
“이 밭주인인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매일 산딸기를 먹을 수 있잖아.”
언니들과 돌아오는 길에 깔끔하게 끝맺지 못한 아쉬움과 더불어 산딸기 주인이 부러웠다.
뱀딸기를 보고도 반가웠다. 예전 같으면 먹을 수 없으니 의미를 두지 않았고 지나치기 일쑤였다. 세월이 지나간 버린 것들을 다시 세워 만나게 한다. 누구의 눈치를 볼 일도 없었다. 가서 별것 없으면 돌아오면 그만이었고 그저 마음먹은 대로 해보는 순간이 재미있었다. 산딸기를 따러 갔던 그날도 그랬다. 정확하지도 않은 얘기를 듣고 숲길을 걸어 올라갔다.
지금은 이런 일이 없다. 안 가본 곳을 가려면 전날부터 혹은 몇 분 전이라도 인터넷을 뒤져 그곳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훑고 출발한다. 가는 길 역시 도로마다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알려주니 외딴길로 들어설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실패할 것 같은 위험 요소가 있는 일에는 주저하거나 시작도 하지 않는다. 보장된 것에 집중하고 남보다 먼저 그걸 찾아내기 위해 집중할 뿐이다. 목표한 일에 이르지 못할 때는 패배감에 힘들어한다.
산딸기를 찾아 나섰던 그때의 용기가 지금도 내게 남아있었으면 좋겠다. 예상 시나리오를 그려보지 않고, 하고 싶다는 이유가 전부인 그런 일을 묵묵히 하고 싶다. 남들이 어리석다고 해도 나를 믿고 가는 뚝심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어린 날의 산딸기를 지금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