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더 좋아?

관계에 대한 고민

by 오진미


아이가 이틀째 위층 사는 동생과 동네 정자에서 놀았다. 어제는 신이 나서 두 시간 가까이 놀다 들어오더니 오늘은 일찍 들어왔다. 매일 함께 하는 단짝 친구가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했다.

“엄마 오늘 친구가 좀 질투하는 것 같아. 내가 동생이랑 재밌게 놀고 같은 층이라 함께 얘기하면서 정자로 갔는데 그게 신경 쓰였나 봐.”

아이가 계속 이야기했다.

“엄마 그리고 ‘내가 좋아 그 동생이 좋아’ 하고 묻는 거야. 그래서 ‘네가 좋다’고 했어. 동생도 좋긴 하지만 친구가 더 좋다고.”


아이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나왔다. 어릴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사랑과 인정의 욕구를 분명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내 어릴 때 모습도 떠올랐다. 난 유독 친구에 대한 마음이 컸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리 인기 있는 아이가 아니었고 그럴수록 나를 응원해 주는 친구를 옆에 두고 싶은 마음은 커갔다. 신경을 쓰고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을 쓰면 쓸수록 친구는 더 멀어져 갔다.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다. 너무 속상한 나머지 학교 갔다 오고 나서 엄마에게 말했다. 비가 퍼붓던 장마철이라 밭에서 일이 어려우니 마침 엄마가 있었다.

“엄마 나 친구가 없는 거 같아서 속상해.”

“그래, 친구가 있어야 좋을 텐데.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엄마의 말은 내게 어떤 위로도 되지 않았다. 관계는 꼭 시간과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이때부터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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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돼서도 좋은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집과 회사만을 오가는 데도 정신이 없던 워킹맘 시절에는 주변의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전업주부로 지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동네에서 서너 명의 아는 엄마들이 생겼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차를 마시고 꽤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한 엄마가 앞 동의 엄마를 알게 되면서 갑자기 관계가 소원해졌다. 며칠 전까지 가까운 사이라고 여겼는데 나를 보고도 무덤덤한 그 친구의 반응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웃 친구는 한동안 그 엄마에게 온 관심과 마음을 쏟았다.


“언니 그 엄마 대단하더라. 매주 애들을 데리고 현장 학습을 간다는 거야.”

나와는 적당한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낯설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내다 다시 내게로 와서 많은 말들을 쏟아내었다. 최고의 엄마라고 극찬했던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며 사람을 잘못 봤다는 등 갈등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눈치다. 갑자기 달아올랐다가 식어 버리는 모습이 코미디 같았다.


어른이 돼서도 관계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이어진다. 사람들의 보는 눈은 비슷한지라 맘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그와 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싹튼다. 주부로 지내며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주위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차나 점심을 하자고 제안했다.


만나보면 다들 고민은 비슷했고 친해질 것 같다가도 그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는 게 어려웠다. 좋은 친구를 곁에 두는 일은 도달하기 힘든 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거 같았다. 난 친구와 마음을 나누고 가끔 미리 약속하지 않아도 밥을 먹는 것, 수다를 마음껏 떨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를 희망했다. 한두 해 지날수록 그건 내가 만든 꿈같은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이상을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친구라는 이름에 놓이는 건 쉽지 않다는 건 시간이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리 누군가를 알기 위해 애쓰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레 될 만큼 된다는 마음이다.


가끔 내게 고민 상담을 해 오는 동네 친구가 있다. 그와 난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유지한다. 그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사람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매일 사람을 만나면서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어려움을 일 년에 한두 번 얘기한다.


난 그저 들어줄 뿐이다. 어떤 답을 해 줄 수 없는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다. 그러고 나면 그는 내게 정말 속이 시원해졌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와는 평소에는 만남도 없다. 처음에는 이런 그의 모습이 낯설었고 불편했다. 그러다가 이젠 내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자평하게 되었고 그럭저럭 괜찮다.


아이가 친구와 나눴다는 얘기가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다.

“너 누가 더 좋아?”

타인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가득 담긴 말이다. 어른들은 이런 말을 직접 하지 않을 뿐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 얘기의 상당 부분은 결국 관심에 대한 소망으로 채워진다. 어린 시절에는 분명한 말로 확인받고 싶어 하고 커서는 느낌과 분위기로 어렴풋이 알아간다.


감정을 확인하는 일은 복잡하고 미묘해서 분명한 답이라는 것도 찾기 어렵다. 아이들은 순간마다 솔직하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꾸밈없는 모습에서 멀어져 가는 일이다. 나를 보여주기를 망설이기에 타인에 대해서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지극한 마음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은 건 남녀노소 모두의 희망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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