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청 담그며 여름을 열다

by 오진미


“진미야!”

쿵쿵쿵 누가 심하게 문을 두드린다. 위층 사는 언니다.

“이거 모양은 이래도 농약도 하나도 안 한 거야. 잘 씻어서 담가라.”

시골집이 있는 완도에서 오는 길이라며 매실 망을 놓고 바람같이 사라진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오늘의 일과 중 꼭 해야 할 일로 기억해 두었다.


여기저기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작은 방울에서 적당히 큰 것까지 뒤죽박죽 섞였다. 큰 대야에 물을 담고 매실을 씻는다. 매실이 물을 만나니 초록이 더 진해지는 기분이다. 맑고 투명하다. 삼십 분 정도를 그대로 두었다.

물기가 사라질 무렵이면 매실과 설탕을 일대일 비율로 버무려서 통에다 담아 두면 된다. 옹기 항아리에 담고 싶었지만, 그 건 올해도 그냥 지나야 할 것 같다. 항아리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망설이다 보니 지금이다.


이제부터는 100일 동안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와서 백일날 크게 의미를 두는 것처럼 매실청도 석 달 이상을 보내야 제맛이 나온다. 덥고 습한 여름을 그럭저럭 보내고 한숨 돌릴 9월의 둘째 주 정도에 진한 매실청을 만나게 된다.


매실을 담기 시작한 지 십 년이 넘었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는 엄마가 주는 것을 받아먹다가 육아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질 무렵부터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해는 설탕과 비율이 맞지 않았는지 하얀 곰팡이 같은 것이 피어나기도 했다.


구멍 숭숭 뚫린 그물망 안에 저 많은 매실을 따온 언니의 정성을 다시 들여다보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주는 일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때로는 지극한 마음이 있지 않고서는 쉽지 않다. 언니는 뜨거운 햇볕을 피해 아침 일찍부터 나무에 팔을 뻗어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을 터다. 허리가 좋지 않아 병원 신세를 지면서도 큰 밭을 오갔을 모습을 그려보니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진다.


매실청은 어느 날 문득 전해진 편지 같은 잔잔한 감동이 있다. 처음에는 사람의 손을 거치지만 결국은 시간이 해결해 주는 까닭이다. 아이가 초등생에서 중학생이 되었고 그만큼 내 나이도 하나둘 더해간다. 그럴수록 시간만큼 소중한 게 있을까 싶다. 무엇을 해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조급함과 초조함에 등 떠밀려 하루를 보내지만 결국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마음의 생채기만 커졌을 뿐이다. 이때 시간이라는 녀석을 가만히 지켜볼 여유가 있다면 자연스레 되어가는 일이 많다.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힘들게 하는 일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아이 역시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 그저 바라보며 견딜 수 있다면 모두가 그렇게 조금씩 크고 있다는 걸 요즘에서야 어렴풋이 알아가는 중이다. 매실이 설탕을 만나 조금씩 녹아들면서 청으로 만들어지듯 말이다.

매실청을 담글 무렵이면 여름이 시작된다. 매실을 씻으며 앞으로의 뜨거운 시간들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잠깐 멈춰서 생각했다. 더위를 많이 타지는 않지만 여름이 주는 눅눅하고 습기 가득한 날씨가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여름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매실청이 잘 숙성되도록 가끔 뚜껑을 열어 저어주는 작업처럼 그저 여름 속에 나를 맡겨야 한다. 너무 힘이 들 때는 팥빙수나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나를 달래면서.


매실청 역시 처음 한주는 그저 그런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싫어하는 여름이 오히려 도움을 주는 형세니, 세상에 모두 좋거나 나쁜 건 없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초록이 내어준 그늘에 절로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매실청의 시간은 깊어간다. 설탕은 끈적한 액체가 되었고 매실은 맑던 초록빛을 잃어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환상의 계절이 찾아오는 셈이다.


매실청은 내 요리의 오랜 친구다. 어떤 이들은 매실청이 설탕과 무엇이 다르냐고 반문하기도 하지만 난 한 계절을 오롯이 보낸 특별함이 배어 있다고 믿는다. 무더운 날 청을 넣어 시원한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마실거리를 만들어도 좋고 샐러드에는 이것만 한 조력자가 없다. 내가 만든 밥상에는 모자란 1퍼센트를 채워주는 것으로 이것이 필수다.


후다닥 마무리 지은 일이었지만 혼자 뿌듯한 하루다. 어제보다 기온은 더 올랐다. 이젠 피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여름이 내 곁에 바싹 다가왔다. 남은 매실청으로 한 해를 보내기 어렵다고 생각될 무렵, 초여름이면 매실을 부른다. 매실청은 언제나 달콤 새콤 비슷하지만 청을 담는 날은 새로운 맛을 기대하게 된다. 알고 있지만, 다시 꿈꾼다. 시간 속에서 녹아드는 여름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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