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베란다 정원 청소에 나섰다. 숨쉬기가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녀석들부터 분갈이를 해주었다. 그다음엔 겉흙이 말라 가는 작은 화분들을 살폈다. 예상에도 없던 보물을 발견했다. 4월 어느 휴일에 산 방울토마토 나무에 열매가 달렸다.
몇 주 전에도 꽃만 핀다고 혼잣말을 했다. 속으로 올해도 열매를 보기는 힘들 것 같다고 미리 포기하고 있었다. 통통하게 귀여운 작은 아기 토마토가 잎 사이로 숨고 있었던 걸 몰랐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토마토의 주인인 막내에게도 알렸다.
“정말이야 엄마? 열렸어. 가봐야겠다. 와 진짜네.”
아이도 예상치도 못했던 선물을 받은 듯 기뻐했다.
잎이 너무 많으면 영양분이 골고루 전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위를 들어 풍성한 잎들을 조금 정리해 주었다. 이제 막 크기 시작한 방울토마토 한 알을 알게 된 그때부터 토마토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동안은 화원에서 모종을 데려온 후에 분갈이만 해주고 마르지 않을 정도만 물만 주었다. 이제부터 새 마음이 생겼다.
관심이 커진다. 베란다에 발을 들일 때마다 토마토를 한번 살짝 보게 된다. 언제쯤 붉게 익어갈지도 궁금해진다. 토마토가 절정의 빨강을 보여줄지라도 먹기는 어려울 듯하다. 먹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게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말을 좋아한다. 일상에서 실천하려 하지만 쉬운 것 같으면서도 모호하고 애매하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토마토에 대한 마음이 생긴 건 토마토가 달렸기 때문이다. 초록 잎 가득한 나무로만 있을 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내 두 뼘 정도 되는 키에 작은 흰 꽃을 피웠을 때도 그냥 그랬다. 그러다 초록의 아기 방울토마토를 발견하는 순간 변했다. 내게 무엇을 내어줄 것 같은 예감이 드니 흥분되기 시작했다. 물을 흠뻑 주고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도 옮겼다.
조용하던 토마토의 변화가 나를 기쁘게 했다. 처음에는 열매가 보였고, 그다음부터는 떨어질 준비를 하는 꽃을 살며시 떼어주는 세심함도 생겼다. 앞으로 별 탈 없이 무럭무럭 자라준다면 서너 개 이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초록빛 나는 방울토마토 한 알이 씩씩하게 커가는 중이다. 문득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웃기다. 아이가 키우고 싶다는 이유로 화원에서 어린 토마토 화분 하나를 집으로 들였다. 열매를 확인한 순간부터 무심했던 내 마음의 작은 파도가 치기 시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러했다.
토마토를 보기 위해 사 온 것이었으니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뭔가를 줄 때 서야 인정해 주는 내 얄팍한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없던 후한 인심도 더해졌다. 내가 모른척해도 토마토는 애썼던 모양이다. 이제야 그 결실을 본 셈이다.
토마토는 베란다라는 쉽지 않은 공간, 좁은 화분에서도 잘 자라주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저마다의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고 삶이라는 걸 살아낸다. 누구에게 조명받는 건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런 일은 머릿속에 계획되거나 희망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바라볼 때도 여러 가지 조건들을 내세우며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다. 나는 나인데 다른 이들에게는 더 많은 것을 바란다. 토마토에 대한 내 태도가 그러하다.
토마토가 한 알의 선물을 전해주어서 고맙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여름 동안 언젠가는 열릴 거라는 희망을 품고 기다릴 줄 아는 나였으면 좋겠다. 나는 '다 괜찮다' 하면서도 본마음은 꼭꼭 숨기고 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