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맞은 깊이에 대한 고민, 분갈이

by 오진미



매일 비슷한 시간, 그릇에 음식들을 담는다. 식구 수만큼 밥그릇과 국그릇이 정해져 있지만, 그릇의 깊이에 맞게 적당히 담아내는 일이 어렵다. 옛날처럼 고봉밥을 먹지 않으니 그릇 위로 산을 만들어 놓지는 않는다. 간단하지만 그릇 안에서 균형감 있고 보기 좋게 담아내는 일은 아직도 절반의 성공이다.


접시에 반찬을 담아내는 일도 때때로 그렇다. 그날 식탁의 주인공이 되는 음식은 큰 그릇에 담는 게 나만의 원칙이다. 국물이 없는 것이라면 편평한 것이어도 괜찮다. 찜이나 탕 종류는 오목해서 뜨기 편하고 음식의 재료들과 어울려야 한다. 매일 오르는 김치와 밑반찬은 중간 크기로, 쌈장을 비롯한 소스류 역시 작은 종지에 담는 것이 전체적으로 조화롭다.


음식의 특징을 잘 잡아주는 그릇에 담겨야 맛있어 보이고 먹는 일이 편하다. 그릇의 모양과 크기, 깊이감에 따라서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모두가 모이는 아침밥을 차리면서 이런 생각이 강렬하게 밀려온다. 때로는 반찬을 준비하는 일보다 그릇에 신경을 쓴다. 그래야 별것 없는 식탁일지라도 괜찮아 보인다.


식물도 이와 비슷하게 연결되어있다. 땅이 아닌 아파트라는 환경에서 식물은 화분을 제 몸처럼 두고 살아야 한다. 셀렘을 작년 11월경에 집으로 들였다. 잎 모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서 초록 초록한 모습을 사계절 보여준다. 흙 상태를 꼼꼼히 살펴 물을 주고 정성을 들여 키웠더니 화분을 바꿔줘야 할 때가 왔다.


가지들은 사방으로 뻗었고 화분은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저 속에서 어떻게 숨 쉴까 걱정될 만큼 답답해 보였다. 며칠을 고민하던 비 오는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갑자기 마음이 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을 벌였다. 베란다에서 가장 여유 있는 공간에 신문지 몇 장을 넓게 펴 놓고 셀렘 화분을 엎었다. 생각처럼 뿌리가 빽빽하게 붙어있었다.


네 개 정도의 줄기를 나누어 주었다. 집에 있는 빈 화분 두 개에 다시 심기로 했다. 하나는 꽤 깊이가 있는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혹시나 했지만 마땅한 화분이 없었기에 그냥 진행하기로 했다.

물 빠짐이 잘되도록 작은 돌멩이를 맨 아래에 깔고 흙을 올려준 다음 식물과 높이를 맞췄다. 둥근 모양으로 전체적으로 공간은 넓었지만 얕은 화분은 여전히 뭔가 불안해 보였다. 다 심고 나서도 안정감은 없고 어정쩡한 느낌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2주를 보내니 잎이 조금씩 노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뿌리 부분이 많이 잘려나간 탓에 넘어가야 할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듯했다. 좋아지겠지 하는 억지스러운 마음을 붙들고 안심하다가도 왠지 불안했다. 그러다 결국 며칠 전에 다른 화분으로 바꿔주었다. 사람도 이사가 스트레스 많은 큰일인데 식물에는 어떨까 하는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최선이라고 여겼다.


3일이 지났다. 노란 잎들을 가위로 잘라 주었지만 다시 생겨나고 몇 개의 가지는 힘 없이 축 늘어져 있다. 이들의 미래는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필요한 선택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겼던 분갈이를 다시 해주었기에 예전보다는 편안해졌다.


한 달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두 번이나 심고 다시 뽑아내어 심기를 반복하게 된 건 화분의 깊이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계획한 후에 벌여야 할 일이었다. 뿌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크기에 맞는 집이 필요했는데 빨리 해결하고 싶은 성급함이 낳은 결과였다.

나무보다 화분이 너무 크면 과습이 되기 쉽고 반대로 작으면 금세 흙이 말라버린다.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스트레스가 쌓이듯 식물들도 뿌리가 잘 내리기 힘들다. 어린 식물일수록 성장에 맞춰 분갈이를 해주고 흙도 바꿔줘야 한다.


이건 나에게도 해당하는 지점이다.

“항상 넓게 봐라. 닥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살고, 지금에 감사하고 알았지.”

오랜 친구이며 나보다 십여 년 이상의 인생 선배인 이웃 언니는 나를 볼 때마다 당부한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도 어린 마음이라고 나무라다 위로와 격려 뒤에 항상 따라붙는 말이다. 결국은 깊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아이가 초중고를 거쳐 어른으로 가는 단계를 거치는 것처럼 살아가는 일도 아무 일 없이 훌쩍 뛰어넘을 수는 없는 듯하다. 내가 어설픈 분갈이로 인해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경험한 것처럼 살아가는 일도 상처가 나고 파이고 넘어지면서 나만의 공간과 깊이를 만들게 되는 것 같다. 그저 객관화된 어른임을 증명하는 나이, 숫자가 독립적인 한 사람이 됐음을 의미하는 건 아닌듯하다.


바람에도 덜 흔들리고 쓰러지지 않도록 나만의 깊이를 천천히 만들어야 한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불안이라는 태풍이 휘몰아쳐도 마음을 붙들고 어두움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이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난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한 경계에 머물러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토마토에게 마음을 들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