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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02. 2021

삼겹살 구우며 엄마가 되어간다

 

“몸 어디 안 좋아요?”

“왜요? 좀 아파 보여요?”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지쳐 보이네요. 좀 쉬엄쉬엄해요. 어서 가서 쉬어요.”

매일 아침 공원을 함께 걷는 동네 친구가 걱정해 준다. 

“정말 고마워요. 내게 제일 마음 써 주는 이가 여기 있었네요.”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온다고 예고된 소나기는 없고 흐리고 습한 날씨가 며칠째 계속이다.  습도계를 보니 50퍼센트를 넘겼다. 여기저기 해야 할 일이 보이지만 외면하고 싶은 날이다. 얼른 씻고 잠깐 소파에 앉았다가 아침에 널다만 빨래를 다시 들었다.     


집에 건조기가 없다. 가능한 해가 조금이라도 있을 때 말려야 하는 시급한 일이었다. 마치고 돌아서니 아이의 점심을 차려줘야 하는 시간. 

“오늘 뭐 먹을래?”

“엄마 비빔면에 고기 먹을까? 아니야. 엄마 요즘 내가 너무 고기 많이 먹었지? 엄마도 힘들고.”

내뱉는 말과 마음이 다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엄마라는 무게가 고개를 든다.


“삼겹살 구워줄까? 면이랑 같이 먹으면 좋잖아. 이제 시험 기간이고 먹고 싶은 거 먹어야 공부도 잘되지.”

“엄마 고마워요. 그럼 그럴까.”

아이가 수줍게 웃는다.     


마음 같아선 라면으로 정하고 싶었다. 새벽에 자꾸 깨는 까닭인지 몸은 너무 피곤했고, 왼쪽 발가락 하나가 조금 부었다. 관절이 약한 편이라 무리를 하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그야말로 침대에 푹 뛰어들어 모든 일을 놓고 싶다. 내 상황과는 정반대인 게 아이의 기분이었다. 아이는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점심시간을 학수고대하는 눈치다.     


아이는 기말시험이라는 산을 앞에 뒀으니 신나는 일이 없다. 주변 학교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끊이지 않는다. 안내 문자에는 조심히 지내라는 학교 선생님의 당부가 이어진다. 점심만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최대 무기였다. 해맑게 기대하는 아이 앞에서 내 상황을 알리고 싶지 않다. 어릴 적 나였으면 눈치 빠르게 알아서 했을 일이지만 아이는 아직인가 보다. 한편으론 고맙다. 자유롭게 원하는 걸 말하는 에너지가 있으니 말이다.      


엄마의 자리를 느끼는 순간이다.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추는 희생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맘껏 날개를 펼칠 수 있을 정도의 탄탄한 마음 근육과 당당함,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커가길 바란다.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것이 무엇인지 나조차 잘 모르겠다. 다만 밥을 정성스럽게 차려주는 일, 이것 하나는 변덕 없이 꾸준하다.     


내가 아프지만 아이에게 주고 싶었다.

“엄마 2학기 때는 전면 등교고 이번 주가 마지막 온라인 수업이잖아. 점심때 엄마 얼굴 보면서 이렇게 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아.”

온 가족이라 해도 네 식구지만 단둘이서 시간을 보내기는 쉽지 않다. 아이가 코로나로  평일에 그런 기회를 잡았으니 특별했나 보다.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행복한 시간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삼겹살을 사러 슬리퍼를 끌고 동네 축협 매장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오니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만든 하늘 높은 그늘과 사방으로 흐르는 바람이 몸을 깨운다. 힘들다는 얘기를 하지 못하고 장 보러 나온 나를 보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이런 생활의 몇 배가 되는 날들을 어떻게 살았나 싶다. 엄마 생활 십오 년이 지나는 요즘에야 진짜 엄마가 되는 것 같다.     


팬에 삼겹살을 구웠다. 더운 날씨 탓인지 다른 때보다 고기가 진한 갈색으로 익어간다. 한쪽에선 상추를 씻었다. 아이는 상추 샐러드에 고기 먹는 것을 좋아한다. 매실과 진간장, 식초,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린 소스를 준비했다. 적당한 크기로 자른 상추와 보라색 양파에 소스를 넣고 버무렸다. 비빔면도 완성되었다.      


“엄마 이거 최고야. 고기랑 먹으니까 환상이야.”

아이의 폭풍 칭찬이 이어진다. 처음에는 먹을 생각이 없었는데 함께 먹는 게 좋다는 아이의 말이 생각나 숟가락을 얹었다. 바싹하게 구운 고기가 새롭다. 

“엄마 잘 먹었어요. 고마워요.” 

몇 번 반복되는 아이의 말에 진심이 가득 담겼다.  걱정이 있는지 담담해서 더 안쓰러웠던 아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얼른 설거지를 끝내고 침대로 직행했다. 천정을 보고는 널브러졌다. 이제야 살 것 같다. 낮잠을 청해 본다. 막내가 오기까지 한 시간 반이 남았다. 눈이 절로 감긴다. 주위 사람들은 엄마의 일이라는 게 평소에는 무심하다 멈춰버린 순간 알게 되는 것이라고들 한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별것 아니지만, 별것이 된 일을 했다. 아이에게 기쁨을 주었으니 이만한 큰일이 있을까 싶다. 나와 엄마 사이에 균형을 생각한다. 답이 없는 물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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