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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30. 2021

이제야 알게 된 매력, 김치볶음밥

    

장마가 다가왔다. 며칠 전부터 습기 가득한 날이 이어진다. 아침은 그런대로 해결했다. 이번 주 내내 온라인 수업인 큰아이의 점심이 고민이다. 코로나는 집이 학교이자 쉼터가 되어버렸다.  

    

기억에 남는 시간으로 만들어 주겠다던 다짐도 점차 희미해져 간다. 그래도 집밥을 포기한 건 아니다. 떠 오르는 메뉴를 말하다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 아이는 계란 프라이에 밥을 비벼 먹겠다고 한다. 순간 스친다. 김치볶음밥. 

“김치볶음밥 어때? 햄 하고 참치를 넣을까?”

“아니야 엄마, 내가 지난번에 보니 하나만 선택하는 게 좋더라고. 햄으로 해요.”     


아이가 원하는 점심시간은 11시 반. 뭘 먹을지를 결정한 건 11시 5분이다. 다시 앉을 일 없이 움직였다. 야채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엄마의 마음이 작동해 애호박과 당근을 채 썰고 대파도 둥근 썰기를 했다. 김장김치 3통 중 한 통을 비웠고 새 통을 열었다. 김치는 세상과는 담을 쌓고 혼자 얌전히 잘 지내고 있었다. 

김치 한 포기를 꺼내어 볶음밥 분량만큼만 잘게 썰었다. 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팬에 볶다가 김치와 매실청 두 숟가락을 넣고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 야채와 햄을 넣었다. 밥솥에서 밥을 적당량 떠서 재료들과 잘 섞이도록 한 다음 마지막으로 굴 소스로 풍미를 끌어올렸다. 20분 만에 완성되었다. 아이가 말한 그 시간이다.     


어린 내게 김치볶음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음식이었다. 어딘가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맛이 없었다. 초등생 무렵 친구의 집이나 사촌 언니네에서 종종 먹었다. 김치의 설컹거림이 거슬렸고 기름을 한가득 먹어버린 밥은 매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한두 해 전부터 김치볶음밥이 좋다. 아이가 커서 맛을 알아가니 종종 찾는 음식이다. 내가 만든 그것은 어릴 적 먹던  맛이 아니었다. 김치는 달큼하면서도 아삭했고 밥과 어울려 고소하면서도 매콤하다. 느끼함은 없다. 다시 숟가락을 절로 들게 된다.      


만만해서 좋다. 집에 없는 것들을 궁리해서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없다. 그저 냉장고에 있는 자투리 양파, 당근만으로도 충분하다. 편하고 빠르게 조리 가능한 것이면서 어찌 보면 시간이 만들어 준 한 그릇이다. 여름날의 볶음밥은 겨울에서 봄을 거쳐 뜨거운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김장김치가 제격이다. 갓 담근 김치로도 가능하지만 깊은 맛은 만나기 어렵다.     

 

내가 처음 맛봤던 볶음밥은 나보다는 대여섯 살 많은 언니의 고사리손이 해낸 음식이었다. 재미있는 도전이면서도 불을 사용하기에 조심스러웠다. 프라이팬은 사용기한을 이미 넘겨 무엇을 넣기만 해도 달라붙었다. 해결사로 식용유가 나섰다. 언니는 기름양을 가늠할 수 없어 많이 붓다 보니 볶음밥이 아니라 기름밥 사촌이 되었다. 그럼에도 꼬르륵 소리 나는 허기진 배를 달래준 고마운 것이었다.     


내가 만든 김치볶음밥은 어린 시절 기억 속의 그것과 이름만 같을 뿐이다. 조리법이 변했고 여러 가지가 더해졌으니 당연하다 싶다. 식당에서도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는 친구가 제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했던 내가 다시  알아가는 게 재미있다. 아이는 밥 위에 스테이크 소스까지 뿌려서 먹는다. 어느새 그릇을 비웠고 조금 남아 있는 것을 싹싹 긁어와서 다시 자리에 앉는다.   

   

김치볶음밥이 별로였던 마음은 김치와의 거리감에서 시작되었다. 매일 밥상에 오르지만 좋아하지 않는 것. 질리도록 먹기에 다시 그것이 주인공인 음식은 끌리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김치를 좋아해서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밥상이라고 얘기한다. 김치에 대한 내 생각이 김치볶음밥으로까지 영향을 미쳤나 보다.  

 아주 작지만 예전엔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게 좋다. 글쓰기가 전하는 소중한 선물이다. 식용유를 조금만 사용해도 볶음밥은 충분히 개미가 있다. 옛날에는 없던 매실액과 굴소스라는 조연들까지 가세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김치와 밥 만으로 가능했던 순수함은 사라졌다.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어린 시절로 찰나의 여행을 다녀왔다. 밥상 앞에서 하루에 생기를 더해주는 잔잔한 파도가 쳤다. 지나치는 것들에 마음을 열어 보이니 새로운 것이 내게로 다가온다. 경험하지 않은 것에서 얻는 신선함은 아니다. 주변의 것들과 내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생각할 때 만나게 되는 특별한 감정이다. 김치볶음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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