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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12. 2021

땀으로 먹는 복날 풍경

누룽지백숙을 올리다


동생과 수다를 떨었다. 담아두었던 말을 다 꺼내놓았다는 직감이 들 무렵부터 어서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조급함이 고개를 들다 말다 한다. 이제 정말 할 말을 했으니 잘 지내라는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부엌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6시 5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시간이다. 우리 집 평균 저녁 시간은 6시 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냉장고 문 여닫기를 반복한다. 예정대로라면 정확히 25분 남았다. 빨리 대충 무엇을 만들면 되지만 초복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인다.    

 

밖으로는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여느 때보다 요란하다. 무덥고 습한 날씨는 요리와 거리를 두게 한다. 집에서 만드는 삼계탕 대신 치킨이나 다른 먹거리로 대신하나 보다. 아이들에게 저녁은 누룽지 전복 백숙이라고 미리 알린 터라 망설였다.    

어제부터 계획해 둔 저녁이었다. 홈플러스에서 어린 닭 두 마리를 사서 냉장고에 두었다. 어른 한 명에게 딱 적당한 크기다. 남편은 없고 한 마리면 충분하기에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는지 오후 무렵에 미리 손질해 두었다. 냄비에 물을 붓고는 닭과 깐 마늘 열댓 알과 대파를 통째로 넣었다.     


그다음이 문제다. 진한 향이 나는 백숙을 원하면 한방 재료가 필요하다. 

“백숙 재료 있잖아. 그거 넣어야 할까?”

“응 엄마 국물 맛이 다르더라고. 더 고소하고 냄새도 없고.”

아이가 괜찮다 하면 그냥 지나가려 했지만, 답은 예상대로다.

동네 마트로 달려가서 황기와 엄나무, 은행 등 온갖 약재가 들어간 것을 2000원 주고 사 왔다. 집으로 와보니 이미 펄펄 끓기 시작했다. 흐르는 물에 팩을 간단히 씻고는 냄비에 풍덩 빠뜨렸다.   

   

여름이면 온갖 재료를 넣은 백숙이나 삼계탕을 챙겨 먹었다. 이걸 해내는 이는 집안의 부엌을 책임지는 엄마였다. 잠깐씩이지만 불 앞을 왔다 갔다 하는 동안 얼굴과 몸에 땀이 흐른다. 

‘복날은 더위를 모두 엄마에게 몰아주고 다른 사람들은 힘든 여름에서 해방하는 날 아냐.’ 

머리끝까지 부당함과 불편함으로 꽉 찼다. 갑자기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음먹고 시작했으면서도 툴툴대는 모습이 어린애다. 


어린 시절에도 복날은 닭 먹는 날이었다. 과수원 농약과 콩밭 김매기, 매일 돌봐야 하는 게 지천인 농부가 집에서 두 다리 쭉 뻗고 쉬어갈 시기다. 섬의 장마는 지루할 만큼 길었다. 종일 날은 흐렸고 천둥과 벼락을 동반한 소나기는 홍수를 떠올릴 정도로 대단한 기세를 자랑했다. 밖에서 흙을 밟으며 일하는 날보다 날이 좋아지기만을 바라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이런 일이 잦으니 부지런해야 하는 다가올 날을 위해 닭다리를 뜯고 죽을 먹으며 쉬어가며 망중한을 즐겼다.     

시집간 딸은 이즈음이면 닭 한두 마리와 술을 들고 친정 부모님을 찾았다. 어렸지만 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저래야 할까 할 정도로 익숙했다. 이웃 동네에 사는 고모도 이날이면 가끔 할머니를 만나러 오면서 닭을 사 왔다.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게 어른들의 진리였고, 흰색의 부드러운 닭고기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겼다.     


초등학생 때였다. 학교에 다녀왔는데 엄마가 없다.

“아빠 엄마 어디 갔어요?”

“응 외가에 할머니 할아버지 보고 온다고 갔다.”

할머니 담배와 할아버지의 됫병 소주와 닭을 들고 울퉁불퉁 길을 걸어갔을 모습이 그려졌다. 외가는 깊은 산촌이어서 가게까지 가려면 꽤 거리가 있었다. 외할머니는 장날이면 잡곡을 팔아서 할아버지 반찬을 사 왔다. 엄마는 그런 사정을 잘 알기에 시간이 날 때는 양손에 돼지고기 한 근이라도 들고는 친정을 찾았다.   

   

닭은 여름날 수박만큼이나 마음을 나누는 선물이었다. 지금의 기준으로는 치킨 쿠폰을 휴대전화로 보내거나 배달시키지 않을까 싶다. 집마다 닭을 키우던 시절에는 마당을 뛰어다니던  녀석이 식탁에 오르던 일도 흔했다. 아쉬움이나 그리움이 찾아들 새도 없이 큰 그릇에 백숙이 오르면 손이 빨라진다.   

   

사방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이치는 마루나 평상, 뜨거운 태양이 꼬리를 내리고 어스름 치는 저녁이었다. 상을 피고 온 가족이 둘러앉았다. 엄마는 다리 하나는 찢어 아버지 그릇에 담고 내게는 가슴 퍽퍽 살을 뜯어주었다. 고기를 가족수에 맞게 나누는 일은 일종의 서열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불과 한두 시간 전 밭에서 따온 풋고추와 한창 커가는 싱싱한 콩잎과 깻잎에 쌈장을 올려 먹으면 천하 진미였다.     


이 생각 저 생각하다 보니 국물이 진해지고 젓가락 하나가 쏙 들어갈 만큼 익었다. 20분 전부터 넣어 든 누룽지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냉동실에 있던 전복도 몇 개 올리니 근사한 백숙 완성이다. 배가 고파서 기웃거리던 아이들도 호호 불며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부지런히 먹는다.      

전복감자 누룽지

이 한 그릇을 위해 여름 더위는 엄마가 다 먹는다던 생각이 여전하지만 뿌듯했다. 몇 개의 찬이 전부였을 식사가 풍성해졌다. 이 맛에 엄마들은 부엌에서 몸을 움직이나 보다. 큰 접시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땀이 만든 여름 보양식, 백숙이었다. 복날의 저녁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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