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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8. 2022

눅눅할 때, 감자 샐러드

불편한 일상에서 떠오른 엄마의 음식


 

매일 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아침을 준비하고 빨래를 하고 집을 정리한다. 하루도 쉼 없이 하는 건 아니다. 때로는 눈에 거슬리는 것만을 옮겨놓고는 끝일 때도 있다. 그저 멍하게 있다가 하루가 지나버리기도 한다.      

아침을 준비한다.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다. 휴일이기에 쉬고 싶지만 그래도 해야 할 것 같다. 내 마음이 이럴 줄 알고 미리 통밀 식빵을 준비했다.

      

간단히 하기로 했다. 몇 가지만 먹을 것을 올려놓는 것으로 내 역할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빵과 잼만 꺼내면 되겠다 여겼는데 마음이 감자 상자로 향한다. 이맘때쯤이면 엄마는 가끔 감자 샐러드를 해줬다.      

아침 감자 샐러드

중학교 무렵에 처음 맛보았다. 아버진 감자 농사를 꾸준히 지었고 내가 어릴 적에는 그것이 우리 집 가정 경제를 지탱하는 큰 농사였다. 커서는 우리가 먹을 만큼만 과수원 한편에서 감자가 자랐다. 찐 감자와 튀김, 국, 조림이 내가 아는 감자 요리의 전부였을 때였다.   


엄마가 올려놓은 접시에는 고운 색인 감자와 송송 썬 부추, 살짝 알싸한 양파, 작은 당근 조각이 보였다. 밭에서 난 오이도 함께였다. 감자 샐러드였다.      

감자 두 개를 삶았다. 건너뛰고 싶은 아침이었는데 하루 걸러 비가 내리던 눅눅한 섬의 긴 장마 때 먹었던 그것이 생각났다. 껍질을 벗기고 적당한 크기로 썬 다음 끓는 물에 넣었다. 10분이 되어갈 무렵 젓가락 한 짝을 들어 콕 찔러보니 잘 들어간다. 다 익었다는 신호다.     


감자를 큰 볼에 담고 으깬 다음 집에 있는 양파와 당근, 삶은 달걀에 오이까지 넣고는 마요네즈를 적당히 더했다. 조금의 단맛을 위해 설탕도 마지막에 넣고는 주걱으로 쓱쓱 버무리며 섞었다. 그릇에 담고는 남은 것을 주걱 채로 입으로 갖다 대 떼어먹었다. 바로 그 맛이었다.     


부드럽지만 달콤하지 않다. 그럼에도 한 번 두 번 먹게 되고 속은 편안하다. 장마에는 몸이 힘드니 덩달아 마음도 널뛴다. 높은 습도에 비가 올 것처럼 하면서도 끝내 내리지 않는다. 밖은 어둑어둑한데 바람이 뜨거운 공기를 몰고 몇 차례 내 주변을 돌다 간다. 

    

가만히 있어도 편하지 않을 텐데 또 뭔가를 만들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이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해진 걸까? 아니면  감자 샐러드를 먹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커졌던 것일까? 아침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샐러드를 다 만들고 나서 얼떨결에 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마 엄마의 품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아무 일 없이 평안한 상태라면 그저 지날 일이지만 마음이 복잡해 오니 무언가를 먹고 싶은 스트레스가 몰려온다. 이맘때 엄마의 부엌에서 뚝딱 만들어졌던 감자 샐러드가 절로 떠올랐던 모양이다.      

불편한 상황에선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을 원인으로 삼으며 위안하려 한다. 누구 때문에 늦어지고 있다며 하루에 한 번은 꼭 가족들에게 투덜댔다. 어찌 보면 타인의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냥 이런 상황이 나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잠시 잊고 있던 음식을 떠올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아침 감자 샐러드를 먹고 나니 일상을 천천히 마주할 여유가 생겼다.  

   

아침은 빵과 감자 샐러드에 치즈, 토마토, 우유까지 생각보다 가득한 음식이 차려졌다. 무심코 가다 보니 제자리에 돌아왔다. 감자 샐러드를 만들어 냉장고에 두면 하루는 잘 보낼 수 있다. 입이 심심할 때 작은 그릇에 몇 숟가락 떠서 가장 편한 자세로 먹는 것. 그렇게 엄마를 만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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