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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l 06. 2022

감자 궁리

감자 치즈 베이컨전  만들던 날 



여름날 그중에서 장마 시절은 엄마들에게 불편한 시기다. 밥상을 차리는 일은 불을 이용해야 하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흐른다. 밥에는 진심이던 내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그냥 지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 한잔으로 한 끼를 해결했으면 좋겠다.    

  

여름의 감자는 가장 친근한 먹거리다. 이웃이 며칠 전에 준 것과 엄마가 보내준 것까지 더해져 한동안은 마트에 가지 않아도 될 만큼 감자 부자가 되었다. 반찬이 마땅치 않다. 고민하다가 갑자기 스치는 게 있다. 감자를 채 썰어서 전을 만드는 것. 여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엇을 넣으면 더할 나위 없는 한 끼의 식사가 될 것 같았다.      


감자에는 베이컨과 치즈가 어울린다. 언젠가 피자를 시켜 먹었는데 그 위에 올려있던 게 생각났다. 그때도 괜찮은 조화였다. 냉장고에는 당연히 베이컨이 없다. 더운 날씨에 밖을 나가는 일이 망설여졌지만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 마트에 다녀왔다. 베이컨을 감자처럼 채 썰고 모차렐라 치즈와 달걀 하나를 깨트려 넣고는 잘 섞어주었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모양을 적당히 동그랗게 만들어 가며 노릇할 때까지 구워주면 끝이다.     

감자의 녹말과 치즈의 끈적함까지 더해져 서로가 잘 엉겨 붙었고 단단한 전을 만들었다. 구워진 치즈는 갈색을 띠었고 베이컨은 부끄러운 듯 분홍색을 살짝 드러내었다. 전은 간을 하지 않았지만 심심하지 않다. 감자가 지닌 나트륨은 자연스러운 맛으로 이어졌다. 치즈와 베이컨의 짠맛으로도 충분했다.   

  

식탁에 케첩과 돈가스 소스를 올렸다. 그냥 먹어도 무리가 없지만, 무엇이 더해지면 풍부한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의 입맛을 고려한 시판 소스들은 역시나 아이들에게 사랑받았다. 아이들은 소스가 전과 찰떡궁합이라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문을 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뜨거운 기운과 끈적한 느낌이 최고를 달려가는 시간에 저녁을 마무리했다.      


요즘 들어 감자가 밥상에 오르는 일이 잦다. 매일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단골 메뉴가 고공 행진하는 밥상 물가인 것과 무관치 않다. 시장에서 서너 가지만 사도 전보다 배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는 느낌이다. 어느 해인가 사람들에게 ‘냉장고 파먹기’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집에 있는 것을 활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종의 절약 생활을 의미한다. 요즘 내가 하는 감자 요리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아침에는 감자 들깨국을 끓였는데 밤에는 감자전이다. 다른 메뉴지만 같은 재료가 핵심인 두 가지 음식을 하루에 두 번이나 경험하는 셈이다. 감자가 자꾸 등장하게 된 이유는 절약해야겠다는 위기감에 복잡한 것을 하기 힘든 무더운 날씨가 한몫했다.      

자주 먹다 보니 감자의 맛을 새롭게 알아간다. 담담하고 소박한 맛. 그러니 무엇이 더해져도 무리가 없다. 갓 지은 흰 밥과 함께 하는 한 끼는 어떤 찬이든 꿀맛처럼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다. 울퉁불퉁 감자가 가득한 상자를 보면 흐뭇해진다. 독에 쌀이 가득한 것처럼 편안하다. ‘감자만 있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어’라는 자신감으로 반찬 걱정을 덜어본다.    

 

한 가지를 가지고 여러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 보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어릴 적 귤 수확이 한창이던 과수원에서 종종 귤을 모닥불에 구워 먹었다. 구운 귤이 맛이 없다고 저 멀리 돌담으로 던져버려도 괜찮았다. 보이는 게 귤이라고 할 만큼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감자도 마찬가지다. 집에 충분히 있으니 이것저것 만들어볼 궁리를 한다. 무엇이든 여유가 있다는 건 새로운 창을 열어 안 가본 길을 가게 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상자에 있는 감자가 사라질 때까지 몇 가지 감자 요리를 더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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