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진미
-토마토오이된장무침

by 오진미



하루 이틀 사흘…. 일주일 내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밥상을 차릴 때 맨 마지막에 등장해 화려한 빨강 여름 색으로 시선이 머물게 한다. 요즘 내가 흠뻑 빠져 있는 토마토오이된장무침이다.


먹는 일만큼 세상살이를 즐겁게 해 주는 게 없다. 맛있고 예쁘게, 계절을 그릇 안에 담는 시간이 즐겁다. 그럼에도 한두 번이 아니라 꾸준히 생각나고 식탁에 올리고 싶은 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이것만큼은 이 모든 걸 충족시킨다. 더운 날 비지땀을 흘릴 일도 없다. 한 접시를 만들기 위해 지갑을 열거나 부지런 떨지 않아도 된다. 토마토와 오이 하나만 있으면 일사천리다.


지난여름 잡지에서 레시피를 처음 접했을 땐 “된장과 토마토 오이라고? 그게 어울리겠어?”하고 책을 덮었다. 일 년을 넘겨 다시 보니 왠지 호기심이 생긴다. 마침 집에는 붉게 익어 절정을 달리는 토마토가 가득이었다.

음식을 만드는 일에 도전이나 모험이라는 거창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저 한번 해보고 맛있으면 나만의 요리가 하나 생기는 것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싶다. 이 조합은 이상하게도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탐험가가 되어보라고 부추긴다.


더운 게 당연하고 식탁도 매일 먹는 그 밥에 그 반찬이다. 새로운 것으로 지루함을 달래 보기로 했다. 엄마표 된장 반 숟가락에 올리브유와 매실, 깻잎을 다져서 넣고 고루 섞어서 소스를 만들었다.

매번 재미있는 오이 손질 과정이다. 칼을 들어 적당한 크기로 정갈하게 썰 필요가 없다. 기분이 안 좋아 길 가다 옆에 있는 돌멩이를 발로 차듯 절구로 오이를 툭툭 쳐 준다. 부드러운 속살이 적당히 흐트러지면 이때 알맞은 크기로 썰어준다. 살짝 상처 난 틈으로 소스가 배어들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비법이다.

제대로 된 모양만을 고수하는 게 도마에서의 습관이었다. 이리저리 오이씨가 튄다. 평소 같으면 먹지 못하게 됐다고 망설여졌을 상황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는 게 이걸 두고 하는 말 아닌가 싶다.


탱탱하던 오이 속살이 조금 으스러졌지만 어색하지 않다. 자로 잰 것처럼 반듯한 모양보다 인위적이지 않아서 정이 간다. 이제 토마토와 함께 소스를 넣고 버무렸다.


“와 정말 새로운 맛이다. 토마토가 된장을 만나니 은은하게 오이와 잘 어울리네.”

저녁을 기다리는 식구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고기였으면 언제 달려와 입을 벌려 한 조각씩 먹으려고 난리들이었을 텐데 미동도 없다.


“여보 이거 먹음 건강해지는 거니까 다른 것보다 많이 먹어요.”

남편에게 반강제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밥상에서 난 여전히 열심히 신메뉴를 설명했다. 모두가 귀담아듣지 않아도 혼자 즐겁다.


오이와 토마토, 빨강과 초록의 강렬한 대비가 식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된장의 짠맛이 토마토에 스며들었다. 토마토의 새콤함은 물론 물컹하면서 씨가 가득한 부분을 먹을 때 드는 거부감을 고소함으로 바꿔준다. 먹기 편하고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져서 무겁지 않은 샐러드다. 밥과도 제법 잘 어울린다.


올리브유 역시 된장과 만나 특유의 향은 사라지고 가볍게 전체적인 재료들을 휘감아 준다. 깻잎에도 어울려 각자가 지닌 독특함을 무리 없이 만들어 준다. 큰 접시 하나에 넉넉히 만들어서 냉장고로 직행하는 일 없이 바로 먹어야 제맛이다.

익숙한 것들에서 특별함을 발견했다. 혼자만 알고 먹기에는 아깝다. 여름 먹거리를 걱정하는 지인들에게 이것을 추천했다.

“토마토와 오이 된장이라고요? 참 신기하다.”

모두가 한결같은 반응이다. 상상할 수 없는 맛이라는 것. 나 역시 그랬으니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침 6시면 일어나서 아침밥을 준비하고 치우고 점심과 저녁을 비슷한 방식으로 보낸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고마우면서도 건너뛰고 싶은 계절이다. 심심하지 않은 식탁을 만들어야 하루를 잘 보냈다고 안심이다.


토마토오이된장무침을 올리는 밥상은 뿌듯함의 시간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다는 나를 향한 칭찬이다. 이것을 여름 보약이라고 이름 붙이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까지 신나게 만들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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