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바다

여름날 바다가 더욱 그리운 이유

by 오진미


바다가 자꾸 아른거린다. 풍덩 하고 뛰어들어 짠물을 마시거나 따끔거리는 날카로운 돌 위를 걷는 고생(?)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차창 너머로 넘실대는 푸른 물을 감상하거나 말간 검은색 구멍 숭숭 뚫린 현무암 위에 신발을 두고 발 담그고 싶다.

내게 바다는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바닷물에 들어가 시원하게 즐기고 싶다고 할 때도 그냥 지나쳤다. “뭐 바다가 그리 좋은가? 뜨거운 날에 얼굴만 붉어지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섬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바다와 친하지 않았다. 집에서 바닷가까지는 차로는 10분 남짓 거리였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귤 농사를 짓는 중산간 마을에서 나고 자랐기에 방학 때나 한두 번 놀러 가는 게 전부였다.

지금처럼 자동차가 흔한 시절도 아니어서 아버지의 경운기는 바다로 데려다주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오는 버스가 있었지만, 시간을 정확히 맞추는 일도 어려웠다. 운 좋게 버스에 올라탔다 해도 내려서 바닷가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다.


여름방학이면 종종 부모님 일을 도왔다. 귤이 한창 커가는 시절이라 온갖 병충해의 공격은 늘 이어졌고 정기적으로 농약을 쳤다.

“내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라 알았지. 농약 해야 하는데 약 저어야 하니까 밭에 같이 가자.”

아버지의 말에 뜨끔했다. 새벽부터 일어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시끄러운 경운기의 기계음과 함께 갈색 농약 통 옆에 서서 긴 막대기를 들고 휘휘 젓는 일이 싫었다.

나를 더 불편하게 한 건 햇빛이 잘 들지 않을 정도의 빽빽한 과수원에서 가끔 예상치 않게 발생하는 돌발 변수 때문이었다. 몇 년을 쓴 기계는 힘이 들었는지 호스가 터지거나 약을 걸러주는 중간 여과 장치가 막혀 밖으로 농약이 잘 나오지 않는 등 크고 작은 일이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의 날씨에 일하는 것만으로도 힘든 상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기계까지 말을 안 들으니 아버지는 예민했고 불똥이 내게로 튈까 조마조마했다.

아버진 눈치껏 말하지 않아도 깔끔하게 일하는 걸 중요하게 여겼다. 언제나 몸은 바지런했지만 일에는 별 도움이 안 되는 나를 가끔 나무랐다. 아이는 빨리 끝나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이 길어질수록 긴장감은 팽팽했다. 5시 반부터 시작된 일은 두 시간이 채 안 될 무렵 막을 내렸다. 이날은 별일 없이 지나간다고 안도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얼른 집으로 달려가 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한마디 한다.

“이따 점심 먹고 바다에 가자. 방학인데 한번 가지도 못하고….”

엄마는 풀 매어야 한다며 오빠와 나만 다녀오라고 했다.

그리 내키지 않는 길이었다. 덜커덩거리는 경운기 짐칸에 앉아 쏟아지는 햇빛에 얼굴 찡그리며 가야 할 시간이 별로였다. 바다에 가도 물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그늘 하나 없는 뾰족한 바위들 사이에 편하게 앉을 수도 없다. 한편으로는 시골아이에게 방학은 그저 학교에 가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그리 특별한 게 없던 터라 심심했다. “한번 가볼까? 집에 있어도 덥기는 마찬가지잖아.” 고민 끝에 가기로 마음먹고 경운기에 올랐다. 가는 길에 지나가는 수박 장수를 만나 작은 수박 한 덩이를 샀다. 아버지는 물과 물외 몇 개가 전부였던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여기에 담가 두었다 먹으면 냉장고보다 더 시원할 거다.”

아버지는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산물이라 불리는 용천수가 나오는 곳에 수박을 두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다는 듯 오빠와 아버지는 바다에 뛰어들었고 먼발치서 구경하다 나도 몇 번 몸을 적셨다. 수영을 못했기에 얕은 물에서 고동을 잡았다. 투명한 물 사이로 기어가는 모습이 귀엽다. 돌에 딱 붙어 있다가 손을 갖다 대면 움찔하고 놀라며 삼엽충 화석처럼 숨죽이고 있는 거북손, 금방 잡힐 것 같으면서도 사라지는 게까지 바다친구들과 손으로 몸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는 게 그나마 큰 위안이었다.

가장 무더운 오후 3시 무렵에 떠났던 바닷가 물놀이였다. 한참 물에 빠져 있던 아버지와 오빠가 나온다. 수박을 먹기로 했는데 칼이 없다. 그래도 문제 될 게 없다. 날카로운 현무암 모서리에 몇 번 툭툭 치니 조각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거친 바다 돌멩이 같은 투박한 수박 조각은 날씨 탓인지 그리 시원하진 않지만 달콤함이 짠 바다 내음과 어울린다. 적당히 고픈 배를 채워주는 시원하면서도 갈증이 사라지는 상쾌한 맛이다.

두 시간 정도 바닷가에서 지내다 수건으로 대충 몸을 닦고는 젖은 채로 경운기에 다시 올라탔다. 오빠는 대나무 낚싯대로 어랭이라는 물고기를 한 마리 정도 낚았던 것 같다. 그것을 금이야 옥이야 하고 비닐에 물을 담고는 품 안에서 놓지 않는다. 물에 들어가 있을 때는 몰랐던 뜨거운 열기가 얼굴은 물론 온몸을 훑고 지난다. 빨리 집으로 가서 씻고 싶은 마음뿐이다.


30년도 더 된 옛이야기다. 그때 바다는 그저 바다일 뿐이었는데 요즘은 달리 다가온다. 티비에서 제주 풍경이 나오면 가슴이 콩콩 뛰면서 때로는 눈물이 이슬처럼 살짝 비친다. 어느 날은 언니가 출장 나왔다가 들어가는 길이라며 바다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내주었다. 그걸 보고선 한참을 울었다.


시간이라는 게 참 무섭다. 어린 시절 오롯이 나를 키워낸 공간에 대한 기억이 중년이 되니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하지 않았지만 섬에서 자랐기에 바다는 그저 내 몸의 일부였는지 모르겠다. 태풍이 끊이지 않던 여름, 그 징조인 거센 파도 소리는 먼 우리 집까지 들렀다. 어릴 적에는 그냥 지나쳤다. 좀 커보니 바다의 엄청난 힘에 가끔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바다가 곁에 있을 땐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기에 무덤덤했다. 집을 떠나온 지 한참이나 지났지만 일 년에 두 번 이상은 갔었는데 지금은 마음은 있어도 망설여진다. 이런 상황이 일 년을 넘기는 동안 간절함이 싹텄다. 제주공항에 내릴 때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는 흙과 바다 내음이 가득 실린 바람 냄새가 울컥하고 가슴을 때린다.


이른 시간부터 일하고 힘든 몸을 이끌어 아이들을 태우고 바다로 갔던 아버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며칠 전 바다가 그리도 보고 싶어지는 건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조금 헤아리게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그때 우리가 떠나는 모습이 너무나 소박해서 물놀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웠다. 뜨거운 날, 패랭이를 유일한 가림막으로 삼아 경운기를 몰았던 아버지를 떠올리니 먹먹하다.


며칠 전 어느 편집숍에 들렸다가 바다 사진을 발견했다. 왠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제주 바다라고 쓰여 있다. 1500원을 주고 한 장을 사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다.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가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때까지 그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방금 내 주위를 돌고 지난 바람에 섬 바다 냄새가 살짝만 실려 왔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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