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사적인 냉면 이야기

by 오진미


하루 중 아침을 먹고 점심까지가 가장 빨리 지난다. 설거지하고 집안을 기웃거리며 손에 잡히는 대로 정리하고 오가기를 몇 번 하다 보면 점심이 다가온다. 금요일과 일요일 늦은 오후에 내린 굵은 고드름 같은 소나기가 여름 기운을 하나둘 앗아간 듯싶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괜찮은 점심이다. 방학이 3주를 훌쩍 넘겼고 그동안 내 머릿속 메뉴판은 다 돌아가서 생각나는 게 없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챙겨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지난주 사다 놓은 녹차 냉면이 생각났다.


우리 집 냉면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내가 주방장이니 내 맘대로다. 몇십 년 전통의 냉면집에서 고수하는 방식을 따라야 할 일도, 어디의 맛과 비교해야 할 대상도 없다. 그저 한 끼 “‘냉면’을 먹었구나”라는 마음이 들 정도면 대만족이다.


냉면은 내게 그리 익숙하지도 멀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를 지녔다. 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이 냉면에서 다시 살아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학교 대표로 뽑혀 지역에서 열리는 웅변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는데 나를 데리고 갈 선생님이 마땅치 않았다. 초등학교인 까닭에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했고, 그나마 시간 여유가 있는 교장 선생님이 나섰다. 자동차가 귀했던 시절이었는데 아버지와 함께 교장 선생님의 프라이드를 타고 대회가 열리는 읍에 있는 회관으로 갔다.

냉면2.jpg 여름방학 첫 번째 냉면과 육전


아침 9시를 막 넘길 무렵 초등생 예선이 시작되었고, 서너 번째로 강단에 섰다. 학교에서 대회를 거쳐 나오긴 했지만 쟁쟁한 실력자들이 많았다. 내가 생각해도 그럭저럭 보통의 발표였다. 결과를 보지 않아도 상을 받기는 어렵다는 생각에 일찍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교장 선생님이 안 된다고 했다.

“결과는 보고 가야지. 우리 점심 먹고 조금 기다리면 발표한다고 하니 밥이나 먹으러 갑시다.”

아버지와 난 그 동네에서 유일한 약국 건물 2층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교장 선생님은 내게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했지만, 메뉴판을 보아도 뭐가 뭔지도 모르겠다. 더구나 교장 선생님과의 동행은 그 자체로 부담 백배였다.

“날씨도 더운데 냉면 먹을까요?”

아버지가 먼저 나섰다. 이름만 들었던 냉면과의 첫 만남이었다. 지금도 고명으로 올려졌던 얇게 썰어진 고기와 붉은 토마토 몇 조각이 눈에 선하다. 멸치로 육수를 낸 국수에 익숙했던 내게 고기 육수의 맛은 너무나 낯설었다. 면은 탱탱한 나머지 질겼고 젓가락질은 내 맘과는 달리 그릇 안에서 롤러코스터를 탈 정도로 난리다.

“아주머니 여기 가위 주세요.”

아버지가 내 모습을 보다 말고 면을 잘라준다. 그때부터는 면을 먹는 일이 어렵지 않았는데 밍밍한 맛이 거슬린다. 국물은 식초와 겨자가 살짝 들어간 후라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이국의 맛이었다. 솔직히 맛이 없었다. 김치에 밥이 낫겠다 싶을 정도였다. 그 후로는 냉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냉면이 대중화되기 전이라 식당을 찾아가 먹을 일도 없었기에 잊고 있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회사 동료들과 냉면집이 즐비해 있는 오장동이나 마포에 있는 을밀대로 약속을 잡고 다녔다. 한 시간 정도의 점심시간에 다녀오는 일은 쉽지 않았기에 이날만큼은 30분 일찍 회사를 나서기 위해 이리저리 눈치를 봐야 했다. 어릴 적 소풍 가는 마음이었다. 동료의 차를 얻어 타고 정원을 초과한 채 꾹꾹 눌러앉아서 찾아갔던 그곳에서 맛이 진한 함흥냉면이나 깔끔한 국물이 일품인 평양냉면을 먹었다. 그리 즐거울 일 없는 여름날의 망중한이었다.


아이들이 여름방학을 하고 세 번째로 먹는 냉면이다. 처음은 7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 일찍 담양에 있는 관방제림 길 산책 후에 맞는 토요일 점심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른다고 할 만큼 더위가 절정이었다. 식당에 들어가는 일은 코로나 시국인지라 꺼려졌고 집에서 먹기로 했다.


“집에 가는 길에 로컬푸드에서 고기 사서 육전 만들고 냉면 먹어요. 어때?”

“응 좋아 좋아.”

모두가 대만족이다. 여기까지만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준비하는 동안은 내 입을 나무랐다. 불과 떨어져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고 가족들이 여유 있게 먹기 위해서는 육전을 넉넉히 만들어야 했다. 얼굴과 목에서 땀이 흐른다.

“시원한 음식을 먹으려면 불과 싸워야지 뭐. 하는 수 없지.”

처음에는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약속해 버린 나를 원망하다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냉면은 비빔장만 만들고 육수는 냉우동 국물로 대신했다. 주인공인 냉면보다 더 조명을 받은 건 육전이었다. 접시 가득 산을 이룬 그것은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이 넉넉했다.

냉면1.jpg 여름방학 세 번째 냉면과 찐만두


오늘은 세 번째로 냉면 먹는 날이다. 냉면 친구는 만두로 정했다. 냉동만두를 찌고 녹차 면을 아이와 함께 뭉친 실뭉치를 차분히 정리하듯 하나씩 덩어리를 떼어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다 보니 많다고 생각되던 면 덩어리가 수북이 쌓인 눈처럼 부드럽게 한 가닥 실처럼 모였다. 육전 두 장을 부치고 남은 달걀 물로 지단을 만들었다. 시판 육수로 면을 축이고 이 둘을 면 위에 올리니 그리 외로운 냉면은 아니다. 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지난다. 방충망 너머로 보이는 햇살의 기운도 예전만 못하다. 촉촉한 만두는 조금은 심심한 면에다 금상첨화였다.


계절에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겨울에 먹는 냉면도 일품이지만 여름에도 뒤지지 않는다. 정성을 담아야겠다는 특별한 마음이 없기에 맛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도 더러 있다. 이상하다 싶지만, 함께 둘러앉은 이들과의 관계가 곧 냉면의 맛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매운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이라 아이들 입술은 붉게 물들었다. 콧물도 나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휴지를 찾는 모습이 귀엽다. 냉면이 여름날의 맛있는 기억을 만들어 준다면 가끔 불 앞에 설 용기를 내어 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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