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알게 된 콩잎

by 오진미


“콩잎 먹어봤니? 지금이 젤 맛있을 때라 아침에 따서 바로 포장해서 보냈는데….”

이른 아침부터 엄마의 전화다. 이틀 전에 보낸 택배 상자에 있던 콩잎을 먹고 어땠는지 궁금했나 보다.

“밭에 가보니 가지랑 오이가 한창이더라. 집에는 먹는 사람이 없으니 보낼게. 전에 보낸 거 다 먹었지?”

“응 엄마 하루 이틀이면 다 먹으니까 내일모레 보내요. 그러면 딱 좋을 것 같아.”

“콩잎도 다시 보내줄까?”

“응 보내줘요. 밥 싸 먹으니까 맛있더라고요.”


요즘 들어 엄마의 전화가 잦다. 콩잎에 대해서는 몇 번을 강조할 만큼 중요시한다. 이건 한여름 밥상에 단골이었다. 이 계절 콩은 뜨거운 태양과 쏟아지는 거센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창 커간다. 봄을 지나 여름을 맞이하면서 땅에 내린 뿌리가 단단해졌고, 웬만한 바람 앞에서는 흔들리지만 잘 꺾이지 않을 정도의 힘이 생겼다.


이때 콩잎은 잎이 넓고 거세지 않으면서도 잔잔한 풀향기를 전한다. 보드랍고 힘이 넘친다. 특별한 찬이 없던 어릴 적에는 부모님은 이것을 즐겼다. 부모님은 새벽 기운에 일해야 한다며 이른 시간에 과수원으로 나가 점심무렵이 되어야 집으로 돌아왔다.


더운 날씨에 치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허기진 배를 채우는 한낮 밥상에는 콩잎이 꼭 상에 올랐다. 봄날 항아리에 담아두었던 자리돔 젓갈이나 굵은 멸치로 담근 맬 젓에 다진 마늘과 붉은 고추, 풋고추를 썰어놓고 깨와 고춧가루를 뿌려 양념한 다음 밥에 올려 콩잎으로 쌈을 쌌다. 짜지만 고소하고 달큼한 젓갈을 콩잎 위에 살짝 올리면 밥맛이 없을 때 입맛을 잡아주었다.


“여름엔 이게 최고지.”

매일 감탄하는 부모님의 모습이 낯설었다.

“한번 먹어봐라. 이거 진짜 맛있는 건데.”

둥근 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한두 번은 꼭 들어야 밥시간이 지난다. 그래도 꿋꿋하게 버텨서 어른이 될 때까지 콩잎을 먹지 않았다. 낯설었고 끌리지 않는 그저 어른들의 먹거리였다.


직장에 다니는 20대 무렵이었다. 휴일이어서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었다. 일을 끝내고 나서 먹는 늦은 점심이었는데 삼겹살을 넉넉하게 굽고 밭에서 나는 것들이 총동원되었다.

“이거 먹어봐라. 상추보다 콩잎에 싸 먹어야 제맛이지.”

엄마의 말에 주저함 없이 콩잎 두세 개를 손바닥 위에 올렸다. 노릇노릇 구워진 고기에 쌈장을 올리고 잎으로 대충 싸고는 먹었다. 고기의 기름진 맛이 콩잎의 담백하고 단단한 맛에 이끌려 어울린다.


그때야 콩잎의 맛을 알게 되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된다.”

어릴 적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부모님의 얘기가 딱 들어맞는 대목이었다. 상추처럼 보드랍거나 깻잎처럼 특유의 진한 향이 머물지 않는다. 여름 이른 아침에 시골길을 가다 보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는 풀잎과 흙의 냄새에 빠져들며 걸어가게 되듯 콩잎은 딱 그랬다. 단단한 것 같으면서도 적당하며 특별히 같이 먹는 쌈 친구가 없어도 홀가분히, 그렇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여름의 맛이다.


엄마와 통화를 끝내고 점심을 준비하다 나 홀로 콩잎에 밥을 싸서 먹기로 했다. 아이들은 당연히 관심도 없다. 지난여름에는 이것을 구경하지 못한 것 같은데 올해는 엄마가 또 부지런히 움직였나 보다. 콩잎이 있다는 건 돌아올 새해에 장을 담그기 위해 콩을 준비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풋감으로 물들인 갈옷을 입고 여름이면 집마다 콩밭 매러 가는 게 큰일이었다. 혼자서는 힘에 겨워 옆집 혹은 아는 이들끼리 품앗이로 했다. 제주에서는 이것을 수눌음이라고 했는데 이 계절에는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어지는 농부의 지혜였다. 그늘 하나 없는 밭의 중앙에서 패랭이에 수건을 올려서 쓴다 한들, 태양은 거부하기 힘든 불청객이었다. 그러면서도 점심에는 콩잎을 따서 밭 한편에 있는 그늘에서 밥을 먹었다.

엄마가 유독, 이 콩잎에 집착하는 건 힘들지만 좋았던 그때의 추억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채소들은 여름이 아니어도 만날 수 있다. 콩잎은 꼭 이때여야 한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너무 거세져서 먹기 힘들다. 그때는 노란 콩 열매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다. 엄마는 나풀나풀 초록 어디에 벌레 하나 갉아먹지 않는 강한 생명력의 그것을 내게 먹이고 싶었나 보다.


콩잎은 나를 키워준 섬에 대한 이해인 지도 모르겠다. 8월의 콩잎은 쉽게 시들지 않는 강인함을 지녔다. 숨 죽어 시든 것 같다가도 물에 조금만 담가 두면 살아난다. 거친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살아내야 했던 농부의 끈질긴 삶이 콩잎과 닮았다. 고향의 계절을 선물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찬찬히 전해진다. 엄마의 콩잎이 내일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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