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고 간단히, 잼 만들며 정들다
남편이 퇴근길에 무화과를 들고 왔다. 무화과는 여름이 깊어져 익숙해질 무렵이면 만나게 되는 과일이다. 아이들은 부드럽지만 독특한 맛에 그리 반기지 않는다. 난 그 시간이 다가왔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아직도 밖은 시끄러운 매미 소리가 귀를 때린다. 처음에는 이게 매미 소리인지도 몰라서 무슨 소음이 이리도 심하지 했는데 그건 중국 매미들의 난리판이었다. 토종 매미는 “매엠맴~~~ 맴맴” 하고, 울고 쉬기를 리듬감 있게 반복한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더운 날은 이 소리에 잠시 여유를 찾게 되는 음악이 되기도 한다. 나무와 주변을 점령해 버린 중국 매미들은 그럴 생각이 없다. 온종일 울어댄다. 더운 여름을 더 부채질하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내게 무화과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제 여름이 내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며, 조금만 더 참고 지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한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무화과는 은은한 달콤함을 지녔다. 금세 물러버릴 정도로 부드러운 속살은 매력이면서도 한편으론 빨리 먹어야 한다고 재촉의 소리다.
무화과는 보관을 잘해야 탱탱한 채로 먹을 수 있어 특히 신경 써야 한다. 물기에 약하기에 면포나 치킨 타올로 잘 감싸야 싱싱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대충 플라스틱 포장 용기 채로 김치냉장고 과일 칸에 두었더니 벌써 물러졌다. 아침 식탁에 올릴 샐러드용 몇 개를 꺼내다 안 되겠다 싶어서 상태가 별로인 5개로 잼을 만들기로 했다.
물에 살짝 씻고는 나무에 매달려 있던 줄기 부분을 칼로 잘라낸 다음 듬성듬성 썰었다. 잼이라고 하지만 얼마 동안만 먹을 수 있도록 조려내는 과정이다. 조금 있으니 물이 나오고 물컹이기 시작한다. 설탕을 밥숟가락으로 3개를 넣고는 휘휘 저었다. 끓기 시작한 뒤라 약한 불로 놔두면 그만이다.
15분 정도가 지나 국물이 살짝 남아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불을 껐다. 잼을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간단한 일이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10시를 훌쩍 넘길 즈음 뭔가 갑자기 먹고 싶어 진다. 며칠 전 사다 놓은 로만 밀 식빵 한 조각을 꺼내어 구웠다. 언제나 빵 굽는 고소한 냄새는 잠자고 있던 감각들을 깨우는 단순하지만 깊은 향을 갖고 있다.
“너도 먹을래?”
“응, 엄마 나도 먹을게.”
옆에 있던 막내와 건너편 방에서 학원 숙제를 하는 큰아이까지 모두가 식빵 한 조각씩을 들었다. 무화과 잼을 펴 바르고 반으로 접었다. 그리 달지도 않지만 달큼한 맛이다. 혼자 뿌듯한 기분에 살짝 취하고 작은 병에 가득 담아 냉장고로 보냈다. 얼마 동안 빵과 함께 먹을 친구가 생겼다.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알게 되는 건 무엇이든 그리 복잡하면 오래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잼 역시 그랬다. 처음에 이걸 만들 때는 “오늘은 잼을 만들어야지.”하고 아침부터 마음먹고는 집중해서 움직여야 해내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과일을 먹다가 조금 시들거나 양이 많이 생겼을 때는 이웃과 나눠 먹거나 몇 개는 바로 잼을 만든다. 몇 개월 이상을 보관해서 먹을 것이 아니기에 설탕은 생략하거나 아주 조금만 넣는다. 바로바로 만들어서 다음 날 아침 빵이나 요구르트에 먹는 기분은 썩 괜찮다.
여름 잼에는 복숭아며 포도, 초록의 풋사과가 단골이다. 복숭아와 사과는 아삭한 맛이 오래 머물고 포도는 진한 검보라색 빛깔의 새콤한 맛이 모인다. 포도잼을 생각하는 지금도 침이 고일 정도다. 아침으로 된장찌개와 계란말이, 오이김치를 준비하며 한쪽에선 잼을 만든다. 그냥 놔두면 절로 되는 것이기에 불과 시간에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없다. 어찌 보면 큰 기대가 없고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기에 나오는 여유다.
“집에 들어온 먹을거리는 어떻게 해서든 버리지 말고 먹어야 해. 그게 가장 큰 인사야.”
잊을 만하면 호박과 오이 등 채소를 계절마다 던져놓고 가는 이웃 언니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때면 잊지 않는 말이다. 잘 먹는 게 중요하다. 어떤 방법이든 상태에 맞게 만들어 먹으면 그게 최고의 밥상이었다. 잼이란 건 오래 먹을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이다. 선선해질 무렵까지 얼마 동안은 무화과를 종종 먹을 수 있겠다. 이 계절이 지나면 또 돌아오는 여름을 기억해야겠지만.
잼을 몇 번 만들고 나면 여름도 내 곁을 떠날 듯하다. 대충 만들어도 마음 상할 일이 없는 것. 입이 심심해질 무렵 냉장고 문을 열어 잼 통을 꺼낼 때, 반가움이 갑자기 밀려오고 바게트든 통밀빵이든 잼을 올려서 여기에 생치즈 한 조각이라도 더해주면 최고의 식탁이 된다. 그러고 보면 여름을 좋아하진 않지만 내게 주는 선물은 참 많다. 오늘도 무화과 잼을 얻었다. 내일은 단호박 잼을 만들 생각이다. 내가 그를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준비가 되어있는 그 이름은 '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