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만나는 건 당연하지 않았다

by 오진미


저녁이면 당연히 달을 볼 수 있는 줄 알았다. 단지 내가 까만 밤하늘에 고개를 들어 살피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건 착각이었다. 달을 만나는 일은 절로 되는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행운이라고 여길 정도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적당한 타이밍이라는 게 필요했다. 달이 떠 있을 때와 나의 시간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했다.


달에 관한 생각이 많아진 건 큰아이의 과학 수행평가 때문이었다.

“엄마 선생님이 일주일 동안 달 사진을 찍어서 메일로 보내래. 오늘부터 저녁에 자기 전에 밖에 나가서 찍어야겠어.”

초여름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달 사진을 얘기를 꺼내 들었다.

10시를 훌쩍 넘긴 시간 아이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돌았다. 평소에는 그리도 잘 보이던 달이 어디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첫날을 그렇기 보내고 이튿날도 만날 수 없었다.

“달이 다 어디 간 거야. 밤이면 보였는데….”

밤마다 넋두리 섞인 짜증이 나왔지만, 별도리가 없다. 아이도 학교 과제이니 속이 타는 눈치다.

“엄마 달뜨는 시간이라고 검색하면 자세한 걸 알 수 있다고 해요. 친구가 알려준 건데 거기서 시간 보고서 하면 편하대.”

학교 다녀오며 새 소식이라고 말하는 아이 얼굴이 모처럼 밝다.


그때부터 매일 사이트에서 확인하고 가장 적당한 시간에 달 사진 찍기에 나섰다. 밤에 달을 볼 수 있는 3~4일은 연속해서 비가 내렸고, 맑은 날은 새벽 시간에 떠서 초저녁에 졌다. 아이는 알람을 맞춰서라도 해야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우리 집은 애 아빠가 나서서 해줬어요. 아이가 한다고 하는데 새벽일 때도 있고 들쭉날쭉해서요.”

동네 친구 엄마 얘기를 듣고 내 마음이 움직였다. ‘내가 하면 되겠구나. 기필코 일주일 분량을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새벽 2시를 넘긴 시간 휴대폰 알람 소리다. 내가 설정해 놓고도 왜 울리는지 몰라 눈을 비비고 일어나서야 떠올랐다. 베란다로 나가니 저 멀리 달이 떠 있다. 보물을 발견한 것처럼 황금빛 노란 달이 반갑고 고맙다. 사방이 고요해서 문을 살짝 여는 소리도 조심스럽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홀로 깨어 있다는 뿌듯함에 새날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순탄할 것 같은 시간이 다시 난관에 봉착했다. 날씨가 훼방을 놓기 시작했다. 그동안 괜찮았던 날이 흐리거나 빗방울이 보이는 날이 많아졌고 변덕이 심했다. 일주일 이상을 허탕 쳤다. ‘달’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쌓였다. 아이는 그동안 찍은 것만 제출한다고 했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그만두기는 아쉬웠다. 선생님이 시간을 연장해 주었기에 한 주를 더 해 보기로 했다.

저녁을 먹고 막내와 산책을 하는 길에 우연히 기대하지도 않았던 달을 만났다.

“엄마 달이야. 저기 봐봐 둥근달이야. 우리 성공했어.”

아이가 휴대전화를 들고 찍기 시작했다. 언니가 좋아할 것이라며 큰일을 성공한 것처럼 들떴다. 그리고 며칠간 달은 다시 또 우리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매일은 아니었지만, 일주일을 훌쩍 넘긴 10일을 찍고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온 가족이 나서서 아이의 숙제를 도왔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하게 여겼던 게 점점 커서 풍선만큼이나 부풀었다. 우리가 원할 때가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시간에 나서야 했다.

달을 알게 되었다. 숨을 쉬는 일처럼 달은 밤이면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은 달과 나의 시간이 그저 우연히 맞아떨어졌을 뿐이었다. 코로나 시대를 보내면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듯이 아무 대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막힘없이 돌아가기에 당연하다 단정 지어버린 그동안이었다. 달의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한편으론 알고 준비한다고 해서 일이 술술 풀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선생님의 말처럼 의지와는 상관없이 ‘될 만큼 된다’라는 게 맞을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알고 있다는 건 한 발자국 나아가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의미일 수 있겠다.


“엄마 나와 봐, 달 떴어.”

“달? 나 이제 달이라고 하면 지긋지긋해.”

한동안 달에 대한 감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왠지 나를 고생시킨 장본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멀리했다.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저녁 운동길에 가로등 불빛에 빛나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를 바라보다 저 너머에 있는 달을 보았다. 그저 담담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일 볼 수 없는 달이 내 앞에 있다. 보통의 하루가 달을 만난 덕에 특별한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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