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귤을 받고 나서

by 오진미


귤이 도착했다. 지금 과수원의 귤은 한참 커 갈 때다. 비와 바람과 태양을 벗 삼아 가을의 찬란한 절정을 향해 나아간다. 내 앞이 있는 찐빵만큼 크고 초록과 노란색이 어울린 귤은 비닐하우스가 고향이다.


내가 초등학교 무렵만 해도 귤은 가을이 깊어질 무렵에야 만날 수 있었다. 노랑과 잘 익은 주황의 감빛은 온 동네를 물들이고 온 섬을 환하게 비추는 빛이 된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여름에도 귤이 나왔다. 추운 겨울에 기름으로 하우스 난방을 하고 봄을 맞이하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성장기가 되어 여름 무렵부터 사람들을 찾아간다. 상당한 자본과 정성이 들어가는 농사지만 내게는 낯설다. 귤은 추운 날 따는 게 정상이라는 오래된 관념이 작동하는 까닭이다.


귤 따던 날의 추억은 겨울의 추운 날씨와 함께 기억되었다. 펑펑 내리는 함박눈,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싸라기눈을 맞고 손을 호호 불며 귤과 씨름했다. 새벽어둠을 헤치고 들어선 밭은 귤빛만으로도 훤한 대낮이다. 예쁘거나 먹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어서 빨리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시간이었다. 온 가족의 일 년 생활이 이 과수원에 달려있기에 어린 마음에도 부담이었다.


이제 과수원을 떠나온 지 30년이 되어간다. 어쩌다 가을에 집에 가도 몇 시간 일하는 게 전부일뿐 제대로 된 귤 수확에 나선 적이 별로 없다. 과수원에서도 내 자리는 잠깐 왔다가는 손님으로 변했다. 가을이 되면 한번 귤 따러 가야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거기까지다. 바쁘다는 핑계로 다시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지나쳐버린다.


내게 귤은 태어나고 자란 공간에 대한 기억이다. 한편으로는 어린 시절의 성장 과정을 빈틈없이 채워놓은 바구니다. 매번 엄마가 보내주는 귤을 받을 때마다 여러 생각이 스쳤다. 맨 처음은 엄마 혼자 과수원을 오가는 사계절의 땀의 녹아 있다는 것. 그다음으로는 엄마의 귤만큼 맛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다. 가끔 보내 달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해서 마트에서 사서 먹으면 내가 알고 있던 귤 맛이 아니다. 시거나 싱싱한 기운은 어디론가 사라진 비어 있는 기분이다. 우리 집 귤이 얼마나 맛있는지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엄마의 농사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스칠 때는 마음이 쓰라리다.

과수원은 우리 가족에겐 삶터였다. 아버지는 항상 늦가을이 되어가면 크리스마스 전까지 귤을 따야 한다고 재촉했다. 학교가 끝나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은 온 시간을 과수원에서 보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정해진 법칙이자 진리였다. 과수원에 불을 피우고 찬 손을 녹여가며 일을 끝내고 오면 다시 집에서는 나무 상자에 저장하는 과정을 거친다. 저녁을 먹고 전구의 반짝이는 불빛 아래서 귤을 정리했다. 8시를 훌쩍 넘기는 시간이었고, 초등학생이던 난 졸렸지만, 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시간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의 칭찬은 이어졌다. 그것 때문인지 비상시국이던 귤 수확 철에는 종종 아버지와 동무 삼아 창고에서 귤 정리를 도왔다. 지금은 너무 아득해졌지만, 기분 좋은 고마운 시간이었다.


가을 제주의 풍경은 귤 때문에 따듯하다. 누군가는 환호성을 지르고 카메라에 과수원과 주변을 담기에 바쁘다. 집을 떠난 이후로 가을날 여유 있게 집을 방문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 해 귤이 한창이던 때에 집에 가게 되었다. 몇 년 만에 가위를 잡고 집 뒤에 있는 밭에서 귤 수확에 나섰다. 처음에는 집중이 안 되어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빠져들었다. 아무 생각이 없고 보이는 노란 귤이 손에 잡히는 대로 바구니에 넣었고 가득하면 다시 플라스틱 컨테이너로 가서 비웠다. 점심을 먹고 시작된 일은 세 시간이 지날 무렵 갑자기 내리는 비 때문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제법 손에 익어서 하려는 참에 아쉬우면서도 더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흘렀다. 어머니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과 힘들다는 이중적인 감정이었다. 그만큼 귤 따는 일에 멀어져 있다는 증가가 아닐까 싶다.


어제 언니와 통화를 하는데 엄마가 과수원에 갔다고 했다. 언니는 새벽 일기 예보에는 폭우가 쏟아진다는 말에 엄마가 농약 치는 것을 미뤘는데, 온종일 날이 괜찮으니 다시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탓에 집에 머물고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는 또 가을에 제값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과수원에서 일하는 모양이다.


이제 귤의 시간이 다가온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빨리 익는 것부터 과수원에서 자란 귤들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다. 함께 손을 모아 일할 사람이 없어서 엄마는 주로 밭떼기로 귤을 팔아버린다. 과수원 면적 대비 나무에 달린 양을 어림잡아 상인과 흥정하는 방식이지만 농부에게는 그리 이익이 아니다. 언제나 귤을 따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이 나온다. 상품에서부터 그럭저럭 문제가 있지만 괜찮은 녀석까지 품질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나무에 달린 것을 제 손으로 다 따기가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고육지책이다.


택배로 도착한 하우스 귤을 하나 꺼내 들었다. 달콤하고 과즙이 팡팡 터진다. 몇 알을 먹고 있으니 야생의 찬 바람이 부는 초겨울 무렵 나오는 단단한 귤이 그립다. 곱게 자란 하우스 귤에는 없는 것들이 많다. 톡 쏘는 시큼함에 강한 달콤함, 알맹이마다 근육질의 몸매처럼 느껴지는 건강한 탄탄함을 발견하기 힘들다.


“요즘 가격이 많이 올랐다. 옆집에서 준 귀한 거니까 잘 먹어라.”

엄마는 잘 받았다는 인사에 여름날 귤의 의미를 거듭 강조한다. 더운 계절에 나오는 가을 과일이니 당연히 가격은 제철일 때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큰맘 먹고 사야 한다. 아이들은 그저 할머니가 보내주니 오고 가며 먹는다. 아이들은 귤에 대해서 뭐라고 특별한 마음을 갖기 힘들다. 그저 맛있는, 엄마의 고향에서 나는 과일이다.


나는 여러 가지 감정이 스친다. 어린 날의 나를 돌아보기도 하고, 이제는 먼발치서 바라보는 타인이 되어 있는 듯한 나의 자리도 실감한다. 경험이라는 것도 나이 먹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때는 몰랐던 것을 들어 올리게 한다. 과거에서 멈춰 버린 것들을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발을 붙이고 도전하는 기분은 사뭇 다르다. 귤 하나를 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한 알을 입에 넣어 본다. 다시 귤을 잘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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