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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Sep 22. 2021

동그랑땡과 맛있는 수다


추석 연휴가 몇 시간 남았다. 전업주부인 내게도 쉬는 날은 특별했나 보다.  2주간 아이의 자가격리가 끝남과 동시에 휴일도 막을 내렸다. 두 아이는 그동안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학교에 막상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그저 그런지 조용하다. 남편은 내일 있을 회의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혼자 산책을 다녀오고 나서는 며칠간의 내 마음을 살펴보기로 했다.     


전을 만드는 일이 이리도 썩 괜찮은 시간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시댁도 친정도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추석을 계획했다. 그저 마음껏 맛있는 걸 먹기. 가장 단순하면서도 쉽게 모두를 만족시켜 줄 방법을 택했다. 토요일 열심히 장을 보고 와서는 냉장고를 채웠다. 냉동 피자에서 송편, 전 부칠 여러 가지에 간식들로 집은 먹을거리로 넘쳐났다. 밀 키트로 추석을 보낸 이들이 많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지만 내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어릴 적 엄마의 모습은 어느새 내 모습이 되어 있었다. 가능한 정성을 들여서 음식을 만드는 것, 추석 준비를 하는 내내 그러했다.    

 

“엄마, 전 언제부터 만들 거야?”

“응 아침 먹고 하지 뭐. 한 9시쯤에 시작할까?”

일요일 아침부터 큰아이가 전 부치는 시간을 묻고 또 묻는다. 언제부터 기다려왔는지 모르겠다며 빨리 만들자고 난리다. 어려서부터 고개 너머로 내가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들 때면 무슨 요리인지, 맛은 어떠한지 궁금해했다. 그러다 이제는 중학생이 되어 제법 미식가가 되었고, 때로는 가끔 이색 요리를 만들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는 든든한 동반자로 전을 부치는 일에 도움을 준다. 올해는 유난히도 기다리는 눈치다. 잠깐 놀라면서도 부지런히 전을 만들 재료를 손질했다.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동그랑땡을 위해 당근과 쪽파, 두부 등을 다졌고 명태전을 위해 생선을 씻고는 소쿠리에 두고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여기에 깻잎도 씻고 애호박도 꺼내놓았다.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일 년에 딱 두 번, 전을 만드는 설이나 추석에만 등장하는 전기 그릴 팬도 꺼냈다. 큰아이와 막내가 힘을 합해 동그랑땡을 쟁반 두 개에 가득 만들어 놓았다. 큰 스테인리스 볼에 달걀 물을 가득 만들어 놓고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힌 동그랑땡을 담가 노란 옷을 입혔다. 적당히 열기가 올라온 그릴에 아이가 하나씩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엄마 이 냄새야! 아 맛있는 냄새.”

큰 아이가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이가 친구들 얘기며 다가올 중간고사까지 이런저런 얘기들을 늘어놓았다. 손은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도 아이의 말이 전이 익어가는 고소한 기름 냄새만큼이나 귀에 쏙쏙 들어온다.  

“엄마 내가 자꾸 엄마한테 말하잖아. 시험에 대한 불안과 걱정들, 그런 거 얘기하고 나면 나 정말 기분이 편해지고 좋더라고.”

“그래? 엄마가 얼마 전까지 왜 계속 같은 얘기를 반복하냐고 야단치고 짜증 내고 그랬지. 그땐 정말 미안했어. 요즘 엄마가 생각해 보니 그렇게 말을 해서 네 마음이 좋아진다면 썩 괜찮은 방법 같기도 해.”


서로가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가볍게 얘기를 나눴다. 절대 간단치 않은 대화였는데 어찌 그리도 술술 말이 나오는지 깜짝 놀랐다. 어떠한 평가나 감정을 싣지 않은 채 그저 사실만을 얘기하고 있었다. 아이가 시험 기간이면 공부량이 부족한 것 같다고 하루에 두세 번 이상을 마주칠 때마다 얘기했다. 처음에는 “그래”라고 답하다가도 거듭될수록 내 목소리는 높아졌고, 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시험 결과에 대한 마음 씀이 아니라 시험을 앞두고 준비하는 기간 내내 내가 마주쳐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잘 들어줄 수 있는 그리 나쁘지 않은 상태가 아닌 경우에는 불같은 화가 모든 걸 다 덮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럴 수도 있지. 시험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거야.”라는 생각이 스쳤다. “틀렸어”라는 단정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살짝 벗어나니 그냥 아이의 모습만 보였다.  그동안의 나누지 못한 마음에 대해서 동그랑땡이 쌓여가는 만큼이나 서로의 얘기를 들었다. 

“이거 맛있겠다. 하나 맛볼래? 간이 어떤지 모르겠네.”

“엄마 정말 맛있어. 짜지도 않고 딱이야.”

아이와 동그랑땡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싱거우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아이의 말처럼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맛이었다. 팬에서 꺼낸 뜨거운 것을 바로 입으로 가져갔으니 입안에서는 난리가 났지만, 서로가 웃으면서 맛있다고 먹기에 바빴다. 막내도 옆에서 언니에게 지기 싫은지 열심히 거든다. 그러다 티비 앞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의 손이 나보다 빠르다. 가로로 가지런히 줄을 잘 맞추고 전을 부친다. 

“야 너 진짜 빠르다. 엄마는 이렇게는 못 하는데.”

“응 엄마 난 은근한 완벽주의자 같아. 무엇을 할 때 시간을 끌기보다는 정해진 시간 내에 빈틈없이 하고 싶더라고. 요즘에야 내가 그런 모습을 갖고 있는 걸 알게 된 거 같아.”

아이가 나보다 더 어른스럽다. 40여 분이 지나는 동안 동그랑땡 반죽이 바닥을 드러냈다. 이젠 아이가 좋아하는 깻잎 전이다. 초록 깻잎에 고기 양념을 넣고 잎을 반으로 접는다. 좋아하는 가수며 코로나가 괜찮아지면 하고 싶은 것, 패션에 관한 것까지 주위에 모든 것들이 우리의 수다 바구니에 담겨 전과 함께 익어갔다. 

     

2시간 반을 훌쩍 넘긴 시간 네 가지의 전이 완성되었고 투명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 냉장고로 직행했다. 일요일부터 오늘 아침까지 식탁에 오른 든든한 식탁의 지원군이 그렇게 만들어졌다. 엄마와 오빠, 동생을 마주하지 못하고 전화로만 만난 추석이었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하루하루가 지나면서도 또 다른 하나를 얻었다. 아이와 내가 만나는 지점, 교집합을 발견한 기쁨이 크다. 음식을 함께 먹는 일만큼이나 같이 얼굴을 보며 서로의 표정을 읽으며 만드는 즐거움의 의미를 새로 알게 되었다. 끈적하고 부드러운 식용유 냄새가 아이와 내 피부에 스며드는 시간만큼 서로는 더 가까워졌을까? 동그랑땡과 깻잎전을 만들며 추석을 재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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