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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22. 2021

감동 주는 샌드위치를 기다립니다

   

빵집에 가면 항상 망설이는 일이 있다. 아이들 간식으로 빵 몇 개를 챙기고는 샌드위치가 코너에 잠깐 멈춘다. 초록, 빨강, 노랑 여러 가지 색이 빵 사이에 보인다. 토마토와 양상추, 햄, 오이, 베이컨 등을 감싼 샌드위치가 나를 잠시 유혹한다. 집에 하나 들고 가서 점심으로 먹을까 하고 몇 번을 망설이다 옆에 보이는 바게트 하나를 들고 왔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샌드위치 고르는 일이 어렵다. 하나를 들고 계산대에 갈 것처럼 하다 끝난다. 어떤 빵집에서든 마음이 가다가 혹은 정말 살 것처럼 들었다 다시 놓게 된다. 이런 내 마음이 참 웃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를 돌아보았다. 난 낯선 곳에 가면 빵집을 찾아서 그곳의 빵 맛을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빵순이다. 집에서 출발하기 전 그 동네 빵집을 검색하고 꼭 챙긴다. 맛에 상관없이 빵 한두 개를 사서는 먹어보는 게 큰 즐거움이자 정해진 코스다.       


이상하리만치 샌드위치에는 엄격하다. 가까워질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좁혀지지 않는 거리다. 내가 만들 수 있는, 만만하게 생각하는 메뉴로 여기는 게 문제였다. 가끔 먼 곳을 갈 때 역이나 공항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먹는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그 맛이 그 맛이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서 그것을 마주하면 80퍼센트 이상이 실망을 안겨 주었다.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기분, 가격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는 생각이 오래도록 남는다. 맛있는 샌드위치도 많을 텐데 그런 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샌드위치에 마음을 주려다가도 “음, 저건 내가 집에서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겠다”는 마음이 우선이다.      


샌드위치 하나를 두고 이리도 분석을 하는 내가 재미있다. 다른 일에도 이리 신중하고 철저한지를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이십 대부터 그러했다. 대학교 시절 종종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는 친구가 있었다.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커피와 샌드위치로 한 끼를 대신했다. 그것도 한 조각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며 하나는 내게 건넸다. 이럴 때마다 그의 소식하는 습관에 감탄하면서도 부러웠다. 친구는 날씬했으며 개성 있는 스타일로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는 샌드위치를 든 친구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친구와 연락을 안 하고 지낸 지 벌써 십여 년이 지났다. 난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며 서울을 떠나게 되었다. 그동안 친구도 지방의 어느 도시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친구에게 연락할까 하다가도 그동안 소식 없이 지내다 갑자기 전화하는 일이 어색하고 망설여진다. 궁금함에 친구를 아는 선배에게 소식을 묻는 정도다. 딱 거기까지만 내 마음이 쓰인다.    


집으로 돌아오니 11시 반이다. 점심은 바게트가 주인공인 내 맘대로 샌드위치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당근이 들어온다. 당근을 채 썰어 살짝 올리브유에 볶았다. 갓 구워낸 바게트 사이에 이것을 넣고 치즈를 올리고, 발사믹 소스를 살짝 뿌려주었다. 얼른 한입 베어 물었다. 입에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온다. 고민하던 샌드위치는 성공이었다. 당근의 아삭 거림과 치즈의 고소함, 가장 훌륭한 건 바게트의 살아있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식감이었다.


점심에 샌드위치를 종종 만들어 먹었다. 그리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지도 않은 가끔 뭉게구름 떠다니듯 내 주위를 맴도는 메뉴였다. 어느 가게의 것보다 내가 만든 게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때론 맞고 때론 틀린 절반의 성공이 이어졌다. 단 두 가지 재료만으로도 흡족했다. 정신없이 지내던 며칠간의 일상에서 기분 좋은 휴식이었다. 몇 분 동안 행복했다. 다시 생각해 보았다. 동네 빵집 샌드위치를 거부하는 건 특별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부터 그건 내가 그리던 그림이 아니었다. 내가 기대하는 건 상상을 펼쳐 보이는, 나를 위한 내 손길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부엌에는 도마와 빵을 자른 칼, 프라이팬과 접시가 나를 기다린다. 설거지해야 할 시간이다. 샌드위치를 사다 먹었으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후회가 살짝 밀려온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기다린다. 한눈에 그림같이 다가와 봉지에 담겨 집으로 들고 오는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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