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Nov 16. 2021

모닝빵 재발견

 

막내가 좋아하는 모닝빵을 골랐다. 나란히 2개씩 5줄, 열 개의 빵이 가지런히 비닐봉지에 담겼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납작 호떡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조금 전 서점에서 산 큰아이의 기말고사 영어 문제집과 과학잡지 사이에 눌려버릴까 조심조심했다. 집 현관문을 열어 식탁 위에 장바구니가 놓일 때까지 지금의 모양이 변하지 않아야 한다. 찌그러진 모닝빵은 다 쓴 휴지 심처럼 마음이 안 간다.    

 

‘모닝빵’. 입안에서 이름을 발음하는 순간부터 남다르다. 아침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서인지 부드럽게 통통 튄다. 외국에서는 ‘디너롤’이나 ‘스위트 디너롤’로 불린다. 우리에게는 아침에 식사나 간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아서 ‘모닝빵’으로 알려졌다. 여행 시에 조식에는 언제나  모닝빵과 짝꿍인 버터, 미니 딸기잼은 빼놓을 수 없는 단골이다. 어릴 적 경양식 집에서 접시 위에 놓였던 것도 이 빵이다.     


손가락으로 쑥 누르면 구멍 날 것처럼 말랑말랑하다.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 부드러우면서도 적당히 달달 하고 부담이 없다. 심심할 때 과자 한 봉지를 뜯어서 먹듯, 모닝빵 한 개를 손에 들고 천천히 먹고 있으면 행복이 찾아온다. 

“고소하고 푹신푹신하잖아.”

막내가 유독 이 빵을 고집하는 이유다.     

모닝빵은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다. 무엇으로든 변신 가능하고 잘 소화해 낸다. 햄버거, 샌드위치, 때로는 작은 미니 핫도그까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텅 빈 캔버스를 채워 넣는 화가처럼 갖가지를 빵 속에 넣고 맛볼 수 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듯하면서도 그 자체로도 손색이 없는 것. 그래서 질리지 않는다.     


어느 겨울, 친구들과 함께했던 여행이 떠오른다. 서울과 제주, 광주라는 사는 곳이 다른 세 명이 부산 해운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난 3시간을 훌쩍 넘겨야 도착하기에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이른 시간, 넘어지지 않기 위해 종종걸음으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렇게 쉽지 않은 길이었고 점심때를 훌쩍 지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친구는 이미 와 있었다. 제주에서 출발한 친구는 전날 속이 탈이 난 탓에 응급실에 다녀와야 했고, 늦게 합류했다. 우리의 수다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아침이 되었다. 친구는 맛난 조식을 뒤로하면서 한 가지를 부탁했다.

“올 때 모닝빵 두세 개 갖다 줄래?”     


친구를 남겨두고 먹는 아침은 불편하고 미안했다. 친구를 위해 빵을 챙겨가야 했다. 어떻게 갖고 가야 할지 고민하다 용기를 내어 직원에게 부탁했다.

“친구가 몸이 안 좋아서 아침을 못 먹어서요. 모닝빵 몇 개 챙겨갈게요.”

“네, 그럼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막 구워진 게 나오거든요.”

친절한 미소와 함께 돌아온 답이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작은 봉투에 빵을 넉넉히 담고 내밀었다. 절로 고개가 숙어질 만큼 고마웠다.

“야 진짜 맛있다. 지금까지 먹었던 모닝빵 중에 최고야.”

고객을 위해 마음을 써 준 직원의 정성에, 갓 구워진 빵의 특별한 맛은 친구를 미소 짓게 했다.    

 

모닝빵이 가끔 마법을 부린다. 한 손에 쏙 들어가고도 남는 그 작은 것이 새롭게 태어나는 걸  경험한다. 지난 토요일이 그랬다. 휴일 아침은 왠지 밥을 멀리하고 싶다. 매일 먹는 것이라 지겹다는 생각이 우선이고, 그다음은 찬을 준비하는 일에서 벗어나고 싶은 까닭이다. 무엇을 할까 하다 아침부터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집에 있는 것들로 만들어진 ‘우리 집 햄버거’다. 패티는 홈쇼핑에서 주문해 냉동실에 둔 떡갈비로 대신하기로 하고,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나머지 재료도 하나씩 준비했다. 빵 위에 발사믹 식초를 살짝 뿌려준 다음 상추를 올리고 계란 프라이와 치즈, 떡갈비와 토마토를 올렸다. 예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햄버거 산이 완성되었다.  

    

가족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양손을 들어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가능한 입을 크게 벌리고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 옆으로 무엇이 떨어져도 집이어서 괜찮았다. 모닝빵으로 햄버거를 만들기는 처음이었는데 조금 과장을 더 해 유명한 수제버거집 맛이다. 빵집에 가면 식빵과 함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녀석이 이런 위대한 힘이 있을 줄 몰랐다. 모닝빵의 재발견이다.     

모닝빵은 통통하게 살 오른 아기 뺨 같다. 다른 것들이 첨가되지 않아서 어떤 것에도 잘 어울린다. 고루 잘 섞인다는 것은 그만큼 특징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림 없는 내공을 지녔다는 의미일 터다. 모닝빵은 기본이 탄탄한 빵의 강자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다 보면 종종 몰랐던 것들을 마주한다. 익숙한 그것이 다시 보일 때 참 기분이 좋다. 모닝빵이 그랬다. 매일 밥을 준비하는 시간이 싫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기본이 중요하지만 어렵다. 때로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스쳐 지나버리는지도 모르겠다. 내 앞에 있는 것들이 잘 보일 때, 일상의 즐거움과 여유를 발견한다. 모닝빵을 통해서 배워간다. 


작가의 이전글 힘을 뺀 샐러드 마음이 갑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