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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15. 2021

힘을 뺀 샐러드 마음이 갑니다

 

샐러드와 부쩍 가까워졌다. 종종 만들지만 요즘처럼 매일은 아니었다. 집에 있는 무엇이든 한 접시에 모아두면 괜찮은 모습이다. 버섯이 가장 편하고 손쉬운 재료다. 여기에 엄마가 보내준 우리 집 앞마당 단감도 한몫 거든다.      


언젠가는 오랜만에 로컬푸드 매장에서 루꼴라를 만났다. 마지막 한 봉지를 집어 들고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쉽게 만날 수 없기에 이것이 들어간 샐러드를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열무처럼 생겼지만 순하고 아삭한 식감이 좋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위해 샐러드를 만들었다.      

토요일에는 싱싱한 치커리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 역시 일요일 아침에 한 그릇의 샐러드로 탄생했다. 특별한 것이 모이지 않아도 괜찮다. 내 눈에 보이는 싱싱한 재료만 모아두면 그것만으로 멋진 한 그릇이 완성되었다.     


샐러드를 마음에 두게 된 건  몸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어른들이 종종 건네는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을 지나가는 소리로만 여겼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저 넘길 말이 아니었다. 몸의 회복 속도가 지난해와도 확연히 구분될 만큼 더디다. 조금만 신경을 쓰거나 무리하면 바로 반응한다. 몸을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음을 절로 느꼈다.      


운동을 적절히 해주고 잘 먹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실천은 녹록지 않은 일이다. 얼마나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시작해보기로 했다. 샐러드를 식탁에 올리다 보니 먹는 일 이전에 밥상에 활력이 생겼다.     


음식을 만드는 일이 날 것을 익히는 과정이 대부분이기에 제 빛깔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런 식탁에 초록색 싱싱한 채소가 오르니 다른 것들에도 생기를 불어넣는다. 가을 색을 담은 단감의 속살은 부드럽고 달콤하고, 버섯 특유의 고소함과 쫄깃함은 젓가락이 바빠지게 한다.    

  

소스는 가장 편하게 바로 할 수 있는 것으로 한다.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매실이 중심이다. 가끔은 간장이나 참기름, 깨소금을 넣는다. 바로 가장 가까이에 별 힘 안 들이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달콤하면서도 향기로운 맛을 원할 땐 유자청을 불러온다.      


신경 쓸 일이 없는 한 그릇이니 무심결에 하게 된다.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야지 하는 머릿속 복잡한 생각이 없으니 다른 반찬을 하면서도 순식간에 완성이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그리 사랑받지 못한다. 남편이 나와 함께 샐러드를 즐긴다.    

 

무엇이든 힘이 많이 들어가면 오래가기 힘들다. 음식은 정성이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랐다. 만드는 과정부터 그릇에 담는 순간까지 무엇 하나도 대충 하면 제맛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아직도 이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편하게 할 수 있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부턴가 부담 없는 게 좋다. 기꺼이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내 일이든 타인의 것이든 그러해야 습관으로 굳어지고, 재미있다. 매일 먹는 음식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특별한 날을 위한 성대한 식탁이 아니라면 그저 적당히 하는 것도 좋다. 맛있게 먹기 위해 하는 일인데 그 과정에 전력을 다해버리면 본 무대에서는 녹초가 되어 제맛을 경험하지 못한다. 요리사도 함께한 이들도 평안한 밥상을 위해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샐러드는 무심코 툭툭 접시에 담아도 여러 가지가 함께 어우러져 무지개 고운 빛깔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메뉴가 아닌가 싶다. 샐러드를 먹고 나면 왠지 건강해진 기분이다. 몸은 가벼워지고 마음은 뿌듯하다. 내일은 고구마와 사과, 아몬드, 감을 넣고 나만의 샐러드를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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