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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Nov 22. 2021

무가 전하는 소박한 기쁨

  

과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 손에는 그날 찬거리가 함께한다. 종종 무가 몇 개씩 들렸다. 검은흙이 곳곳에 묻었고 엄마는 무청을 손잡이 삼아서 들고 왔다. 그날 저녁은 뭇국이나 무나물, 무가 들어간 음식이 꼭 하나씩은 밥상 위에 올랐다.     


무는 부엌 가마솥이나 도마 옆에 반쯤 남은 채로 언제나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황금색이던 늦가을에는  무가 밭 귀퉁이에서 쑥쑥 커갔다. 흔해서 별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 않았다. 이 시절에는 무가 들어간 국이 시원하다는 부모님의 얘기에 공감할 수 없었다.      


무가 좋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의 진가를 알기 시작한 건 올가을부터다. 무만 가득 썰어놓은 청국장의 부드러움에 빠져들었다. 아삭함이 일품인 무김치도 이제야 그 맛을 알아가는 듯하다. 무가 없으면 빨리 마트에 가서 사 와야 할 것처럼 급해진다.    

 

일요일, 종일 미세먼지로 창밖 세상은 답답하다. 산책을 다녀오고 싶다가도 몸을 힘들게 하는 일 같아서 망설이다 집에 머물렀다. 오후 2시를 넘기면서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 금세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잔뜩 구름이 끼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쉬고 싶었다.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무가 생각났다.     

종일 집에 뒹굴던 막내와 함께 동네 마트에 갔다. 입구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튼실한 다발 무를 7800원을 주고 샀다. 반투명 파란 봉지에 그것을 담고 오는데 한번 쉬어야 할 만큼 제법 무겁다. 그만큼 튼튼한 무라는 증거다.    

  

도마에 내 팔뚝만 한 무를 놓고 썰다가 생각했다. 무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건 나이 듦과 연관 있었다. 이제는 내가 뭇국의 깊은 맛을 알던 부모님의 나이가 되었다. 작년까지는 중년이라는 단어가 어색했는데 올해부터는 자연스럽다.     


우선 생채를 만들었다. 무에 묻은 황토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낸 다음 채 썰었다. 엄마가 알려 준 대로 절이지 않고 오목한 볼에 멸치액젓과 고춧가루, 마늘, 깨소금, 풋고추, 매실청을 넣고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조금 더해 버무렸다. 고소하면서도 아삭한 생채가 완성되었다.    

  

무가 가득한 된장찌개도 준비했다. 무를 사각 썰고 소고기와 함께 참기름 한 숟가락을 넣어 볶았다. 무에서 물이 나오기 시작하고 고기가 익어갈 무렵이면 멸치 다시마 육수를 부어준다. 한소끔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된장과 마늘, 두부를 넣는다. 고소하면서도 달큼한 향이 퍼져나가면 다 되어간다는 표시다. 마지막으로 고춧가루와 송송 썬 대파를 넣어주면 얼큰한 국물이 완성되었다.   

  

시계가 6시 10분을 가리켰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모락모락 김 나는 찌개와 생채, 투톱 체제다. 고기를 듬뿍 넣은 탓에 아이들도 맛있게 먹었다. 겨울 무는 보약이라는 얘기를 이때 즈음이면 종종 듣는다. 그만큼 우리 몸에 여러 가지로 좋다는 의미다. 물컹한 맛이 이상했고, 언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라 마음을 주지 않았다. 이제 다시 들여다보니 쓰임새가 참 많은 먹거리다.      


어릴 때는 모르다 시간이 지나야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 몰랐던 맛을 발견하는 일은 행복한 경험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에서 새로움을 느낀다. 원래 그러했는데 관심이 없었고, 그저 지나치다 어느 날 문득 가슴으로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이런 날에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루가 새롭다. 더불어 작은 에너지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것을 해 볼 힘이 생긴다.     

밥하는 일은 내가 하는 가장 꾸준한 작업이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기에 다른 생각이 끼어들기가 쉽지 않다. 배추와 무, 당근, 호박, 버섯 등 한 끼를 위해 손질하고 볶거나 끓여 그릇에 담아낸다. 시간에 쫓기고 빨리 끝내고 싶은 생각에 각각의 재료에 그리 마음을 두지 못했다.      


무가 문득 특별한 기쁨을 전한다. 아버지는 무를 채 썰어 넣고 팥고물을 올린 시루떡을 참 좋아했다. 특히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몇 년 전에는 무 넣은 백설기를 만들었는데 촉촉한 느낌이 일품이었다.  

    

시간과 함께 살아간다는 건 한편으론 좋은 일이다. 익숙한 것들의 참모습을 알게 되고 이런 것들이 모여 소박한 아름다움이 피어난다. 무를 통해 이런 생각이 멀리까지 머물렀다. 낯선 곳에서 찾으려 힘들이지 말고,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을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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