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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28. 2021

액자 보며 마음먹기

   

집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좋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자마자 알폰스 무하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몇 발짝을 움직이면 박수근의 소금장수가 있다. 둘 다 몇 년 전 전시회에 갔다가 사거나 얻은 것이었다.     


이들은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었다. 가끔 정리할 때마다 그것을 제자리에 두어야지 하고 마음먹다가도 그냥 지났다. 처음 생각은 멋진 액자에 끼워서 그것이 지닌 가치를 끌어올리고 싶었다. 마땅한 표구사도 주위에 없다. 또 알아보니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해서 살짝 부담되었고 자꾸 미뤘다.    

 

여러 가지 상품을 검색하는 일을 취미 삼아 하던 중에 이케아 사이트에 들어가게 되었다. 액자를 살펴보니 저렴하면서도 괜찮아 보이는 게 눈에 띄었다. 처음 마음처럼 대단한 가격을 지급할 생각은 없었기에 가성비를 고려해서 골랐다.    

 

일주일이 지나고 집에 엄청난 크기의 종이 상자가 배달되었다. 문 앞에 높여 있는 것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저게 뭐지 하고 집으로 가져와 뜯어보니 액자 두 개였다. 요즘 말하는 과잉포장인지, 제품의 손상을 막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인지는 판단할 근거가 없으니 뒤로 미뤄야겠다.      

검정과 화이트의 액자 두 개를 꺼내어 그토록 기다리던 그림을 안에 넣었다. 박수근의 그림은 크기에 맞춰야 했기에 포스터를 소개하는 글자가 들어간 공간들은 과감히 잘라내었다. 몇십 분 동분서주한 끝에 두 개의 액자에 그림이 들어갔다.     


돌돌 말아 있던 작품들이 세상 빛을 보니 다시 살아났다. 매번 볼 때마다 다른 얘기들을 건넨다. 그토록 멋진 프레임에 집착했지만 결국은 내가 처한 만큼만 실행해 옮기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내가 이토록 액자에 마음을 두었던 이유는 한참 전에 방송됐던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관련 있다. 한국인이면서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인사를 다루는 것이었는데 미국에서 사는 어느 부부가 나왔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성공을 거둔 이들이었지만 벽에 걸린 그림은 달력의 명화를 오려서 액자에 넣는다고 했다.     


비록 인쇄된 그림이었지만 돋보이는 고풍스러운 액자 덕에 스쳐 지나가면 진품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그들의 소박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서 클로즈업했던 것 같다. 그 장면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아, 달력의 그림도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서 명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구나.”    

  

지금 생각해보니 그들의 눈높이에서 겸손한 삶의 방식일지 몰라도 내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무리해서 하려니 자꾸 미뤄지고 그렇게 몇 년을 흘려보냈다. 그러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액자를 사서 걸어두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너무 힘이 들어가는 일들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곁들여진 후에야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 그건 아마도 영영 어렵다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바로 해 보는 것. 이것은 지금 내 생활을 빛나게 하는 것들인 듯하다.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해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갈 때마다 아트숍에 들러 관련 전시 작품이 인쇄된 작은 엽서를 사 왔다. 원작의 감동이 내게 오래도록 머무르도록 하는 최선의 행동이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 엽서들을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에 붙여둔다. 그러고는 지날 때마다 한 번씩 살피고 그 전시회에 들렀던 순간들을 되뇐다. 그러면 현재와 과거 어느 시점에 머물러 있는 나를 동시에 만난다.   

   

알폰스 무하의 전시는 겨울이 깊어갈 즈음이었다. 아버지의 제삿날이었다.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이른 시간에 출발했기에 7시 30분 무렵 서울에 도착했고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에서 잠깐 책을 보고 난 후에 파리크라상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전시회가 오픈하자마자 갤러리로 들어서고는 작품들을 살폈다. 큰아이가 가고 싶다고 했던 것이었다. 처음 알게 된 작가였다. 집으로 돌아와 그의 삶에 대해서 더 살펴보게 되었다.     

박수근의 소금장수 역시 정읍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전시회 포스터였다. 학생 때 미술책에서나 봤음 직한 대가들의 작품 앞에서 숨죽이게 되었다. 전시회 도록은 마련되지 않았고, 포스터라도 얻고 싶은 마음에 알아보니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실망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마지막 남은 것이라며 관계자분이 한 장을 전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내 기분에 따라 작품이 다르게 다가온다. 기분 좋은 날은 나를 여유 있게 바라봐 주는 그들의 시선에 마음이 설레고, 울적한 날에는 나와 닮아 있는 듯한 그들을 본다.     

 

내 하루는 결국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과정인지 모르겠다. 그것이 매일 먹는 음식이든, 오랫동안 해야 할 일이든, 우리 집을 빛나게 하는 초록 식물들이든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문득 알게 되는 건 항상 멀리서 찾으려 하기에 시간이 걸리고 결국에는 체념하거나 그저 받아들임이라는 단어로 포장한 채 살아간다는 것. 아직도 몇 점의 작품이 남아있다. 그것을 다시 액자 속으로 담는 날을 기대해 본다. 묵혀두었던 일을 마무리하며 내가 바라는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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