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오일 파스타

내 맘대로 세상, 내 부엌에서

by 오진미



십여 시간을 달려왔을 노랗고 가느다란 파스타 면이다. 누구나 열광하는 파스타 요리가 오늘 점심이다. 태풍에 대비하라는 신호처럼 바람이 심상치 않다.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닌다. 더운 열기와 습기를 적당히 머금은 바람이 정신을 몽롱하게 한다.

“오늘 점심은 뭘로 할까?”

“볶음면? 아님 오일 파스타?”

“쌀국수 향이 오늘은 좀 그러네. 오일 파스타로 낙점.”

큰 애와 점심 메뉴를 고민하다 파스타로 결정했다.

오늘 점심 한 끼 내 맘대로 오일 파스타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아이들, 먹는 일이 최대의 관심사다. 아침은 아무거나 차려주는 대로 먹지만 점심만큼은 그들을 위한 식탁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에 못 가고 밖에서 맘껏 뛰놀지 못하는 일상이니 맛난 음식으로 조금의 위로를 건네주고 싶은 마음이다.


파스타, 이탈리아식 면 요리를 총칭하는 말로 통한다. 모양, 재료와 조리 방식에 따라 부르는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마트에만 가도 소스가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일품요리다. 익숙해졌지만 익숙하지 않은 이국의 맛을 쉽게 느낄 수 있어 가끔 만들어 먹는다.


처음 이 요리를 알았던 게 언제쯤일까 기억의 실타래를 풀어 보았다. 아마 초등학교 시절 주말드라마의 한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 우아하게 차려입은 자매가 원탁의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다. 포크와 스푼을 적절하게 사용하며 먹는 모습이 신기했다. 우선 맛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다음은 어떤 사람들이 저런 음식을 먹는지가 알고 싶었다. 음식 하나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이 뻗어 나갔다. 조금 포장해 본다면 어린 나이에 음식의 사회학에 대해서도 고민했던 것 같다. 먹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본능적인 호기심이었다.


그 후 20여 년이 지나고 어른이 되어 보니 파스타가 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이선균과 공효진이 나와 히트 쳤던 ‘파스타’라는 드라마가 우선 생각난다. 그 후 파스타는 요리를 주제로 한 드라마에는 어김없이 나오는 소재가 되었다. 장인의 손길로 소스 하나에서부터 본래의 맛을 따라가는 요리사의 열정과 노력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에피소드가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았다. 드라마 영상 속에서 가공된 이미지들이 음식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지 않았나 싶다. 마치 내 얘기인 것처럼 말이다.


집보다는 가끔 밖에서 파스타를 먹고 싶다. 언제나 불 앞에서 삼시세끼를 차리는 일에 지친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여유 때문이다.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먹을 때면 천천히가 절로 된다. 후루륵 국수면을 빨아들이듯 하는 속도전보다는 적당한 양을 스푼에 돌돌 말아서 얘기하며 시간을 보낸다. 공간이 주는 특별함도 한몫한다. 식물을 식당 안으로 들여놓고 분위기 있는 그림과 음악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깐이지만 공간과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간다. 그야말로 우아하게 먹는 순간이다.


태풍 전야의 점심인 파스타는 이름하여 ‘내 맘대로 오일 파스타’다. 제대로 된 요리법을 배운 적도 없고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만드는 게 내 요리의 원칙이다. 그래서 맛도 정해지지 않았다. 가끔 기대를 저버리기도 하지만 평균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파스타면과 올리브유, 마늘, 새우젓 또는 액젓, 새우만 있으면 된다. 새우가 없다면 마늘과 올리브유만 있어도 근사한 요리가 되니 걱정할 필요 없다.


파스타는 면 삶기가 중요하다. 면 포장 비닐 뒷면에 한국인에게 적당한 시간을 알려주는 친절한 설명서를 본 적이 있다. 난 대략 9~10분 정도 삶는다. 아주 꼬들꼬들하기보다는 잘 익은 물컹하면서도 무르지 않은 맛을 선호하는 이유다. 좀 더 깊은 맛을 원한다면 면수를 좀 남겨두었다가 한 국자 정도 소스에 넣어주면 촉촉하면서도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 끓는 물에 파스타면을 9~10분 삶는다

- 오일에 편으로 썬 마늘을 넣고 볶다가 새우를 넣고 3분 정도 익힌다.

- 소스에 면 수 한 국자를 넣어주고 액젓으로 간을 한 다음 면을 넣고 잠깐 볶아낸다.


집에 굴러다니는 바게트나 식빵이 있다면 살짝 구워서 함께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올리브 소스에 빵을 찍어 먹으면 탄수화물이 주는 적절한 포만감과 마늘의 알싸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기분 좋은 한 끼다.


“밥 잘해주는 엄마”

우리 집 애들에게 엄마에 대해 질문하면 동시에 합창하듯 나오는 답이다. 어느 곳에 가든 음식을 보면 재료와 과정을 상상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런 습관이 쌓이다 보니 어떤 요리든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의무감으로 무거운 몸을 움직인다. 그럼에도 같은 일을 반복하게 되는 건 잠깐의 노력이 잘 통하기 때문이다. 내 맘대로 통하는 나만의 공간인 부엌에서 땀 흘려본다. 오늘의 점심 오일 파스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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