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청소기 시대 내 맘대로 청소
빗자루를 들었다. 손에 부드럽게 안긴다. 무거운 청소기를 낑낑대며 들고 와 플러그를 꽂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다. 여기에 윙 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집안을 가득 채우는 것도 불편하다. 김치냉장고 옆에 다소곳하게 서 있는 빗자루가 보였다.
빗자루로 빵 부스러기며 먼지들을 몸을 숙여 살살 쓸어 모은다. 어느새 주변이 깨끗해졌다. 항상 서 있는 자세로 청소를 했다. 몸을 낮추고 앉아서 구석구석을 살피게 된다. 몰랐던 먼지가 하나씩 모이더니 헤아리기 어렵다. 식탁 아래만 청소하려 했던 당초 계획이 바뀌고 전면전이다. 거실 곳곳을 빗자루로 쓸었다.
언제부턴가 청소는 빨리 끝내 버리고 싶은 숙제 같았다. 급한 마음에 청소기를 빠른 속도로 휘둘렀다. 여기저기 끌고 다니며 단숨에 해치웠다. 그런데 작은 빗자루를 들고 하는 일이라 시간도 걸리고 몸을 더 움직여야 했다. 그럼에도 마음이 가볍다. 소음도 없다. 내가 원하는 속도로 조용히 움직이면 끝이다.
무선청소기 전성시대다. 초고속으로 어디든지 자유롭게 움직여 단시간에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얼마 전부터 청소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다 집안 물품을 파는 가게에서 우연히 귀여운 빗자루를 발견했다. 부드러운 수수로 만든 빗자루에 마음을 빼앗겼다. 오천 원도 안 되는 착한 가격이다.
빗자루는 옛날 물건으로 여겨진다. 어린 시절 단골 청소 도구였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멀어졌다. 새 학년에 올라가는 초등생들의 청소 도구로 플라스틱 미니 빗자루를 준비물로 챙겨갈 뿐이다. 20여 년은 족히 지나 오랜만에 마주한 빗자루에 정이 갔다. 먼 나라 베트남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가끔 TV를 통해서 봤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이 빗자루를 만든 이 역시 한 가정의 경제를 꾸리는 가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몸을 열심히 움직여 일한 만큼 대가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상상이 너무 과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집에 들고 와서는 며칠 잊고 있었다. 그러다 빗자루로 청소하기로 마음먹었다. 30여 년 전 긴 마루를 빗자루로 쓸던 기억이 살아난다. 아버지는 집에서 마냥 퍼져 있는 채로 지내는 것을 마뜩잖게 여겼다. 초등학교를 갓 들어갔을 때부터 놀다가도 어스름이 질 무렵에는 바빠진다. 밭에 갔던 부모님이 돌아오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몸이 알아챘다.
이제부터 그야말로 청소 전쟁이다. 어린아이가 큰 빗자루로 긴 마루를 쓸어 내려간다. 그러다 한쪽만 열심히 하고 다른 쪽은 먼지가 그대로다. 냉큼 달려가 빗자루질한다. 언니 방, 오빠 방 안방에 이어 찬방까지 몸이 몇 개는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으로 신발 벗는 통로는 대 빗자루를 갖고 쓸었다. 칭찬받은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때부터 청소에는 별로 소질이 없었나 보다.
손에 잡기가 버거울 만큼 크게 느껴졌던 빗자루가 장난감처럼 작다. 빗자루로 쓸다 보니 청소기로 단숨에 밀던 때와는 다른 감정이 스친다. 안 보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먼지가 일 순위, 다음으로 우리 가족들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낸 마루의 상처들이다. 나무 마루 곳곳이 쓸려 상처 나고 파였다. 어느 곳은 깊어 임시방편으로 투명테이프로 붙여놓은 자국도 선명하다. 집안을 빗자루와 누비다 보니 아이들이 서너 살 무렵 벽에 그린 그림도 보인다.
빗자루는 태생이 자연이다. 갈대, 수수나 대나무 등 여러 가지 재료들을 엮어 묶어 집 안팎을 정리하는 데 사용했다. 집 주위를 둘러쌌던 싸리나무 역시 빗자루의 재료가 되었다. 밭에서 자란 수수 역시 열매는 곡식으로 쓰고 줄기는 빗자루로 사용했으니 훌륭한 활용법이다. 자연에서 났으니 세월이 흐르면 당연히 썩고 닳아지기 마련이었다.
산업화의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파고든 플라스틱 빗자루가 기세 등등 위엄을 자랑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는 청소기가 나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먼지 하나 남기지 않는 탁월한 성능을 자랑한다. 빗자루를 들고 청소하기엔 모두가 너무 바쁘다. 그래서 빗자루가 추억 속에 갇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당분간은 빗자루에 빠질듯하다. 청소기가 주는 말끔함을 잠시 거부하고 청소하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빗자루가 내 손에서 여기저기 멀리하고픈 녀석들을 정리해 주는 순간이 시원하고 좋다. 언제든지 어디로 달려가 무엇을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에서 벗어나 몸을 낮추고 편한 자세로 움직이니 이것 자체가 마음 다스림이다. 저기, 라면 부스러기가 보인다. 이때 가장 좋은 건 빗자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