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은 위대하다

코로나로 내 일상을 돌아보니

by 오진미



냉장고를 열었다. 반찬통과 음료, 잼과 치즈, 우유가 보인다. 드문드문 빈 공간이 있지만 그래도 꽤 차 있는 상태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데 마땅히 손이 가는 게 없다. 그저 먹다 남은 것들을 보관한 저장 그릇이 대부분이다. 야채칸을 뒤졌지만 요즘 단골 메뉴로 올라갔던 호박과 가지가 전부다. 휴대폰에서는 계속 재난문자가 울린다. 동네 마트에 가는 것도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노트북을 열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에 온라인 장보기를 했다. 대형마트가 아닌 까닭에 온라인을 통해 장 볼 수 있는 종류도 제한되었다. 급한 대로 달걀과 닭고기 필수품인 라면, 양파와 조금의 과자를 주문했다. 당일 배송은 마감이라 내일 오전 10시가 돼서야 온다는 메시지가 뜬다. 한편으로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라도 해서 냉장고를 채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 톡 려다 목소리라도 들어야 할 것 같아서.”

“음… 그냥 집에서 지내지요. 삼시세끼 해주고.”

“나도 당분간은 누구를 만나지 않기로 했어. 내가 또는 상대방이 서로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조심해야지.”

간단한 일상을 나누고 전화를 끊었다. 마음속에서 ‘언니 한번 차 안에서라도 볼까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우리 집 앞까지 바이러스가 침입해 있다는 말처럼 위기의 시간이기에 용기가 안 났다. 언니 지인 남편의 회사 동료도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고 했다. 이젠 정말 뉴스 속 얘기가 아닌가 보다.


어릴 때 친구들과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물으면 정답인 양 하는 말이 기억난다.

“뭐 특별한 거 없어. 평범하게 사는 거 그거면 될 것 같아.”

평범이 모두에게 가능한 일인 것처럼 생각됐던 시절이었다. 과연 평범의 기준은 무엇일까?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의 일상을 놓고 생각해 보면 우선 어디를 마음껏 갈 수 있는 이동의 자유가 생각난다. 그다음은 원하는 일터 혹은 지금 현재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일을 하며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하고, 가끔은 나를 위한 선물을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싶다. 물론 요즘 평범의 기준은 그 이상의 것들로 그려져 현실과 이상 사이를 헤매는 일도 허다하지만 말이다.


불과 올 초만 해도 그저 예삿일이라고 생각됐던 일들이 멈춰 버렸다. 가끔 만나 수다를 떨면서 마음속 고민 덩어리들을 녹여내던 친구를 만나지 못한 지 벌써 몇 달째다. 동네 미용실 가기도 주변 코로나 상황을 살펴야 할 만큼 조심스럽다. 미용실 원장님 역시 KF94 마스크를 쓰고 있다. 먼저 머리 손질을 하는 이가 있다면 괜스레 신경 쓰인다. 저 사람은 어디를 다녀왔을까 하는 걱정이 마음에 순간 자리 잡는다.


지난주부터 대형마트만 해오던 체온 측정을 동네 마트에서도 시작했다. 마트에서 머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메모는 필수다. 후다닥 카트에 넣고 집에 오면 30분도 안 걸릴 정도의 속도전이다. 가끔 갔던 작은 책방 가기도 멈추었다. 동네 도서관도 간헐적으로 문을 열더니 며칠 전부터 다시 문을 닫았다. 사람 하나 보이지 않고 정적마저 흐르는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갔던 어느 날은 오히려 내가 직원들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연출될 정도였다. 모든 게 부자연스럽다.


아침 일찍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동네 산책을 다녀왔다. 마스크를 쓰는 게 너무 답답하다. 앞뒤 살피고 마스크를 벗었다. 흙냄새며 밤새 내린 소나기에 젖은 풀향기가 올라온다. 그것도 잠시다. 저 멀리 노년의 부부가 반려견과 함께 걸어온다. 손에 들고 있던 마스크를 다시 얼굴에 꼭 밀착시킨다.

바이러스의 공포가 모든 곳을 삼켜버린다. 일상을 살아가는 일도 때로는 버거울 때가 많은데 여기에 보이진 않지만 정말 무서운 녀석이 가세하니 마음을 잘 두고 살기가 어렵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카피가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잠시 머뭇거릴 수도 있지만 쉬고 싶다는 생각에 당장 현관문을 열고 나설 각오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코로나의 위협에 맞설 용기가 없다.


다시 평범을 생각해 본다.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고, 예사로움이 평범이라고 한다. 그동안 몰랐었나 보다. 그 일상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노력하고 만들었기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 큰 욕심이 아니라고 여겼었다. 사실은 평범이라는 포장지로 싸맨 욕망의 것들은 아니었을까 싶다.


내 두 발로 걸어가 동네 카페에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 이른 아침 텃밭에서 키운 호박과 열무를 파는 할머니 노점에서 싱싱한 야채를 사고, 공원을 편안히 걸으며 고민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 불안이 미래를 생각하는 큰 걱정이라면 지금은 오늘을 살아가는 일도 간단치 않다. 일상에서 반복되었던 일들은 아마 삶을 살아가려는 각자의 마음이 모여서 이루었던 큰 산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건 평범한 게 아니었다. 소중하고 귀한 잊고 있던 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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