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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02. 2022


공간을 이루는 것에 대해

   

새해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당연한 일처럼 떡국을 먹고, 가족들에게 전화를 했다. 모두가 한결같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주고받고서야 오롯이 새해가 시작됐음을 실감한다. 지난주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은 토요일이었지만 해가 바뀌었다는 건 큰 상징이다. 여행을 갔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밖으로 나가 차 한잔을 하기로 했다. 항상 사람이 가장 없는 시간을 활용하는 우리의 법칙에 따라 오전 11시에 문을 여는 카페로 갔다.      


두 번째 손님이 되었다. 맨 처음인가 싶었는데 들어가는 순간 빵 봉지를 들고 나오는 이의 얼굴이 보인다. 번호표에도 숫자 2가 쓰여 있다. 며칠 전 카페를 검색하는 중에 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빵과 음료를 파는 베이커리 카페였다. 사진 속에서는 클래식한 분위기와 고요한 느낌이 끌렸다.     


들어서는 순간 뭔지 모를 따뜻한 향기에 끌린다. 빵 굽는 냄새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나오는 차향 같다. 메뉴를 보는데 뱅쇼나 생강, 콩이 들어간 음료가 보인다. 이런 것들을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재료들이 어우러져 나오는 게 아닐까 싶었다.     


가로로 긴 형태를 취한 공간이었다. 사방으로 적당히 창이 나 있다. 한편에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일찍 구운 빵이 진열되어 있다. 둥근 원탁과 사각 테이블, 혼자 앉아도 어색하지 않은 1인석까지 다양한 형태의 자리 구성이다.   

  

얼핏 보면 유럽의 어느 시골 가정의 분위기 같은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곳을 가본 적이 없으니 자신 있게 말할 순 없다. EBS 세계 테마 기행에서 봤음직한 그림들이 눈에 들어오기에 미뤄 짐작해 볼 뿐이다. 무심코 툭 하고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것 같지만 나름의 질서 속에서 어울림을 발견한다. 의자 또한 모두 같은 스타일이 아니고, 같은 자리에서도 다른 여러 디자인이 놓였다.     


모두가 나무로 된 것들이다. 푹신한 방석이 깔려 차가운 나무의 느낌을 달랜다. 둥근 원탁에 앉은 순간 포근함이 참 좋았다. 안에서 창을 통해 바라본 밖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분명 내가 몇 분 전에 걸어 들어왔던 곳이 달리 보였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그곳에 있는 동안 포근함이 오래도록 머물렀다. 그것만으로도 편안해서 긴장이나 걱정들이 사라졌다.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는 향기들이 아주 가벼운 안개가 내 발밑에서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한 참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 내부의 벽과 천장 등 곳곳이 편백나무로 덮여 있었다. 그런 까닭에 여러 가지 차의 특유한 색에 나무의 향기가 뒤섞이어 특별한 냄새를 만들고 있었다. 한 가지로 정의 내리기 힘든 은은하고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향기, 공기와 함께 어우러져 내 마음을 열어주었다.      


온 가족이 한 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나누었다. 남편부터 아이들까지 모두가 원하는 것들을 얘기했다. 이 시기가 되면 당연한 대화지만 이곳에서의 얘기는 더 귀 기울이게 되었다. 천천히 듣고 그들의 이야기에 담긴 생각과 고민을 조금은 그려보게 되었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과 고요한 마을 풍경 안에서 오롯이 서로의 미래에 대해 잘 들어보는 시간이었다.    

 

난 소이라떼를 마셨다. 직접 만든 두유에 커피가 들어간 것이라 했는데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커피 맛이었다. 한 잔을 충분히 경험했다. 이 카페의 향기는 후각을 통해서만 전해져 오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혼자 살며시 던졌다. 그것에 대한 답변은 사람과의 어울림인 듯했다.     


어떤 공간이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은 빵을 만들고 나무집을 지어 사람들을 맞이하는 주인의 스타일이 많이 입혀진 듯했다. 유독 베이커리 카페를 좋아한다. 빵을 먹지 않더라도 그것이 함께할 수 있고,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다. 갈색으로 잘 구워진 빵과 저마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커피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바게트와 치아바타, 버터를 잔뜩 발라 구운 바게트 토스트까지 그리 많지 않지만 마음을 앗아간다. 사랑스럽다.     

향기를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삶의 생각을 옮겨 놓은 여러 모습들을  공간 안에서 펼쳐 보이는 일이 아닐까? 은은한 불빛 아래서 소박한 듯하면서도 가지런히 놓인 소품들도 정겹다. 공간은 그곳을 사는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다. 가끔 내 생각과 비슷한 분위기를 만나면 큰 행운을 만난 것 같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공간을 마주했다. 담양 카페 트로와지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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