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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03. 2022

겨울 초록을 먹는 기쁨, 매생이

   

겨울에는 초록에 대한 마음이 더 커진다. 춥다는 이유로 식물들을 집안으로 들여놓고 밥상에도 초록이 오른다.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채소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기에 웬만한 것들은 계절을 잊고 지낸다. 그럼에도 겨울에 주인공인 이들이 있다.     


매생이. 처음 들었을 땐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것을 사서 식탁에 올리는 일이 잦아지니 이제는 이름도 정겹다. 매생이는 남해안에서 고루 자란다고 한다. 시장 좌판에 이것이 한재기씩 가지런히 올려 있을 무렵이면 겨울이라는 소리다. 따뜻하다고 겨울이 아니라고 목소리를 내다가도 매생이가 보이면 계절의 변화를 받아들인다.     


워킹맘으로 살던 시절에는 매생이를 몰랐다. 서울에서 살던 그때는 대형마트를 다녔고, 여유 있게 장을 본 적도 없었다. 항상 빨리빨리를 외치는 생활이었다. 주부라는 타이틀을 달고부터는 주변의 것들을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면 더욱 그랬다. 텃밭에서 농사지은 것들을 수레에 담고 온 할머니 가게에서 딱 그 시기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을 만난다. 못생기고 생채기가 많이 난 나물에서부터 이름 모를 것들이 가득하다. 매생이 역시 노점 어느 할머니의 가게에서 처음 만났다. 얼핏 보기에도 물컹할 것 같은 느낌이 전해왔다. 파래는 아닌 것 같은데 통통하게 덩어리 진 모습이 정체가 궁금하면서도 가까이 가기 싫었다.

     

“겨울에는 매생이가 좋아. 굴 넣고 국 끓여봐 얼마나 시원한데.”

이사 와서 알게 된 위층 언니가 언젠가 지나는 말로 건넸다. 동네 중심에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는 노점을 지나다 보면 매생이를 사는 이들을 종종 만났다.

“와 매생이가 나왔구나. 벌써 그런 때가 됐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주인과 한 마디씩 건네며 매생이가 든 검정 봉지를 들고 사라졌다.  

   

부엌의 고수들이 많이 찾는다는 건 분명 맛있다는 확실한 신호였다. 나도 매생이 한재기를 샀다. 어떻게 씻어야 할지를 몰라 인터넷을 뒤졌고, 몇 번을 하다 보니 손에 익었다. 특별한 방법은 없다. 워낙 맑은 물에 자라니 흐르는 물에 몇 번 헹궈주는 느낌으로 살피면 된다.     

새해를 하루 남겨둔 날이었다. 단골 로컬푸드 매장에 가니 싱싱한 매생이가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을 기다린다. 스티로폼 위에 살포시 올라와 포장된 그것을 하나 샀다. 굴도 특별 할인한다는 광고에 한 봉지 더했다.     

그날 저녁에 먹으려고 하다가 다른 날로 넘겼다. 해가 바뀌고 하루가 지났다. 전날에는 매생이 굴국으로 따듯한 온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이걸 좋아하지 않는다. 국물만이라도 맛보면 좋으련만 언제나 그냥 지난다. 

“와 시원하다. 겨울에는 정말 이걸 꼭 먹어야 해.”

남편과 한 마디씩 나눈다. 우리만 아는 겨울의 맛이었다.     


일요일 점심에는 매일 먹는 밥은 지겨웠다. 매생이 전을 만들었다. 노란 속 배추와 당근을 채 썰고 남은 굴도 조금 넣었다. 여기에 밀가루를 조금 넣고 계란도 하나 더했다. 엄마가 보내준 우리 집 동백기름과 함께 전이 익어간다. 다른 때 같으면 기름진 냄새에 조금은 불편해할 만도 하지만 그런 게 없다. 매생이의 특별함이 빛을 보는 순간이다.     


바다의 것은 대부분 깔끔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매생이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기름과 함께 어우러져도 자신만의 색깔을 잃지 않는다.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아 매생이구나. 매생이는 부드럽고, 바다의 향이 있어”하고 생각할 겨를 없이 순식간에 몸속으로 사라진다.     


“매생이는 짧게 설명할 수 있는 맛이 없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남편에게 말을 건넸지만 별 반응이 없다. 동의한다는 것으로 여길뿐이다. 이 말을 다시 비틀어 보면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진한 향기를 가지고 다른 것들을 압도해 존재가치가 빛날 것 같지만 매생이와 정반대다. 모든 걸 품어주어서 대단하다.  

   

물컹물컹하고 아주 가는 실 같은 게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의 가닥이 모여서 한재기를 이룬다. 끓는 물에서도, 지글거리는 기름에서도 제 빛깔을 잃지 않는다. 오히려 색이 진해질 뿐이다. 맛에서는 조화로움을 돋보이게 하고 눈으로는 “내가 매생이야, 누가 옆에 있어도 난 매생이거든”하고 말하는 것 같다. 함께 하지만 자신을 잃지 않는 매생이다.      

겨울날은 한가롭다. 한편으론 한 해를 잘 보내기 위한 준비기라는 생각에 마음이 급하다. 아이들이 방학하니 난 개학이다. “뭐가 달라?”하고 물으면 특별히 할 말은 없다. 분명한 건 삼시세끼 밥하는 일만으로도 정신없는 때라는 것. 몸이 바쁘면 시간은 나비처럼 훌쩍 날아가 버린다. 나를 위해 정신을 꼭 붙들어야 한다. 매생이가 어떤 요리에서도 매생이로 우뚝 서는 것처럼 말이다.     


겨울에 초록을 먹는다는 건 잘살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따라가는 일이 아닌가 싶다. 초록은 곧 자연이기에 이것에 몸과 마음을 기대어 힘을 내고 건강해지고 싶다. 매생이 전을 남편과 부지런히 먹었다. 남편에게  일요일에 이처럼 만들어주는 이가 흔치 않을 거라는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쉼 없이 젓가락을 움직이던 남편의 얼굴에도 여유가 흐른다. 계절을 먹는 일은 관계를 살찌우는 것 같다. 맛있는 한 접시를 같은 공간에서 나누는 일은 누구나 가능한 눈이 부실만큼 아름다운 순간이다. 먹거리 재료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 참으로 괜찮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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