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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5. 2022

3월의 귤 다시 보기

택배 도착하던 날


     

오후에 택배로 귤이 도착했다. 아침에 휴대전화로 귤이 배송될 예정이라는 문자가 왔다. 엄마는 제주도에서 귤 농사를 짓는다. 늦여름부터 초봄까지는 귤 걱정이 없다. 가을과 겨울에는 2주에 한 번씩 택배가 도착할 정도다. 그 시절엔 그저 사지 않아도 절로 생긴 것 같아 좋았다.       


3월에 받아 본 귤이 다르게 다가왔다. 한라봉도 함께다. 귤은 전성기인 그 시절 반짝반짝 빛나던 얼굴보다는 조금 힘이 없다. 울퉁불퉁 얼굴에 상처도 많다. 자갈밭 얼굴을 한 한라봉 하나를 들어 껍질을 벗겼다. 한 조각을 떼어 내어 먹었더니 달콤함은 여전하다.      


귤은 가을 무렵부터 한라봉은 겨울이 깊어질 즈음에 나온다. 가을이면 섬의 주변이 황금빛이라고 불릴 정도로 귤빛이 장관이다. “짹각, 짹각, 툭, 툭.” 바구니에 가득 쌓이면 플라스틱 컨테이너 박스에 담기고 다시 창고로 향한다. 그리고 서늘한 창고에서 석 달은 족히 지내다 우리 집까지 왔다. 나무에 달린 그것이 내 손에 오기까지는 적어도 서너 번 이상은 거쳐야 한다. 그동안 나무가 지내온 세월까지 같이하면 단순한 귤이 아니었다.     

귤은 나와 이어져 있었다. 어릴 적 휴일이면 과수원에서 부모님을 도왔다. 농약 칠 때는 옆에서 허드렛일을 도왔고, 지금 같은 봄이면 거름이나 비료 주는 일에도 따라나섰다. 가을은 농사가 최고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다. 아침부터 어두컴컴한 밤이 찾아올 때까지 귤을 따고, 창고에서 정리하는 작업을 함께 했다. 그때 함께 하던 나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나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살아 내었다. 매해 봄이면 필요 없는 가지들을 잘라주고 정돈해 주기에 하늘로만 자라지 않을 뿐이다.      

과수원은 온 가족이 나서 힘을 모아 미래를 기대하는 꿈의 구장이었다. 어느 해에는 태풍이 온 섬을 할퀴고 갔다. 하천 옆에 있던 우리 밭 역시 큰 피해를 입었고, 부모님의 시름도 깊었다. 나무가 비바람에 절로 뽑히고, 가지가 잘려나갔다. 난 초등학생이었는데, 동네 피해가 컸던 탓에 학교에서는 하루 임시휴일로 정하고 부모님을 도우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귤은 그 시절을 오롯이 함께 했던 나무에서 얻은 결실이었다. 단지 달콤하다는 맛 하나로만 정의하기 힘들었다. 아버지의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던 과수원이 있었다. 그곳은 때로는 무슨 일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침울하고 속상한 마음 안에서도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하루를 보내던 우리 가족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내 삶의 귀여운 싹이 피어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앞에 놓인 귤 하나는 수많은 날과 세월을 담고 있었다. 작은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고, 수십 년을 지켜오며 귤이라는 열매를 통해서 내게 얘기하고 있었다. 비좁은 택배 상자 안에 웅크리고 있는 녀석들은 내가 어릴 적 얼마나 애쓰며, 그들을 돌봤는지 알고는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부모님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내 땀방울도 들어가 있음은 부정하기 힘들다.     


봄은 겨울을 지나서 도착했고, 겨울은 가을을 보내야 만날 수 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갑자기 등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이 시간을 맞이하기 위한 많은 일들을 겪은 결과다. 내가 귤을 먹는 것은 가을과 겨울에 지나간 일들을 겸손하게 때로는 허공에 가볍게 흘려보내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딸기가 익숙해질 즈음이면 귤과는 자연스럽게 작별한다. 이 봄과 여름이 지나고 나면 다시 만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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