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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31. 2022

해피 케이크

생일날 아이가 전한 선물



생일날은 정석처럼 케이크가 따라붙는다. 솔직히 하얀 생크림 위에 요즘 제철인 딸기가 올라간 케이크가 없어도 괜찮았다. 닫힌 방문 사이로 남편의 “생일 축하해”라는 짧은 한마디가 들렸다. 남편은 코로나 격리가 끝난 아침이었고 딸아이는 마지막 하루를 남겨놓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걱정에 남편은 하루 더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그곳에서 머물기로 했다. 봄의 여유를 느껴보기도 전에 온 집안이 뒤숭숭한 일주일을 보냈다. 이런 특별한 사정은 생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게 했다.     

 

생일을 의식 안 한다 생각했으면서도 미역국은 끓여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여나 이날이 잊히지는 않기를 바라는 본능적인 행동이었을까? 모두가 각자의 구역에서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엄마 들어오면 안 돼. 알았지.”

나와 함께 며칠째 한방에서 지내고 있는 막내가 신신당부했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 같은데 그저 보여주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부엌 정리를 대충 끝내고 쉬고 싶어서 억지로 방문을 열었다. 아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하던 것을 양팔로 감춘다. 

“엄마 안 봤지? 엄마 절대로 여기 보면 안 돼.”

아이가 몇 번이고 강조했다. 혹시나 하고 머릿속으로 스치는 게 있었지만 모른척했다.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자가격리 생활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끝’이라는 단어가 이때처럼 반가운 적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달려갈 즈음에는 몸이 지쳐왔다. 낮에 30분이라도 잠을 청하지 않으면 오후를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몸을 기대었을 뿐인데 선잠이 들었다.     


“지금 몇 시야?”

“응 이제 11시 되어가는 거 같아.”

잠깐이었지만 몸은 훨씬 가볍다. 슬슬 점심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아이가 갑자기 뭔가를 꺼낸다. 

“엄마 놀라지 마. 짜잔.”

너무나 귀여운 종이 케이크였다. 아침 일찍부터 내내 책상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이걸 하느라 그랬다는 걸 알았다. 제법 케이크 모양을 갖췄다. 초도 하나 그려서 잘라 붙였다. 둘이서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로 했다. 조용히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소리로 했다. ‘해피’라는 영어단어 위에 하트가 그려졌고 붉은 뺨의 귀여운 아기의 미소가 뽀뽀해 주고 싶을 만큼이다. 아이는 종이접기를 좋아해서 가끔 꽃이나 반지 등을 만들어 주곤 했는데 케이크는 처음이었다. 코로나로 조용해진 휴일 아침에 둘만의 깜짝 파티가 열렸다. 나도 몰래 입꼬리가 올라갔다. 편지도 함께다.

“엄마 하늘만큼 땅만큼 보다 우주만큼 더 사랑하고 생일 축하해!”라고 끝에 적었다. 흐릿하던 생일날 아침에 먹구름이 걷히고 따스한 봄 햇살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아주 조용한 감동이 서서히 온몸으로 전해왔다. 살짝 눈물 날만큼.     


아이와 케이크를 먹기로 했다. 종이와 솜이 들어갔으니 먹는 모습을 흉내만 냈다. 그래도 세상의 어떤 케이크보다도 맛있다. 부드럽지만 먹을수록 가까워지는 느끼함과는 거리가 멀다. 크림이 녹거나 부서질 걱정도 없다. 몇 년을 두어도 제 모습 그대로여서 두고두고 꺼내 보면 이 날이 새록새록 생각날 것 같다. A4용지를 가위로 오려내어 모양을 만들고, 인형 만들 때 쓰던 작은 솜으로 속을 채워 제법 빵빵한 모양을 갖췄다. 제빵사가 특별한 날을 위한 주문받은 케이크를 정성스럽게 만들 듯이 아이는 엄마를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을 것이다. 사인펜으로 글자를 칠하며 자신과 닮은 미소를 케이크에 담아냈다. 언제나 마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나지만 아이의 깊은 가슴속에 자라는 푸른 싹을 만난 기분이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아이는 긍정적이다. 힘든 일이 생길 때도 “괜찮아, 잘 될 거야.”라고 말하고 씩 웃고 지난다. 화가 나지는 않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아이는 가슴을 쿵 하게 하는 답을 내놓았다.

“엄마 이렇게 하는 건 나를 위한 거야. ‘괜찮다’라고 해야 내가 덜 힘들고 잘 지낼 수 있으니까. 그러는 거야.”

아이는 매일 천진난만하게 새로운 인형을 검색하고, 춤추며,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간표를 꿰뚫고 있다. 그래서 마냥 어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의 얘기를 듣고 보니 이미 아이는 많이 컸고 마음은 나보다 더 깊어지고 있었다. 케이크에도 이런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엄마를 향한 지극한 정성과 아이의 해맑은 정서가 담겼다. 아이가 내게 “괜찮아요. 좋아질 거예요.”하고 말하는 것 같다. 다시 하루를 지낼 특별한 힘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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