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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01. 2022

질문 대신 맛있는
음식을 준비합니다

관계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관계에 대한 물음이 생긴다. 아이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친구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종종 얘기한다. 학교가 끝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곧바로 부엌으로 달려와 오늘의 일들을 이것저것 얘기한다. 결국은 마음에 맞는 친구를 찾기 어렵다는 것과 그런 상황에서 교실에서 지내는 불편함이 큰 주제다.

“그래.”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난다. 아이는 그사이에도 뭔가를 계속 말한다.

“괜찮아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하니까.”

아이에게 얘기했지만 맞는 답인지 모르겠다.  

    

새 학기가 되면 습관처럼 맞닥뜨리는 일이다.  친구에 대한 고민, 그 속에는 '관계'가 핵심어로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은 사람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아버진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 그때는 무슨 의미인지도 몰라 막연했지만 내 앞에 놓인 숙제 같은 게 되고 보니 알 것 같다. 아버지는 한편으론 어떻게 다른 이를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그만큼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는 방증일 터다. 아버진 엄격했지만 무슨 얘기든 잘 들어주었다. 그래서인지는 난 어머니보다 아버지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가 지금 우리 집 큰아이와 같은 중3 때였다. 성적 때문에 걱정이 많았는데 하루는 선생님이  불렀다.

“아빠가 전화 왔던데. 네가 성적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하더라고. 선생님이 보기에는 지금처럼 하고 있으면 문제 될 게 없을 것 같은데.”

아무도 없는 조용한 교실에서 선생님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찬찬히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다. 그 이후로 내 마음의 짐도 조금은 줄었다. 그날 저녁에 아버지에게 선생님과 나눈 얘기를 전했더니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자신이 선생님에게 어떤 얘기를 했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 아이도 지금 내게 그런 든든한 부모를 희망하는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귀 기울여주고 , 속 얘기를 터놓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넓은 품을 그리워하는지 모르겠다. 난 평균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흠이다. 아이가 학교로 가고 나면 우리 둘의 대화가 떠오르고 아이의 모습이 그려져서 남몰래 가슴 아파한다. 그저 들어주는 일에 집중하다가도 어느 날에는 화를 낸다. 돌이켜 보면 내 감정을 드러낼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몸이 지치고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는 오히려 아이를 나무라게 된다. 그동안 잘 유지되던 아이와 관계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실수를 범한다. “우리 엄마는 잘 들어줄 거야”라는 믿음이 있어야 할 터인데 자꾸 뒷걸음치는 일이 생긴다.  

  

아버지처럼 뒤에 딱 버티고 있는 부모가 되고 싶다. 사회에 나가 직장인이 될 때까지 원하는 건 뭐든 가능하고, 이를 부모님이 지원해 줄 것이라는 막연하지만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때는 몰랐던 걸 이제는 알게 된다.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도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수다를 떨고 나면 속이 후련해졌다. 이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음 날 출근하게 되는 힘이 생겼다. 그러다 정말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러라고 했다. 자꾸 내 부모님과 부모가 된 나를 비교하게 된다. 그러면서 가슴 한쪽이 쓰라려 온다. 아이가 느꼈을지도 모르는 외로움과 고통의 깊이를 짐작해 볼 뿐이다.     


아이여도 어른이 되어도 사람 사이의 관계가 모든 문제의 시작이며 끝인 경우가 많다. 혼자가 괜찮다고 말하지만, 어찌 보면 관계의 두려움 속에 놓여 있기에 그렇게 단념하는 게 아닐까. 물론 혼자여서 편하다면 그것으로 됐다. 그런데 반대라면  얽혀버린 실타래처럼 그것에서 헤어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나 역시 학교 다닐 때도 그러했고, 회사에서도, 다시 전업주부로 살면서도 관계의 문제는 선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제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지 않기에 그저 자연스럽지 않은 인연에 연연하거나 에너지를 쓰려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나이가 들어가면서 편해진 면도 있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던 대상에 대해서 그들의 스타일이라고 받아들여지는 부분도 생겼다. 노력이라는 단어로 안 되는 게 사람 사이의 감정인 듯하다. 텔레파시 통하는 것처럼 말로는 설명 안 되는 이끌림과 배려가 필요하다. 10대인 아이가 이런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지금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기억나는 것보다 잊힌 좌절과 슬픔은 큰 산을 이루었을 정도다. 물론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다녀왔습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왔다. 잠깐 얼굴을 살핀다. 그저 담담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상상할 뿐이다. 가슴속에 담아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가 입 밖으로 꺼내놓지 않는 이상 캐묻지 않으려 한다. 커간다는 건 피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과정이다. 아이를 자세히 살피는 일은 잠시 저만치 두려고 한다. 대신에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민한다. 아침부터 떠오른 게 양배추 롤이다. 가끔 만들어 먹는데 요즘의 상황과 잘 어울린다. 봄이지만 좀 싸늘하고, 꽃은 피었지만, 마음의 봄꽃은 아직 꽃망울을 터트리기엔 이른 듯하다. 달콤한 양배추가 감싸 안은 고기의 고소함과 토마토소스의 달콤함으로 금요일 저녁의 행복감을 충분히 느꼈으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돌아보는 일이 많아진다. 나와 아이 사이가 양배추 롤처럼 부드러워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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