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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13. 2022

염색하던 날

머리카락 색 그 너머의 심리

  

어느 날부터 흰머리가 신경 쓰인다. 정수리를 중심으로 버들가지가 길게 늘어뜨린 모양으로 흰 머리카락이 하나둘 생겨나더니 이젠 제법 무리를 이뤘다. 항상 같은 자리지만 날씨나 기분에 따라서 갑자기 확 늘어난 것처럼 보인다. 다분히 그날의 심리 상태에 따라 다르니 평균을 이루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색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흐르는 시간에 대한 일종의 경계 심리가 발동하는 듯하다. 


한두 개 보일 듯 말 듯할 때는 뽑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법 많아져서 손쓰기도 힘들다. 대부분은 그냥 지낸다. 그러다 정말 신경 쓰일 정도가 되면 미용실로 향한다. 얼마 동안을 보장해주는 보험 같은 염색을 한다. 점심 무렵 미용실에는 파마하는 손님이 먼저 와 있었다. 20분 정도를 기다리다 염색에 들어갔다. 아이가 하교하는 2시 전에 끝날 것이라는 원장의 말과는 달리 2시 반을 훌쩍 넘겨서야 마무리됐다.     

“초코 브라운색이 제일 잘 어울려요. 괜찮아요?”

“네~ 마음에 들어요. 하얀 게 안 보이네요.”

주변이 좀 어두워서 그런지 머리 색이 확연히 들어오지 않는다. 너무 밝은 빛은 왠지 어색해서 30대를 지나자 거리를 두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찾은 색이었다.

      

머리카락이 하얘지는 건 세월 앞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다가 자꾸 딴마음이 생긴다. 오롯이 내가 세상을 만나면서 타고난 그것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이다. 머리카락 색은 사람마다 몸의 상태나 유전적 인자에 따라 다르다. 내게 흰머리가 찾아온 건 20대가 저물고 30대 초반에 들어설 무렵부터다.  결혼과 동시에 생겨난 일이 아닐까 싶다. 스트레스라는 녀석은 몸의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녔다. 어느 날은 강한 통증을 느낄 만큼 관절 마디마디가 아팠다. 때로는 늘어난 흰 머리카락이 어느 즈음의 생활을 말해주었다. 며칠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가 폭풍우처럼 쓸고 지나가고 나면 그전과 후를 비교할 정도로 구분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빌려 정기적으로 염색을 했다. 추석이나 설, 친척의 결혼식 같은 특별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을 무렵에도 아주 까만색으로 머리를 물들였다. 이 풍경을 수년간 봤던 터라 나도 어른이 되면 하얘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현실에선 어색하고 불편했다. 중년이라는 단어가 나를 설명해 주는 키가 되었을 때부터는 조금 더 민감해졌다. 해를 거듭할수록  머리카락 색에 대한 관심이 커간다. 그러다 문득 오랜만에 만난 이가 나와 비슷한 연배라면 마음이 쓰인다. 코로나로 서너 달 이상 얼굴을 못 봤던 친구들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우와 흰머리가 하나도 없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른 이들의 머리카락 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밝은 갈색톤은 부드러움과 함께 은은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최근에 염색했어요. 나도 흰머리가 엄청나거든요.”

한 친구가 나서서 말했다. 맞다. 염색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밀렸던 수다를 떨고 봄 풍경에 취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날따라 머리에 시선이 꽂혔다. 듬성듬성 살짝 눈 내린 것 같은 그곳이 마음에 쓰인다.

“엄마, 염색은 두피 건강에 안 좋은 거 알지. 흰머리도 괜찮아.”

“응, 알았어. 엄마가 생각해 볼게.”

두 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염색이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간단히 설명하며 만류했다. 엄마를 챙기는 아이들이 고마우면서도 ‘너희들은 아직 흰머리가 무얼 의미하는지 몰라서 그래’하는 마음이 들었다. 건강 이전에 챙기고 싶은 것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에게는 젊음이라는 단어조차도 어색할 때다.     

머리카락에 색이 입혀지니 전보다 발랄한 느낌이다. 아직은 염색약 냄새가 불편하지만 문제가 아니다. 집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한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고는 다시 옆으로 고개를 돌려 살핀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만족스럽다. 언제 희끗희끗하던 게 있었나 싶을 만큼 감쪽같이 숨었다. 머리에 이리도 신경을 곤두세운 건 일 관련해서  열리는 회의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날 흰머리 가득한 나를 그려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염색이 패션으로 행해지던 그 시절 열정이 그리웠는지도 모르겠다. 단지 머리카락 색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겠지만 잠시나마 착각 아닌 착각이 필요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집에서 보자기를 뒤집어쓰고 염색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세상을 제법 알 만한 나이가 됐음에도 희미해져 가는 젊음의 밧줄을 당기기 위한 노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당분간 흰머리 생각은 내게서 멀어질 듯하다. 여름을 보내고 선선한 계절이 찾아올 즈음에야 다시 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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