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로 배운 요리 부엌에서 펼치던 날
오랜만에 짬뽕을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짬뽕에 가까운 칼국수라고 하는 게 바른 것 같기도 하지만 짬뽕이라고 고집하고 싶다. 이 음식은 몇 년 전만 해도 동네 중국집에 시켜 먹는 게 당연했다. 휴일에 밥 차리기 귀찮거나 새로운 걸 먹고 싶을 때면 탕수육 짜장면과 함께 자연스레 따라왔다. 그러다 텔레비전에서 국내 유명 중식 셰프가 짬뽕을 요리하는 걸 보았다. 중화요리의 심장부인 중국 현지에서 한국 스타일로 해석된 요리가 얼마나 통하는지를 확인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푸드트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하는 음식들은 간단하면서도 메뉴의 핵심을 확실히 잡아내는 과정에 집중했다. 복잡한 설명 대신 중화요리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묵직한 웍과 강한 화력, 중식 도의 빠른 움직임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설명해 주었다.
프로그램에서 다뤄진 중식의 대표주자인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 삼총사를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한 시간을 조금 넘기는 방송시간 동안 몇 개의 요리가 반복되었다. 그렇기에 그것을 관심 있게 보다 보면 절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대략의 그림이 그려졌다. 요리사의 손놀림과 짧은 몇 가지 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요리가 쉬워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는 신선함으로 다음에는 ‘한번 집에서 해 볼까?’ 하는 도전의식도 싹텄다. 그동안 우리 집 요리사로 살아온 경험과 고등학생 때부터 자취하던 내 삶의 이력이 더해지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라면 좋아하는 막내는 주말에는 꼭 자극적인 면을 먹고 싶어 한다. 여기에 일요일 점심은 조금 더 특별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아쉽지만 시간은 월요일을 향해 흐르기에 휴일을 잘 마무리한다는 의미에서 즐거운 이벤트가 필요했다. “행복해”라는 짧은 단어가 생각날 만큼 맛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이 다가오는 것에 대해 답답함 대신에 “그래도 오늘은 일요일이야. 푹 쉬자”라며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아침을 늦게 먹은 터라 오후 1시에 점심을 먹기로 했지만, 이상하게도 집에서 빈둥거리는 날에는 다른 때보다 허기가 빨리 찾아온다.
“엄마 나 배고파. 우리 언제 밥 먹을까?”
방에서 시험 준비를 하던 큰아이가 꼭꼭 닫혔던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들어온다. 그가 내뱉은 말은 단순하지만 큰 힘을 가진다. 웬만해선 방에서 잘 나오지 않은 아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적극적인 표현을 했기 때문이다.
“응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한 30분이면 될 것 같은데.”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갈 시간이다. 오전에 멸치와 황태를 넣은 육수를 만들어 두었다. 배추와 양배추, 대파, 햇양파를 씻고는 썰어 준비했다. 며칠 전 먹다 남은 앞다리 돼지고기와 양배추 롤을 만들다 남은 간 돼지고기를 더했다. 냉동 새우도 꺼내 두었다. 웍에 기름을 붓고, 간 마늘을 먼저 볶은 다음 고기를 넣었다. 여기에 맛술을 더해 냄새를 없애고 중간보다 좀 센 불에서 볶았다. 붉던 고기가 익어갈 무렵 새우를 넣고 간장과 매실액으로 간을 했다. 다음은 옆에서 끓고 있던 육수를 부은 다음 살며시 끓어오르자 준비한 야채를 한꺼번에 넣었다. 지난해 아는 언니가 준 말린 홍고추도 담백한 국물 맛을 위해 더했다. 이제 굵은소금과 간장으로 간하고 고춧가루를 더해주면 끝이다. 마지막으로 면을 준비한다. 중화면 대신 시판 칼국수 면을 택했다. 달라붙지 않도록 면에 붙어 있는 밀가루를 털어내고 끓는 물에 6분 정도를 삶았다. 깔끔한 맛을 위해 면을 차가운 물에 헹군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나면 특유의 냄새가 사라져 깔끔하다.
잘 먹기 위해선 음식의 종류에 맞는 그릇 또한 중요하다. 그래야 편하게 식사할 수 있고, 설거지할 때 편하다. 폭이 넓고 오목한 냉면 그릇을 택했다. 식구들의 먹는 양을 고려해 면을 놓고 뜨거운 국물과 건더기를 올린다.
“짬뽕 다 됐어. 얼른 와, 불어버리면 맛없으니까.”
후다닥 자기 자리에 앉는다. 후루룩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고 나니 정신없던 점심이 지났다. 매일 회전초밥 돌아가듯 반복되던 메뉴에서 오랜만에 색다른 걸 올렸다. 나물은 부드러웠다. 뽀얀 속살을 드러낸 햇양파의 달콤함과 돼지고기의 고소함은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짬뽕을 완성해냈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들을 되뇌며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멋진 사진과 잘 다듬어진 텍스트로 정리된 레시피가 아니어서 더 와닿았다. 음식을 만드는 건 몇 숟가락의 양념이 필요하다는 정형화된 것과 거리가 멀 때가 종종 있다. 그때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팬을 쥐고 있는 요리사의 맛에 대한 공정한 평가다. 짬뽕의 진수는 뭐니 뭐니 해도 적당한 짠맛이 느껴지는 풍부한 느낌을 담고 있는 국물이다. 국자로 몇 번을 떠서 내 기준에 “괜찮아”라는 답이 나올 때까지 간을 맞췄다. 식탁에서 숟가락을 들어 맛을 볼 때는 좀 전의 느꼈던 그 맛이 어디론가 사라질 때도 부지기수지만 그 순간에 만족하면 되었다.
우리 집 부엌에서는 어떤 것이든 시도해 볼 만하다. 실패하더라도 끈기를 갖고 먹어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 집밥은 비용을 지불 한 만큼의 무엇을 제공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서 좋다. 타인에게는 비록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일지라도 식구들에게는 기다려지는 음식일 수도 있다. 오랜 시간 한 곳에 머물며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서로가 한 접시의 반찬을 나누는 동안 어울리는 법을 자연스럽게 몸으로 익혔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엄마의 밥, 집에서 함께하는 밥상이 그립다. 짬뽕이라는 이름표를 붙였지만 맞는 표현인지는 어딘지 어색함이 많이 남는 한 그릇이었다. 그래도 강력히 짬뽕을 먹었다고 주장하려 한다. 누가 뭐라 해도 난 짬뽕을 그렸고, 가능한 만큼 정성을 기울여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