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말고 밥버거

# 37

by 오진미


낯설었다. 불편했고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힐끔힐끔 살피게 된다. 잠시 망설였다. 저 큰 문을 열고 나갈 것인지 비어있는 귀퉁이 자리에 앉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함께 간 6학년 이웃 언니도 쭈뼛쭈뼛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았다.


계산대 앞으로 갔다.

“햄버거 얼마예요?”

“3000원.”

순간 우리는 더 깊은 방황의 길로 들어섰다. 언니와 주문을 미루고 의논했다.

“야, 너무 비싸지 않아?”

“그래 언니, 근데 우리 여기 다음에 오기는 힘들잖아.”

말로만 듣던 햄버거의 맛이 궁금했지만, 가격이 부담이었다.


“햄버거 말고 다른 거 뭐 있어요?”

“응, 핫바 있는데 1500원.”

“그걸로 두 개 주세요.”

핫바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나와 버리기에는 부끄럽기도 했고, 쉽지 않은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 같았다. 어찌 됐든 그곳에서 뭔가를 먹어야 했다. 핫바가 대신했고 내 생애 첫 햄버거집 나들이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때 난 초등학교 4학년이었다.


처음부터 햄버거를 먹기 위해 시내로 간 건 아니었다. 새 학기에 필요한 문구류를 사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건 핑계였다. 동네 작은 구멍가게 문구점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시골 생활의 답답함을 느끼던 아이가 도시의 화려함을 경험하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


그때 햄버거 가격은 충격이었다. 만 원이 안 되는 돈을 들고 갔는데 거기서 3분의 1 이상을 먹는 것으로 쓰는 것은 부담스러운 모험 같은 일이었다. 핫바의 맛에 실망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뒤 우리는 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맛은 별로였고, 주머니는 가벼워졌다. 그곳에서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우리의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햄버거에 대한 첫 추억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햄버거는 아주 가끔, 시간이 없거나 공항에서 배를 채워야 할 때 먹게 되는 음식이 되었다. 정신없이 떠밀리듯 나오는 햄버거는 언제나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엄마가 된 지금도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쉽게 권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도 그리 찾는 일이 없다. 일 년에 한 번 먹을까 말 까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점심으로 밥버거를 먹겠다고 했다.

“밥버거? 알았어. 근데 뭐 넣을까?”

“그럼 있잖아. 엄마. 떡갈비 스타일로 할까?”

모든 게 정해졌다. 이제 내가 움직이면 완성이다.


밥버거에 대한 부담은 없다. 매일 먹는 밥이 빵을 대신해서 그런지 이방인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 돼지고기 간 것을 조금 사 왔다. 소고기도 함께 섞으면 좋지만, 그냥 편하게 하기로 했다. 마늘과 양파, 간장, 맛술과 매실액을 넣고 고기를 열심히 치댔다. 빵가루를 두 숟가락 정도 넣어서 끈기 있게 했다. 빨리 익을 수 있도록 얇게 펴서 둥글게 만든 다음 팬에서 중간 불로 구웠다. 은은하게 속까지 잘 익도록 했다.

이제 밥솥에 있는 잡곡밥을 꺼내어 소금과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강하지 않게 간한다. 골고루 섞은 다음 양손을 움직여 모양을 만든다. 주먹밥을 만들 듯 덩어리에서 둥글넓적한 모양으로 잡아주면 된다. 밥 사이에 떡갈비를 넣고 다시 밥을 올려주었다. 그렇게 4개를 만들었다.


흡사 UFO 같은 밥버거 완성이다. 사이에 상추나 채소를 깔아주어도 좋지만 깜빡했다. 접시에 방울토마토와 함께 올렸다. 밥 사이에 패티가 감추어지니 재미있다.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무엇이 들어갔을지도 모르는 수수께끼 같은 밥이다. 깨끗한 두 손만 있으면 된다.


내 어릴 적에도 밥버거라는 게 있었으면 어땠을까? 햄버거는 TV에서나 봤던 별세계의 음식이었다. 시내로 외출했던 그날 햄버거 가게에 문을 두드린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그곳에서 난 생각보다 더 위축되었고 작아졌다. 그냥 문을 쾅 닫고 나와버려도 됐을 일이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를 잡기 위한 고민의 시간이었다. 결국 햄버거는 먹지 못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제일 나은 선택이었다.

시간과 함께 생각은 변하고 어제와는 다른 선택이 가능하도록 다양함을 선물한다. 빵이 최선으로 여기던 버거에 밥이 등장했다. 난 밥버거가 더 좋다. 빵이 없어도 밥솥에 있는 따뜻한 밥과 집에 있는 무엇이라도 가능한 버거의 세계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밥버거에 열광한다. 내가 좋으니 아이들도 좋다. 어릴 적 동경했던 햄버거는 내게 씁쓸한 추억을 안겨주었다. 돈의 무게를 그때 처음 절실히 느꼈다. 이제는 내 맘대로 밥버거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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