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김밥 먹을래?”
“응.”
저녁 메뉴는 정해졌다. 3월에는 일주일에 한 번 김밥을 먹었다. 뭘 먹을지 생각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에 시금치가 가득하다는 핑계로, 김밥을 먹고 싶다는 아이의 주문이 있어서였다. 김밥은 질리지 않았다. 예상되는 맛이지만 누구도 맛이 어떠하다고 타박하지 않고 “조금만 더 먹을까? ”하는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한 접시를 비우고 다시 한 줄을 다시 썰고 와서 한 두 조각을 남기고 나서야 저녁은 끝이 났다.
내가 만드는 김밥이지만 비결이 궁금했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유부 조림과 시금치, 달걀이 전부였다. 큰아이가 학원을 가는 까닭에 저녁은 6시로 당겨졌고 그 시간까지 부지런히 움직였다. 특별히 손이 갈 것도 없지만 나름의 순서를 정했다. 먼저 하얀 밥을 준비했다. 그다음 냉동 유부를 데치고 나서 간장과 맛술, 요리당을 넣고 조렸다. 시금치는 데치고 간장과 참기름으로 조몰락조몰락 하면 끝이다. 마지막이 달걀이었는데 얇게 지단을 만들어 채를 썰었던 그동안과 달리 도톰한 말이로 했다. 양손을 천천히 움직여 차례대로 재료를 넣고 말아 주면 김밥이 완성된다.
김밥이 한 줄 두 줄 늘어갈수록 이것의 매력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준비’라는 단어였다. 김밥은 각각의 것들을 한 번 조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원래 지니고 있던 맛을 살리거나 별것이 아니더라도 이 단계를 통해서 새로운 맛을 얻게 될 때도 많다. 내가 좋아하는 냉동 유부가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해 지는 게 대표적이다.
김밥은 시간의 음식이다. 김밥은 한 번에 휘리릭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하다” “귀찮다”라는 평들이 나온다. 나도 매번 처음에는 “알았어, 김밥 먹자”하고 쉽게 답했다가도 후회가 밀려올 때가 많다. 돌아보면 김밥은 간단하다면서도 서너 번 이상의 손을 움직여야 한 줄이 완성된다. 볶고 지지고, 다시 밥과 하모니를 이뤄야 한다.
처음으로 김밥을 만들었던 고등학교 자취생 시절에는 모양이 신경 쓰였다. 재료가 가운데로 모이는 김밥을 희망했다. 정성을 들여서 천천히 숨죽여가며 말아도 결국에는 한쪽으로 쏠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왠지 실패한 김밥 같아서 한숨을 쉬었다. 소풍날에는 이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주기가 싫었다. 결국엔 모양이 가장 괜찮은 녀석들로만 골라서 도시락을 채웠다. 지금 그때를 떠올리면 웃기면서도 살짝 슬프다. 희미해진 기억 속에 내가 살아난다.
지금은 김밥 모양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김을 뚫고 재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을 정도면 합격이다. 타인의 시선은 상관없이 김밥은 김밥이기만 하면 된다는 평범함을 알게 되었다. 자꾸 하다 보니 의식하지 않아도 절로 재료가 알아서 제자리를 잡았다. 김밥을 만든 세월과 함께 차곡차곡 쌓이는 경험은 다른 무엇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김밥을 좋아하기에 준비하는 일에도 기꺼이 나선다. 원한다는 감정은 자꾸 시도하게 되고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편안하게 다가가니 평균적인 맛을 낼 수 있는 것 같다.
김밥을 살피다 보니 결국은 나를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김밥을 준비했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었다. 별로일 때도 있고 예상외로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 이런 순간이 모여 지금의 김밥이 태어날 수 있었다.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까? 김밥을 처음 만난 날은 언니와 오빠가 소풍 가던 날이었다. 까만 김이 감싼 그것을 보고 바다 향이 살짝 올라오는 것 같아 힘겹게 먹었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엄마가 특별한 날에 준비하는 별미가 되었다. 이젠 내가 엄마의 자리에서 사각형의 김에 밥을 올려 적당히 편 다음 재료들을 넣고는 돌돌 만다. 김밥으로 몇 번의 글을 더 썼다. 그래도 김밥을 보면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