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버릴 이 시간을 즐기는 법
봄이다 하고 돌아보면 사라진다. 때로는 신기루 같다. 온전히 봄을 즐기기 위해서는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잘 따지고 새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한밤에 세차게 내리다 아침이면 개어버리는 비처럼 봄과 작별하지 않는다.
근교에서 나는 것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로컬푸드 매장을 찾는다. 야채와 과일이 중심이 되는 그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가장 빨리 알아차린다. 주말의 마트는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때가 때인지라 빨리 원하는 것만 챙겨 와야 한다. 열무와 버섯, 쑥갓에 토마토 마지막으로 풋마늘을 카트에 담았다.
삼시세끼를 오롯이 챙겨 먹는 휴일은 폭풍우처럼 지난다.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냈을까 할 만큼이다. 월요일은 그런 의미에서 휴식이자 재충전의 시간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무엇이 있는지 살피다 보면 잊고 있던 것을 만난다. 풋마늘이었다.
집에서 혼자만 좋아한다. 다른 이들은 한 젓가락 힘겹게 들거나 외면한다. 몇 해 전부터 봄에는 이것을 꼭 먹어야 할 것만 같다. 너무 빨리 스쳐 지나기 때문이다. 봄 한 철, 마늘종이 올라오기 전 잠깐 동안이다. 아직 뿌리에 마늘이 알알이 자리 잡기 전이다. 흡사 대파 같지만, 그보다는 단단하고 알싸한 마늘 향이 올라온다.
이 계절에는 자연이 밥상을 차린다. 조금만 식물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산에서 나는 다양한 어린순들을 나물로 해 먹을 수 있으며, 조용히 양지바른 곳에서 비죽비죽 솟아난 싹들도 한때의 반찬으로 손색이 없다. 사람들은 쑥이며 머위, 냉이, 달래 등 땅에서 돋아난 것들에 감탄하고 봄 향기를 맛으로 느끼려 한다.
풋마늘 반찬은 내가 봄을 적극적으로 즐기는 시간이다. 하얀 뿌리와 맞닿은 것부터 짙은 초록인 줄기까지 모두가 한 접시에 오른다. 살짝 데쳐서 적당한 크기로 썰고 초고추장 양념으로 버무린다. 지금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도시락 한편을 차지한 반찬을 보고 알게 되었다. 왠지 초록으로 빛나는 건 거부하던 시절이었지만 친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은 호기심을 부추겼다.
“나 하나 먹어도 돼?”
“응, 먹어봐. 이거 맛있어.”
친구의 허락을 받고서 포크를 들고 콕 찍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미끌미끌한 점액질이 살짝 낯설면서도 달콤함은 강했다. 그 뒤로도 사촌 고모가 결혼하던 날 잔칫날 찬으로 나온 그것을 맛있게 먹었던 그 날이 선명하게 남았다.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가격으로 치면 그리 비싸지도 않다. 귀하다는 표현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사계절 먹을 수 없다. 겨울에서 봄은 기다림의 시간이지만 막상 그때라고 여길 즈음에는 풋마늘은 사라져 버리기 십상이다. 봄 노점 사이를 걷다 보면 풋마늘을 발견하고 한번 요리해야겠다고 마음먹다가도 금세 잊어버린다. 그러다 생각나서 보면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갑자기 날씨가 춤춘다. 어제부터 여름을 연상하게 한다. 길거리에는 반소매 옷과 반바지를 입은 이도 군데군데 눈에 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춥다고 스카프에 카디건을 입었다. 더워진 날씨는 적응이 힘들다. 얼굴에선 열이 나는듯하고 피로가 몰려온다. 저녁도 대충 먹고 싶었는데 풋마늘을 지나칠 수 없었다. 이것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간단하니 만들어 먹기로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식탁이었다. 아무도 관심 같지 않는다. 육전에 초집중한 아이들은 다른 것은 뭐가 있는지도 모를 정도다.
“와! 이거 진짜 맛있어. 지금 아니면 못 먹는 거야.”
내가 뭐라 해도 반응조차 없다. 그럼에도 혼자 신이 난다. 작은 접시에 올린 그것을 다 비웠다. 봄날의 특별함을 내 손으로 만들어 즐겼다는 뿌듯함이 밀려온다. 봄을 즐기는 모습은 다양하다. 흩날리는 벚꽃 터널을 걷거나 연둣빛으로 솟아난 새싹들의 쉼 없는 연주에 눈을 빼앗기기도 한다. 꽃은 하루가 다르게 지고 새싹이 제법 자랐다. 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신호다. 꽃들을 바라보다가 잠깐 멈췄다. 풋마늘 무침을 만들고 접시에 올려 봄날의 저녁 한때를 내 시간으로 채웠다.